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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Jan 23. 2023

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후기 1

패기롭게 달려들기

 2020년 3월, 호기롭게 시작했던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이 휴학 없이 2021년 12월이 되었을 때 얼추 마무리되는 듯 싶었다. 필요한 모든 학점을 이수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졸업 필수 요건인 석사학위 논문을 통과하는 것뿐.


 하지만 2년 동안 대학원만 다닌 것이 아니었다. 담임, 수업, 행정 업무 등 학교 일과 학업을 병행하였고 게다가 재직 중인 학교와 대학원의 거리는 왕복 3시간 거리였으므로 심신이 매우 피로해진 상태였다. 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채비하여 대학원을 향해 엑셀을 밟는 일은 즐겁다기보다는 고역에 가까웠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학원에 덜컥 지원해버렸는지 과거의 나를 몹시도 자책하기 일쑤였다. 그 과정을 2년 동안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대학원 공부에 대해 '이만하면 됐다.'라는 오만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남과 동시에 휴식이 절실해졌다.


 사실, 쉬고 싶다기보다는 논문에 대해 두려움이 앞섰다. 나에게 논문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박식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학자, 연구자분들이 심혈을 기울여 힘들게 완성해낸 결과물이었다. 그러니 논문 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2월 14일 휴학 신청'이라는 알람을 설정해 놓고 논문은 1년 뒤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새학기를 한달 조금 넘게 앞두고 있던 1월 말, 먼 후일을 위해 논문 계획서라도 대충 써놓으면 나중에 조금이라도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연구 목적, 방법, 논문 목차를 휘갈겨 쓰고(매뉴얼도 없이, 내 마음대로)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큰 가닥은 잡았으니, 1년 동안 천천히 준비해서 내년 상반기에 한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다음 날,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심호흡을 하고,

 '교수님, 1년 정도 천천히 준비한 후 내년 상반기에 본격 논문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라고 말씀드려야지. 속으로 연습한 후 전화를 받았다.


- ...그래서, 언제쯤 쓸 예정인가요?

- 한 1년 쯤...

- 주제가 좋은데, 논문을 쓰려면 빨리 써야해요.

- 네, 교수님. 그래서 이번 1학기때 쓰려고 합니다.

- 그래요. 다음 달에 초안 보내봐요.


 큰일났다.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왜 미루겠다는 말을 못드렸을까.

 교수님께 다시 전화드려서 방금 한 말은 실수였다고 말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나는 또 스스로를 시간의 압박이라는 굴레에 내팽개쳐버렸다.


 석사졸업 논문은 표절률 검사도 해야하고, 학위논문 공개발표도 해야하고, 교수님들의 인준을 받아야 하며 학위논문 사이트에 업로드하여 전국민에게 공개해야 하는 것이므로 준비 기간과 집필 기간을 어느 정도는 잡아 놓고 시작해야 한다. 특히, 직장과 병행하는 교육대학원생들은 논문 집필 시간이 부족하므로 더더욱 기간을 길게 잡는 편이다. 적어도 1년 정도.


 그런데, 이제 겨우 3페이지에 달하는 계획서만 작성한 주제에, 당장 3월에 초안을 내고, 4월에 인쇄본을 드리고, 5월에 학위논문 발표를 하고, 6월에 석사학위논문을 완성하는 커리큘럼을 타겠다고?


 교수님과 통화를 마친 그 순간부터, 나는 '죄송합니다, 교수님' 봇이 되었다,


  현실을 회피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 내면서도 조급한 마음으로 남은 방학을 보냈다. 모순 투성이인, 한심한 모습을 비웃듯 '2월 14일 휴학 신청'이라는 알람이 울려댔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이제 그만 정신 차리라는 듯이.


 1순위는 당연히 학교 일이었다. 주어진 수업과 담임 업무, 행정 업무가 있으니. 하지만, 학교 일을 마치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너무나 고되었다. 퇴근하고, 운동을 마치면(운동은 포기하지 못했다.) 10시였다. 10시부터 12시까지 쓰면 얼마나 쓰겠는가. 한 페이지를 끄적이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구글 서치만 3-4시간을 했지만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허탈하게 잠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3월 28일 월요일. 교수님과 약속한, 초안 제출일이다. 준비된 것은 계획서에서 조금씩 살만 붙인 정도의 형편없는 문서뿐이었다. '어쩌지'라는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보냈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논문은 이번 학기에 완성하지 못할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를 구구절절 써내려 갔다. 검토까지 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 오늘 중에 논문을 보내도록 해요.


- ... 네, 교수님. 죄송합니다. 오늘 중에 꼭 초안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답장을 하고, 또 머리를 쥐어뜯었다. ‘못 하겠다’는 말을 못하니 고생길이 훤히 열릴 수밖에.


 그냥, 해 보자.


 울며 겨자먹기로 그동안 구글링했던 자료들을 미친듯이 읽으며 연구 목적, 대상, 방법, 지도안, 작품 분석, 기대되는 효과, 결론 등을 꾸역꾸역 짜냈다. 박카스, 커피, 핫식스를 몸에 들이부어가며.

 

 메일 전송 시각은 07:11. 안타깝게도 바로 출근할 시간이었다.


 3월의 학교는 또 얼마나 바쁜가. 수업, 상담, 업무, 시험 문제 출제 등 쉴새 없이 몰아쳤다. 그러나, 대학원은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학교에 차질이 빚어지게 할 수 없다. 단 한번의 결강도 없었으며 학급 아이들의 상담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고, 업무와 문제 출제 또한 리미트 기한을 넘기지 않았다.(논문 주제가 '효과적인 문학 수업 방안'이므로 실제 수업 과정과 결과물이 필요하여 반 아이들의 힘을 빌렸다. 너무도 순순히 미완성된 어설픈 수업에 따라와 주었다. 논문이 통과될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을 꼽자면, 우리반 아이들이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몸을 혹사시키는 일이 반복되었다. 교수님들을 정식으로 찾아뵙고 인쇄물을 드리기 전날에는, 필요한 연구 내용 및 자료를 추가하는 등 지도교수님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여 논문을 대폭 수정하였다.


 겨우 수정을 끝내고 기지개를 켜며 '이제 자야지'하고 밖을 보면 동이 트고 있었다. 출근 시간인 것이다. 어렵사리 탄생시킨 글 한편을 제출 2시간 전에 정신 없이 출력하고, 대학원을 향해 혼비백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과속 딱지가 하루에 2번 끊긴 적도 있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도저히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은 날도 있었다. 피드백 자료와 온갖 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카페 구석자리에 12시간 동안 틀어박혀 있었음에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한채 어두운 몰골로 귀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교수님을 뵐 때마다 피드백 받은 내용은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수정하고, 또 수정한 결과 거의 200페이지를 넘긴 거대한 논문 뭉치가 어깨를 짓눌렀다. 뭔가를 미친듯이 타이핑을 치면서도, '이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자꾸 들어 괴로웠다.


 5월 석사학위 논문 공개 발표날. 여전히, '이게 맞는 건가?'라는 회의감을 가득 안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눈을 한 채 힘겹게 발표를 마쳤다. 발표 후 세 분의 교수님께서 주신 피드백 내용을 정리하니, 피드백 내용만 한글파일로 10페이지가 넘어갔다. 언제까지고 한숨만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다. 6월에 있을 논문 최종본 제출일을 목표 지점으로 하여 가열차게 달렸다.


 하지만, 현재 내 본분은 대학원생이 아니었다. 3-4월에는 학급 아이들의 진로와 성적 변화 추이를 파악하며, 5월 중간고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을 하고, 6월에는 평가원 성적을 바탕으로 본격 수시 원서를 어디로 낼지 가닥을 잡아야 하는 고3 담임이었다.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 쓰며 단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루에 4-5시간을 수업하면, 공강 시간은 3-4시간이 주어진다. 수업을 마치고 행정 업무를 완수한 후, 공강 시간이 생기면 논문 작성용 노트북을 펼치고 신들린 손놀림으로 뭔가를 써내려 갔다. 그 순간만큼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해야 했다. '힘듦'이 뭔지 모르는 기계처럼 마구 타자를 치다가, 업무 전화가 걸려오거나 아이들이 찾아오면 그 즉시 대학원생의 탈을 벗어 던지고 교사 윤OO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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