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를 대하는 방법

환경과 기질 사이

by nlab

아비투스(Habitus)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중세시대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다음은 18세기 로코코와 살롱문화. 그리고 부르주아.


중세의 아비투스는 나의 노력에 의해 형성된 습관이나 성향에 가까웠고, 시대 복식의 명칭이기도 하였다.

18세기 로코코 양식이 만연하던 때의 귀족들은 살롱에서 아비투스를 갈고닦거나 향유하는 문화가 있었다. 조개껍데기의 곡선이라는 의미를 지닌 로코코의 유연한 듯 섬세하게 흐르는 곡선미와 여리여리 우아한 컬러 조합, 디테일에 디테일을 더한 복식과 장신구들. 코르셋으로 조이고 파니에로 넓히고. 아름다움을 위한다면 내 몸 하나는 기꺼이 희생했다. 사람보다 더 중요했던 옷과 장식들이 그 누구보다 주인공이었던 시대라고 생각된다. 그런 옷을 입고 생활할 수 있으려면 귀족이어야 했고, 그런 옷을 입어야 살롱에서 차를 마시며 문화, 예술, 철학, 항간에 떠도는 소문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생각과 태도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 살롱 문화이지 않았을까. 로브 아라 프랑세즈를 입었던 마담 퐁파두르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 시대의 트렌드 세터이자 오피니언 리더였고, 취향의 정점이자 동경의 아이콘이었다.



로코코 살롱. by 제미나이.


나는 어떠한가.

아비투스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건 결혼 후 석사과정 시절이다.

하이엔드브랜드 제품을 깔별로 바꿔가며 드는 동기 언니를 보며,

집에는 집안일과 아이 케어를 도와주는 상주 관리자가 있는 분들의 세계를 접하며,

순간 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공부만 힘든 건 아니고 그러한 극과 극의 환경차이를 눈으로 직관하면서 소화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내가 잘 몰랐던 세계는 명백하게 존재했고, 단지 멀리서 보던 걸 가까이서 본 것뿐이었을 텐데도 그러하였다.


부모님과 사는 동안 나는 그다지 가난을 경험한 적이 없다.

가난하다고 느낄 틈이 없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엄마 아빠가 엄청나게 부유하게 키운 것도 아니지만 특별하게 부족함도 느끼질 못했다.

그렇게까지 욕심나는 것이 없었다.

세 발 자전거가 사고 싶었던 조금 더 어린 시절 아빠는 곧 두 발자전거를 타고 싶은 순간이 올 거라며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추천하셨고 나는 조금 서운했지만 받아들였다.

아빠말대로 나는 금방 보조바퀴까지 떼고도 전력으로 질주할 만큼 금방 성장했다.

수영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했다. 집 앞에 있는 야외수영장에 여름방학마다 등록 해달라고 했다.

엄마는 여름방학이면 수영을 등록해 주셨고 나는 현재도 물안경만 있으면 누구든 구할 수 있을 거란 근자감이 있다.


엄마는 짜장면은 좋지만 공부가 싫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에게 한 번도 공부하란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공부라는 건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았다.

가장 친하던 친구는 엄마가 학교 교사셨는데

시험 기간에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는 너무 놀랐다.

친구 엄마가 내준 시험지를 나에게도 풀라고 하셨다.

문화충격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겨울에 나는 느닷없이 학원이 다니고 싶어졌다.

엄마에게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흔쾌히 학원을 보내주셨다.

나는 정말 수학이 재밌었다. 집합이 첫 단원이었는데 집합을 공부하고 설명하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내 방 이불은 여러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었는데, 그 동물들이 나의 첫 학생들이었다.

매일 집에 와서 그 친구들에게 집합을 가르쳤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에 심취하여 스스로 공부를 하였다.

엄마는 불이 꺼지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와 그만하고 빨리 자라고 하셨다.

나는 자고 싶지 않았고, 보다 완벽하게 공부하여 갓벽한 시험 성적을 받고 싶었다.

우리 집 보일러실 문이 철제 같은 느낌이었는데 분필을 사다가 거기에 설명하고 또 설명하며 선생님 놀이에 심취했다.


그때부터 난 우리 집에서 그다지 잔소리 들을 일이 없는 구성원이 되었다.

아! 그때부터 거복목 전조증상에 말린 어깨증후군이 있었던 나에게

아빠는 활짝 펴라고 하셨다.


고등학교를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나는 여전히 공부를 제일 잘하고 싶었다.

우리 반 1등이 가장 부러웠고 대단해 보였다.

전교 1등은 나에게는 우상 같았다.

나도 열심히만 하면 우수한 성적을 툭툭 받는 그런 학생이고 싶었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정말 내 눈에는 너무나 멋있는 샘이었다.

역사 전공에 고대를 나오셨었다. 수업을 하는 시니컬하고 무심한 말투와 분위기. 필기하는 글씨체까지 너무 멋있었다.

선생님과 사적 대화를 나눈 기억이 전혀 없다.

선생님은 나를 기억조차 못하실 듯하다.

그렇게 나는 그다지 존재감 없는 그냥 조용히 적당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나도 고대를 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내 꿈 고대!

결국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고교 시절 가장 친했던 내 친구는 고대에 당당하게 합격하고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우리는 등하교메이트였는데, 그때 나누었던 우리만의 고급대화 같은 뉘앙스의 단어선택에 서로가 부끄러워서 웃곤 했다.

내 꿈을 대신 이뤄준 내 친구가 그때도 지금도 자랑스럽다.

그래서 지금도 고대에 합격한 누군가를 연대에 합격한 누군가보다 더 부러워하고 응원하게 된다.

우리 담임선생님이 연대 나오신 분이었다면 아마도 내 꿈은 연대였으려나…


어제 갑자기 같은 집에 사는 사춘기 구성원께서 엄마는 요즘 태어났으면 꿈을 이루었을 텐데라고 말하였다.

고대에 지금이라도 들어가 보라고 했다.

내 꿈이 어지간히 아이의 귀에도 들어갔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 아쉬움이라는 포장지로 돌돌 말아져 아이를 자극하고 있었나 보다.

갑자기 미안해졌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건 잘못이 아닌데… 어느새 나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엄청난 냄새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요즘 프사를 자녀 대학 합격증으로 매일매일 업데이트를 하는 옛 지인이 좀 자극이 된 것 같다.

카톡 업데이트 이후 연락이 끊긴 옛 지인들의 놀라운 소식을 의도치 않게 크게 보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자녀가 합격한 대학 자랑이다.

서울대 입학한 자녀가 얼마나 자랑스러우면 대문짝만 하게 프로필에 올릴까…


엄마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 번을 들은 적이 없었던 나는

내가 낳은 아이들에게 결단코 그런 잔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라고.

자기주도학습만이 결국엔 살아남는 거라고!

나 스스로 그렇게 정하고 학원 숙제나 시험 준비 등등을 아이들에게 스스로 하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이 작은 가정에서도 격차가 벌어졌다.

어떤 이는 자기주도학습 흉내를 내다가 진정한 주도자가 되었고,

다른 이는 학원 숙제를 제대로 못해가고 흥미를 잃어버렸다.


뱃속에서부터 석사수업을 같이 들어서 너무나 질려버렸던 건가 싶다.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엄마라는 사람은 과제를 하고 논문을 쓰며 스스로 재미난 일이라면 심취했지만.

아기는 그것조차 스트레스였을까?!


아비투스를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

격차에 대한 이해는 어디에서 오는가.

격차는 명백하지만 그걸 해석하는 법은 각자의 취향이다.


역시나 주어진 환경과 나만의 기질사이에서 누군가는 이루고 누군가는 접는다.


아비투스를 신선하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인 거고,

아비투스 때문에 불편했던 사람 역시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다.

단지, 개인의 경험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향기의 차이이지 않을까.

격차는 명백하지만 그걸 해석하고 소화시키는 법은 각자의 문제이다.


난 오늘도 고대인 내 꿈을 내 마음속에 고이 모셔두고,

대학에서 학문을 탐구할 우수한 인재들에게 그동안 너무 수고했다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뭐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결과까지 낸 것은 멋있는 거니까.

자녀의 서울대 합격증을 업데이트한 옛 지인에게도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낸다.

이와 더불어,


나만의 고유한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격차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현대적 살롱이 더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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