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병언니와 사춘기라는 알을 깰까 말까 사이
올해 추석 연휴는 상당히 길어서 누군가는 여행을 가고 나는 자궁제거수술을 해볼까 고민을 하였다.
의사 선생님에게 추석 연휴가 기니까 수술을 받고 2주 후 강의에 복귀할 수 있을까 여쭤보았었다.
2주 후 6시간을 서서 강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답을 듣고 수술이 더 무서워졌다.
주변의 수술 선배들은 서로가 뽐내듯 별거 아니었고, 금방 일상 복귀를 하였다고 했는데, 나에게 일상 중 하나인 강의를 2주만에는 할 수 없는 것이 별거가 아닌 건가.
그럼 무지하게 별 거인게 맞는 거 아닌가.
내가 요즘 많이 긴장되어 보이는지 아마도 위로를 해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추석연휴를 활용한 자궁제거 프로젝트는 실패로 마무리되었고, 나는 안전한 방학으로 수술 일정을 픽스하고 하루하루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리고 있다.
애 둘을 낳은 엄마인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나 스스로가 한심하거나 안쓰럽게 느껴진다.
둘 다 자연분만을 해서 그런가.
며칠 후면 나의 두 번째 분만기념일이다. 축제스러운 날이라 덩달아 나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마냥 뿌듯하다.
수술이 무산된 기나긴 연휴 동안 나는 사춘기라는 알을 깰까 말까 구성원의 추천으로 콩콩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콩콩팥팥에 이어 콩콩밥밥에 콩콩팡팡까지
콩콩시리즈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잠이 들었다.
멤버합이 너무 조화로우면서도 위트 있고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특히 시청자들을 향한 예의를 새하얀 드레스업으로 보여준 김우빈 출연자에 대한 예우가 더욱 돋보였다.
극진한 예우와 애정 듬뿍한 조롱까지 모든 게 조화로운 예능 맛집 같았다.
시청자가 웃을 수만 있다면 TPO에 따른 의복 선택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 희생정신이 너무 멋있었다.
TPO에 따른 스타일 미학을 김우빈이 새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리의 격식에다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치유를 해준다면 매너의 끝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도경수는 어떠한가.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다는 스타일링이 너무나 자연인 같았다.
분명 인기 있는 연예인인데. 저렇게 쏘내추럴할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광수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웃기다. 그런데 치아에 이상한 걸 달고 나오는 바람에 더 웃겼고, 사실은 이광수가 없었다면 이 모든 진지한 구석들이 다큐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예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분위기를 띄우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백조같이 느껴졌다. 가만히 존재만 하는 듯 하지만 사실 백조는 바쁘니까.
이렇게 미치도록 부조화스러운데 너무나 조화롭고 아름다워서.
그래서 웃으면서 위로를 받았고 위로가 더해질수록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자꾸만 내 옆을 둘러보게 된 것이다.
나에겐 누가 있는 걸까. 나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는 존재는 누구일까.
나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다. 나도 김우빈처럼 아플 때 지켜주는 신민아라는 존재가, 팬이,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저렇게 아픈 만큼 성숙해진 모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결혼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다. 도경수는 결혼식 참석을 위해 왕복 몇 시간의 거리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우정이 너무 진정성 있게 느껴져서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했다.
누군가를 저렇게 사랑할 수 있으려면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나르시시즘이 판치는 세상에서 훈훈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공인들이 참 소중하다.
그래서 나를 잠시 내려놓고 좋아했던 연예인이 누구였지 생각해 보니.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특히 서태지의 매력에 푹 빠져서 허우적댄 기억이 난다.
적극적인 팬으로서는 부족했지만 나 홀로 방구석에서 서태지! 서태지! 서태지 오빠의 새 앨범을 응원하고 고대했다.
이제 그만 은퇴한다는 기자회견이 나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었다.
창작의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쓰러웠고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를 진정성 있게 좋아하거나 사랑하려면 누군가의 팬이 되거나 아이들을 낳으면 된다.
나는 후자를 성공했다.
둘이나 낳았고, 지금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일어나서 말을 하거나 행동을 개시하면 확 줄어들었던 사랑이, 자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언제 이렇게도 컸을까. 언제 나보다도 더 커지고 생각도 깊어지고 더 멋있어졌을까.
그리고 내게 받은 사랑을 보답해 보겠다고 각자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을까.
왜 옆에 있는 건 잘 못 보는 걸까.
콩콩시리즈를 보던 그날도 분명 내 옆에 있었는데…
그날은 왜, 옆에 있는 소중하고 귀여운 존재는 내가 주기만 해야 하는 사랑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이미 많이 받고 있었는데. 대책 없고 계산 없는 순수한 사랑을 이미 흘러넘치게 받고도 받았는데.
그날의 상대적 박탈감이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했지만, 나와 아이들은 영원하다. 그리고 엄마라는 사람은 은퇴도 없다. 실직 위험도 없는 것이다.
어제 노래방에서 보여준 연예인 뺨치는 실력의 춤과 노래 영원히 기억할게.
너희들은 나만의 연예인이야. 인기가 추락할 걱정은 접어둬. 열성적인 1호팬이 항상 응원하고 있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