잡과 맘의 대립 또는 양립관계: 엄마미를 장착한 사람들만의 특권
나는 나이고 싶지만 나이기만 할 수 없다.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엄마이고, 학교에서는 교수님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학기를 마무리하고 성적을 내는 시기이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면서 먼 산을 좀 바라보고 차분히 릴랙스를 한 다음에 글을 한 조각 쓰거나 글을 몇 페이지 읽거나 그렇게 고즈넉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었다. 평온하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평온이란… 손에 절대로 잡히지 않는 그런 존재이다.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데 간절한 만큼 절대로 내 손아귀에 쥐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모든 순간 이유는 명확했다. 왜 이렇게까지 평온하지 못한 지… 뭐가 그렇게도 불안한지… 아니면 왜 이렇게 촉박한지… 데드라인이 무서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가 다 망쳐버릴 것 같은 이 기분이 왜 이렇게까지 두렵게 다가오는지…
나는 원래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불안에 떨지도 주눅 들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뭐든지 자신만만하고 내가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건 키가 더 크지 않는다는 사실 뿐이라고 더없이 당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매 시간 어떤 사람에게 쫓기는 듯하게 살고 있다. 물론 이번 주 안에 성적 마감을 해야 한다. 할 수 있을 거다. 13년 차 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한 번도 성적 입력 기한을 놓친 적은 없으니까 이번에도 결단코 성적은 마감할 수 있을 거다. 글 쓰는 재미에 빠져 하염없이 쓰고 있지만 않는다면…
나에게 성적 마감이라는 직무만 있다면 콧노래를 부르며 한 학기 동안 함께한 학생들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콧웃음을 치며 채점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사실은 이번 학기 친구들이 좀 웃겼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피식, 피식 웃곤 했다. 그럼 나는 확인하고 싶다. 내 말이 웃긴 건지 아닌지. 그래서 왜 웃어요?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을 안 해준다. 하지만 나는 성적 마감까지 모두 끝난 후 편지를 받은 기억이 세 번 정도 있다. 바로 내가 웃겼다는 거다. ㅎㅎㅎ 왜 웃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드립에 학생들이 웃는 게 좋다. 유머 코드가 맞았다는 거니까 이제는 자식과 나이가 같아져 버린 자식 같은 학생들이 내 수업 어딘가에서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나에게 그런 단편적인 유머와 보편적인 웃음만 있었다면 나는 내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나이스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살았을 거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는 매일 사춘기인 아이에게 엄마 진짜 재미없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냥 어떤 코멘트도 안 해주면 좋으련만… 내가 웃기고자 의도하지 않은 말까지 모두 피드백을 한다. 재미없다고…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퍼스널 컬러 진단도 해주고 퍼스널 쇼퍼에 셀프 염색까지 해줬건만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재미없어이다.
어제는 서러움에 몸서리치다가 결국 성년인 또 다른 아이 앞에서 통곡을 하였다. 뭐가 그렇게도 서러웠는지… 얼마만큼의 감정을 쌓아두기만 하고 해소하지 못했는지 나도 놀라울 정도로 폭풍 같은 눈물이 나왔다. 지금도 눈물이 찔끔씩 흐르는 중이다. 폐경유도주사 3차를 맞으며 의사 선생님께서 감정 기복이 좀 더 심해질 수 있어요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사실 난 당장 하혈이 멈춘 이 시점에서 지구라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용감하기 그지없는 피 토하는 나의 자궁에게 그 작고도 작은 곳에만 얌전히 있어 달라고 했는지. 그릇이 작아서 담지 못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충분하고도 흘러넘치냐고 했던가…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게 맞다. 감정기복은 원래 내 그릇을 보다 더 작아지게 한다. 농담처럼 나는 간장 종지 같다고 말하곤 했다. 큰 냄비인 줄 알았지만 엄마 경력 20년 만에 결국 종착지는 간장 종지이다. 아마도 더 작은 게 있다면 거기까지 갈지도 모를 일이다.
사춘기와 갱년기의 싸움에선 주로 갱년기가 이긴다고들 하던데 간장 종지가 되어버려서 그런 건지 나는 지고 나서 울고 있다. 이기고 지는 싸움인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우는 건 나니까…
너무너무 상처이다. 내가 낳은 아이의 말 한마디에 총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아프다. 아이의 눈빛 하나에 세상을 다 빼앗긴 처럼 너무나 슬프다.
분명 나의 중학교 시절 별명은 냄비였는데… 무엇이 이토록 나를 작아지게 만든 걸까. 무엇이 그토록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걸까.
나는 그 슬픔과 불안 모두 가슴 한켠에 묻고는 내일을 묻는다.
제이레빗의 내일을 묻는다를 들으며 잠깐 울다가 Happy Things를 들으며 금세 웃고 있다. 재미없어를 난발하는 아이가 너무 귀엽고 재미있다. 보고 있으면 그 아이를 낳고 안고 울던 나와 꼬물꼬물 너무나 귀여웠던 작고 소중했던 네가 동시에 사진처럼 생생하다. 그런 아이가 지금 나보다 커져서는 너무 웃기다. 별거 안 해도 그냥 빵빵 터진다.
자꾸만 내가 담을 수 있는 용량보다 흘러넘치는 주변 상황들과 역할의 부조화 속에 슬픔과 웃음이 시소놀이 중인 듯하다.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누구라고 특별할까… 누구라고 매일이 즐거울까… 다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거겠지…
모든 건 지나가고, 지나가고 나면 모든 순간이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여기 지금에 멈추려고 해도 아이는 점점 더 성장할 테고 재미없어라는 코멘트도 그냥 내 기억 어딘가에 추억처럼 메아리칠 거다.
그러니까 오늘을 살자. 내일까지 묻기도 버거운 날들에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자.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엄마미를 지니고 있다. 다들 예쁘다. 다들 아름답다. 내가 본 엄마들은 대체로 그렇다. 나쁜 엄마는 내 주변에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자녀의 생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자신의 몸이,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를 그날을, 그렇게도 온 마음 다해 축하해 줄 수 있는 것은 엄마미를 장착한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그렇게 한 번 더 정신승리 자가 치유를 마친 나는, 아마도 폭풍 같은 채점을 통해 당당하게 성적 처리를 마감하고 수술을 준비할 것이다. 오늘을 살다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일이 물어질 거니까.
엄마미 장착을 위한 자가치유 프로젝트: 잡과 맘 사이: 아프지만 중년이다. 아프지 말길, 그레이여!
원픽은 그레이! 올 겨울은 그레이 컬러의 변주로 더욱 따뜻해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