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 꿈의 아이러니관계: 절체절명과 신명 사이
수술을 앞두고 나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그건 나의 문제일 뿐. 누군가에게는 방해이고 피로인가 보다.
나는 여전히 나를 제일 먼저 돌보지 못한 채, 계속하여 소진되고 또 소진된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몸 누일 곳 없다고 여겨지는 오늘이다.
또 하나의 상처가 내 몸에 나버리고야 끝나는 어제이다.
휴식... 안정... 평온... 도대체 어떻게 해야 가능할 것인지...
나의 문제인 건가...
주변이 유독 가혹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내 문제인 건가. 이렇게까지 서글퍼져야만 하는 건.
호르몬의 잠금으로 인해서 내 인내심이 바닥이 나버려서 이런 건가.
그러하다면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내 문제라면 그래도 살만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살아볼 만하다고 여겨진다.
근데 정말 내 문제가 아니라면...
내 문제가 아닌 채로 나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미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그 아킬레스건을 누군가 계속 무심하게 툭툭 쳐서 나는 하루도 마음 편하면 안 되는 존재라면. 그래도 그런 상태로. 슬픔에 잠긴 상태로.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상태로. 극한의 참을성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나란 존재를 놓아버리는 지경에 가 버린다면.
또 그런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이렇게까지 애를 써야 하는가. 왜 이렇게까지 슬프고 비참하고 처참한 기분인데도 일어나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또 그런 얼굴들을 애써 마주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오롯 쉴 수 있는지.
어디에서 진정 평온을 느낄 수 있는지.
언제쯤이면 매일이 맑다가 어쩌다 한 번 흙탕물이 되는지.
왜 매일이 이렇게도 흙탕물처럼 먹기도 씻기도 숨을 쉬기도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이유가. 오늘은 모르겠다.
울기 위해 사는 건가. 울고 눈이 붓기 위해 사는 건가. 부은 눈이 더 예뻐서인가.
눈이 유독 독보적인 나라서. 돋보이는 눈이 더욱더 촉촉하게 빛나라고 자꾸만 눈물 날일들이 널렸냐는 거다.
적어도 지구상 누구 한 명이랑은 합이 맞아서 신명 나게 춤을 추고 싶은데.
여전히 절체절명의 지금 이 지점에도 나에게는 신명 나게 합이 맞는 그 어떤 존재도 없고.
나는 외롭다. 마음은 외로워 죽겠는데 몸은 지독하게도 혼자이고 싶다.
내 몸 하나가 처리가 안되어서 나도 좀 내 몸에만 소리를 기울이고 싶은데.
어디에도 내 몸의 소리가 잘 들리는 조용한 곳은 없는 느낌이다.
누구는... 티비 소리가 자장가이고,
누구는... 뮤직이즈마이라이프이고,
누구는... 남의 아들 편을 드느라 매우 소란스럽다.
나는 정말 고요하고 싶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려서 지금은 내 몸이 내는 아우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만 다치고 싶다.
이미 많이 다치고 아파서 지금은 휴식만이 나의 유일무이한 일이고 싶다. 죄책감도 책임감도 잠시라도 오롯하게 내려놓고 싶단 말이다.
뭐가 그렇게도 다들 잘나기만 했단 말인가.
조금은 양보해도 될 일들은 없는 건가.
한 걸음 물러서주면 내일 멸망이라도 한단 말인가.
크리스마스이브는 매력이 넘치고 연말연시 의미는 깊지만,
그런 이벤트 같은 날들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아픈 사람에게 온정을 베풀어 줄 사람이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인생은 이렇게도 철저하게 혼자인 것인가.
결국 난 오늘도 사람에게 기댄 것에 후회하며 제미나이에게 말을 걸었다.
제미나이는 당장이라도 손에 난 상처를 치료하러 병원에 가라고 한다.
지피티는 별일 아니니 아무것도 하지 말면 낫는다고 한다.
제미나이는 너무 겁을 주고 지피티는 너무 의연한 척을 한다.
이도 저도 과하다. 과유불급이건만.
고작 손에 난 상처로 병원에 가기도 싫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결국, 손에 난 상처가 거추장스럽고
다가오는 수술보다 더 버겁게 느껴져서 내일이 싫어지려고 한다.
이럴 때, 누군가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오늘만! 지금 이 순간만! 넘기라고 한다면,
그게 나에게는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될까?
며칠 전 그 말을 글로 적은 것이 후회가 된다. 희망고문처럼 느껴진다.
눈물이 철철 나오는 날, 그 한가운데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말문만 막히는 게 아니고 글문도 막힌다.
지금도 머뭇거리고 버벅거리고 있다.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는 잠을 잤다.
잠이 나에게는 유일하고도 명백하게 당위성 있는 도망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걷다가도 졸리면 자는 꼬마였다고 한다. 놀다가도 졸리면 집으로 와서 현관에서 신발도 안 벗고 자는 잠투성도 없는 순하디 순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때는 그게 나의 최대의 장점이었다.
어느 날들에는 죽을 수는 없으니까 잠을 잤다.
커피를 마셔도 자고 싶은 만큼 잠을 잘 수 있었다. 낮잠을 자도 밤잠도 늦잠도 잤다.
도망가고 싶은 순간에 철저하게 잠이 나를 보호해 주었다.
왜 이렇게 잠이 많냐는 비난과 힐난에도 꿋꿋하게 잠이 들었다.
겨울잠을 공식적으로 자는 곰이 부러울 정도로, 나도 한 계절씩이나 잠을 자면서라도 그 상황을, 그 지경을 모면하고 싶었다.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일을 마주한 날들에는 미라클 모닝을 꿈꾸었다.
책도 읽고 실천을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야무지게 시작하고 멋있게 마무리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잠이 많아서 내 인생이 이러한가라고 잠에게 모든 책임을 넘겨버리고 싶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건 잠이 많은 나의 타고난 습성 때문이라고. 죄인은 나라고!
잠이 많아서 슬프고, 잠이 많아서 죄인이라고! 어르고 달랬다.
잠조차 더 이상은 내 편이 아닌 날들이다.
지금은 새벽 2시이고,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 미라클 새벽이다.
미라클 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어서 야호라도 외쳐야 할까. 그러면 눈물이 멈출까.
웃으면 웃을 일만 생긴다고 들 하니. 정신 승리 차원에서 미친 척하며 웃어볼까.
울다가 웃으면 없던 것도 생긴다고 들 하니.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없던 상처가 하나 더 생길지도.
손가락 상처로 병원 갈 일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늙는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
갱년기라는 게 바로 이런 걸 말하나 보다.
있던 게 없어지는 것.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
누가 죄인인가... 잠이 많았어서 슬픈 인간은 나니까. 잠이 다 잘못했네.
종강하고 나니 더 슬퍼진 듯하니 종강이 잘못했네.
채점한다고 글을 하루 안 썼더니 더더욱 슬퍼진 듯하니 글이 잘못했네.
모두 잠 탓이고 종강 탓이고 글 탓이다.
성적 공개를 미루는 건 글부터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 강의미를 거쳐 글쓴미를 장착하고 있다고 희망고문이라도 해보겠다.
개인미학 글쓴미 n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