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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엘굿 Feb 24. 2024

전우생각

나는 군생활을 최전방에서 했다. 최근 경기북부 지역 최전방도 관광지 개발이 많이 되었다. 근처 꽤나 멋진 관광지가 개발되었다. 가족과 함께 관광지에서 신나게 놀고 숙박장소로 향했다. 내가 정한 숙박장소는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곳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숙박장소로 바로가지 않고 나는 23년 만에 내가 군생활을 했던 자대 앞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 마치 관광객처럼 셀카도 찍고 부대 앞 정문을 촬영했다.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 육공트럭에 내려 부대로 들어갈 때가 생각났고 전역을 하고 동기와 함께 부대를 나왔던 모습도 눈에 선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정말 멋진 관광지를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관광지에 온듯하게 혼자 신나서 두리번두리번거렸다. 그곳은 사실 어느 시골 마을이다. 근처에 큰 부대가 많이 있기에 나름 식당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구소멸지역 중 하나이고 작은 시골 마을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유흥을 열심히 즐기고 있는데 문득 가족들이 생각났다. 가족들은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 서있지만 부대 안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 군인들도 나를 그렇게 쳐다봤다. 나 혼자 들떠 아주 신나 하고 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차에 올라 숙소가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약 5km 남짓 거리였고 1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그 10분이 23년의 세월의 함축이었다.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나를 괴롭히던 최모 병장부터 내 동기 이 모 씨 재대해서도 꽤 오랫동안 연락은 했지만 지금은 안 하고 있는 선임까지. 좋아했던 여자친구가 부대에 찾아와 주었던 기억과 외박 나가 질퍽하게 술 마시고 취해 객기 부렸던 기억까지 모두 다.


정말 열심히 페인트칠했던 건물은 너무 낡았기에 철거를 한 것 같았고 초코파이 얻어먹기 위해 갔던 교회는 그대로 있었다. 잘못을 해서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았고 제대를 앞두고 내 담당관으로 오셨던 여자 상사를 짝사랑했었던 기억까지 생생하게 났다. 훈련에 잠을 못 자고 밤새 5분 대기했던 기억과 대통령이 헬기 타고 지나간다고 온 부대를 집안처럼 깨끗하게 청소했던 기억도 났다. 정말 흐뭇한 미소가 났다. 10분의 운전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미소를 지었는지 모른다. 정말 힘들었고 싫었고 많이 웃었던 추억이다. 그때 나는 한 내무반을 50명 가까이 사용했다. 그 50명은 다 어떻게 지낼까?


숙소로 잡은 곳에 도착해 보니 그곳 역시 나에겐 군생활의 추억이 잠긴 곳이었다. 육군으로 전역한 사람은 알 것이다. 세면백이라고 아주 작은 손가방인데 그곳에 세면도구를 넣고 세면하러 다닌다. 비누, 면도기, 로션, 샴푸 등등을 넣는다. 그 세면도구를 한 손에 들고 열 맞춰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던 계곡에 가서 여름에 놀았다. 군인들의 물놀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물싸움을 격렬 하게 했다. 내가 숙소로 잡은 장소가 그 계곡이 있던 곳이다. 10분 동안 키득거리며 웃었는데 도착하고는 정말 크게 웃었다. 와이프와 아이들은 이런 나의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괜한 짜증을 부리며 빨리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저녁을 먹고 혼자 숙소밖으로 나와 걸었다. 다시금 옛 전우들 얼굴을 떠올려 봤다. 십 년 전 끊었던 담배가 생각났다. 밤마다 전투화 손질을 하면서 전우들과 선임들, 간부들 욕을 하며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 그때 생각이 문득 났다. 그때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전우들과 나는 연락이 끊겼다. 재대하고 한동안 떠들썩하게 놀았는데 어느덧 하나둘 모두 연락이 끊어졌다. 연락을 갑자기 하고는 싶지만 주저하게 된다. 그냥 진짜 추억이 되어버렸다. 모두 잘살고 있겠지? 보고 싶다. 모두들. 그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좁디좁은 내무반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말이야. 죽기 전에 꼭 한번 다시 보고 옛 추억을 되살려 아무 생각 없이 떠들면서 소주 한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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