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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Jan 23. 2023

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후기 2

드디어, 논문 완성



 그렇게 집에 퇴근하면, 온 신경에 묵직한 바위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손가락 하나, 눈꺼풀 한쪽 들어 올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틀에 한번 꼴로 밤을 새니, 눈이 시뻘게져 학교 사람들로부터 울었냐는 질문을 줄창 받기도 했다.

 끝내 결막염과 장염 진단을 받았다. 공강 시간에 학교 앞 병원에서 약을 급하게 짓고, 링겔을 맞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교실에 들어가 겨우 수업을 끝내곤 하던 5월의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들며 '내일 아침 눈 뜨면, 꼭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백배 사죄하고, 내년에 논문을 꼭 완성겠다고 말씀드려야겠다.'

고 결심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는 생각이 울컥 귓등을 때렸다.

 알람도 없이, 잠든지 한 시간만에 눈을 번쩍 떠 비실비실 노트북 앞으로 갔다.

 가습기 소리만 들리는 새벽에 눈물을 쏟았다.


 '뭘 위해서 이렇게 혹독하게 사는거지?'

 '남는 게 있을까?'

 

 누구도 나에게 대학원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된다며 또는, 굳이 필요 없어서 대학원까지는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는 등의 변명을 해도, 아무도 나를 질책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재직 중에 다니는 대학원은 경력으로 산정되지 않으므로 호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사립학교에 근무 중이었기에 승진에 활용되는 요소도 아니므로 여기서 학업을 중단하더라도 모두가 그럴 만하다 끄덕일 터였다.


 하지만, 온전히 스스로가 한 선택이었다. 내 선택에 내가 책임지고 싶다는 간절함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이 새벽에 심신미약 상태의 자아를 흔들어 깨운 것이다.


 잠을 못자면, 모든 판단력이 흐려진다. '될 대로 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논문 최종 제출일이 3주도 안 남은 시점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사실상, 다 온 것이다.


 이 '될 대로'를 나는, '논문 포기'가 아닌 '어쨌든 완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논문 최종본 제출 마감일은 6월 23일. 이날은 1학기 기말고사 원안 제출 마감일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평가 일정 중 가장 중요하다고 손꼽히는 시험 원안 제출일과 석사학위 과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논문 최종본 제출일이 겹치다니.


 엄청난 집중력으로 원안지의 오탈자를 모두 수정하여 기말고사 시험지 최종본을 먼저 제출하였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대학원생 신분으로 돌아와 내 자식같은 논문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본다는 마음으로 세심하게 검토하였다. 석사학위 과정이라는 험난한 대장정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우여곡절 끝에 6월 23일 23시 55분 경, 논문 완성본을 제출했다.


 새우등과 거북목이 되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은 대학원 과정을 마친 것이다.

 (대망의 학위논문 수여식은 8월 19일 금요일. 외출을 달아놓고 관리자분들의 허락을 받은 상태였으나, 가지 않았다. 수시 원서 작성일이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갈 걸 그랬다. 평생에 한번 뿐인데.)



 내가 노트북으로 낳은 자식, 너무 소중한 내 논문은 현재 riss에 실려 있다.

 부족한 솜씨로 얽힌 글자의 덩어리이자 자음과 모음의 집합체와도 같으므로,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러나, 다운로드 수가 200을 향해 가고 있다. 왜 그렇게 높은지 모르겠다. 무섭다.)


 '둘 다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심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라는 어리석은 질문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무수히 많은 일들을 끝내 완벽히 해낸 경험은, 삶의 모든 순간에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치환되어 나를 북돋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논문을 작성하는 동안, 대학원 원서를 우편으로 제출한 그날을 모든 고통과 불행의 씨앗으로 여기곤 했다. 미완의 논문을 첨삭받을 때마다 자존감이 산산히 부서져 괴로웠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에 부치고 버거워, 대학원 입학 면접을 보던 나를 끄집어내 벼랑 끝으로 미는 장면을 수없이 그렸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생각하기에 따라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한다.

 결막염 때문에 안약을 한 시간마다 넣고, 장염약을 복용하고, 링겔을 맞고 왔지만 체력이 후달려 50분 수업 중 20분을 자습을 줄 수 밖에 없어도, 그 고통을 섣불리 불행에 끼워맞추지 않으려 노력했다.


 논문을 작성하는 동안에 스스로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로 말미암아 아무리 힘겨운 시간이라도 언젠가 있을 커다란 기쁨의 중요한 한 조각이 될 것이라는 큰 교훈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나.'라는 진리도 함께.



 

 

 될 일은 반드시 될 것이다
 올 것은 마침내 올 것이다
 만나면 새 길을 갈 것이다

그러니 담대하라

부끄러운 것은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
 중단하고 포기하는 것
오늘 나는, 할 일을 할 것이니

 - 박노해, <될 일은 될 것이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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