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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Jan 26. 2023

고입 입학설명회 후기 1

쉴 틈이 없구나

"제가요?"


 직장의 모든 고인물들이, 맡은 업무 이외의 일을 덥썩 부탁받을 때 하는 공통 언어이다.


 어느새 이 학교에서 5년차 교사로 자리잡았다. 고3 담임만 5년 연속으로 맡은 탓에 입시에 대해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였다. 사실, 설명회를 맡아달라는 부탁은 꾸준히 들어왔다. 하필 고입 설명회 일정이 대학 면접 일정과 겹치기도 하고,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 열심히 거절해왔다. 내가 맡은 고3 담임 업무를 1순위로 두고 있고, 담임 일도 제대로 해낼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대입 입시 일정 이외에 힘이 분산되는 것이 꺼려졌으므로 매번 '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는 답변을 조심스럽게 드려왔다.


 하지만 올해 입학 설명회를 맡아달라는 부탁은, 교장 선생님이 하신 것이라는 말을 건네 오셨다. 그렇다면 더이상 거절하기는 힘들다. 교무부장 선생님께 "제가 해야 한다구요?"라는 말과 함께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도 모르게 강당 큰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서있는 자신이 자꾸만 상상되었다.(...)


 자꾸 거절의 말만 반복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눈 딱 감고 "...그럼 하겠습니다."라고 내뱉어버렸다.


 논문이 끝나니, 입학 설명회라는 거대한 시련이 또 들이닥쳤구나.

 할일이 생기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뭐든 빨리 끝내려는 성격 탓이다.


 무작정 노트북을 켰다.


 대입 제도를 꾸준히 공부해왔으나 중3~고1의 길목에 있는 학생,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담임으로서 반 학생과 1:1로 상담하는 것은, 예비 고1 학생 및 학부모들이 절실하게 듣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고 그들이 정말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과 천지차이다.


 고3은 지금까지 받은 성적과 학생부 기록물, 희망 대학, 모의고사 성적 등을 두고 대학 지원 전략을 짜는 것이라면 예비 고1을 대상으로 한 입학설명회는, 학생과 학부모라는 거대한 집단을 상대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첫번째로 할 일이다.

 

 허무맹랑하게 대입 제도만 줄줄 읊거나, 상관도 없는 현 고3의 입시 제도를 국어책처럼 읽는다면, 아마 객석에 앉아있던 분들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실망감에 자리를 박차고 모두 나가버릴 것이다.


 강당에 나만 남아있게 되는 끔찍한 상상을 애써 지우고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입학 설명회, 예비 고1 대상의 대형 학원 입시 설명회, 대입 전략 설명회 등을 샅샅이 찾아봤다. 너무 많은 영상을 찾아본 터라 2026학년도 대입 제도의 용어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비교과 축소, 교과 전형의 서류 반영,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중요성 상승...'


 키워드도 뽑아냈고 어떤 내용으로 발표 내용을 꾸려야 할지 알아냈지만, 잘하고 싶은 생각에 자꾸만 미루는 습관이 발동되어 버렸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핑계와 함께.


 프리젠테이션은 첫번째 화면에서 한달 넘게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반 아이들의 수시 모의 면접을 매일 2~3시간씩 실시했고 2학년 수업이 걸쳐 있었으므로 2학년 독서 수업 준비, 시험 문제 출제 업무를 병행했다.


 사실 학교 일과 중 입학 설명회를 준비할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면 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죄책감만 가진 채 미루고 또 미뤄버렸다.


 그런데, 무심코 들어간 학교 홈페이지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 버렸다.(사실은 꼭 봐야할 것이다.)


 '2023학년도 OO고등학교 입학 설명회 안내

  일시 및 장소 : 2022.11.00. 00시 00분

  문의 전화 : 000-000-0000


  많은 참석 바랍니다.'


 본교 입학설명회가 진행되니 시간이 되시는 예비 고1 학생, 학부모님들께서는 꼭 참석해달라는 팝업창이었다.


 내가 담당자인데... 아직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온갖 잡다한 입학 설명회, 대입제도 영상을 본 것뿐. 어지럽게 뒤엉킨 발표 내용들을 이제 보기 좋게 나열하고 듣기 좋게 정리해야 한다. 달력을 보니 정확히 13일이 남았다. 이제 진짜 미룰 수 없는 타이밍에 온 것이다.



 ...늘 그래왔듯, 포기하지 말자.


 하는 데까지 해보는 것이 내 장점이다 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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