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빛 Oct 31. 2021

고통을 견디고 밀어붙이는 힘

운동 중독의 삶

 운동을 생활화한 것은 5년 정도 되었다. 그전까지는 학생이거나 수험생이었으므로 방학 또는 시험이 끝나야만 운동할 시간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운동하기 위해 외출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다. OMR 마킹을 밀려 쓰는 바람에 수능을 망쳐 정신이 온전치 못했으므로 신체라도 건강하게 만들어 보고자 헬스장에 등록했다.


 스트레칭 5분, 러닝 머신 30분, 싸이클 30분에 근력 운동 약 10분. 운동을 좋아하는 가족과 인터넷을 통해 배운 루틴이다. 약 두 달 정도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운동했으나 운동하는 순간이 즐거웠던 적은 거의 없다. 시간은 도대체 왜 이렇게 안 가는지 타이머만 계속 쳐다봤으며 운동이 끝나면 잠시 기분이 좋았을지 몰라도 자기 전, 다음날 또 운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그 뒤로 일 년에 두 달 정도는 헬스장에서 러닝 머신, 싸이클을 꾸준히 탔다. 나에게 '운동한다'는 곧 '헬스장을 등록한다'와 동의어였으므로 '운동'이라는 사전에 '단조롭다, 지겹다'는 형용사를 달고 살아왔다.


 일과 임용 공부를 병행할 때는 헬스장에 가는 것도 귀찮아 집에 실내 사이클 머신과 요가 매트를 구비해 놓고 퇴근 후 홈트레이닝도 자주 했지만 운동은 여전히 재미없는 일과였다.


 운동에 대한 편협한 생각은 이 운동을 만난 후 완전히 달라졌다.


 필라테스와 플라잉 요가다.


 퇴근 후 더 이상 독서실에 가지 않아도 되던 때였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누워 휴식을 즐겨도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에 공백이 생기면 부랴부랴 책을 챙겨 독서실, 카페로 튀어가던 임용 수험생의 습성이 남아있기라도 한 듯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가 마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남은 삶에 도움이 되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찾은 결과 '운동'을 하면 되겠다고 답을 내렸다. 헬스장이나 홈트레이닝이 아닌, 색다른 운동을 찾고 싶었다. 자주 다니던 동네에 유난히 눈에 띄던 간판을 사진 찍어둔 기억이 나 무턱대고 전화해서 등록했다. 그곳이 내 삶의 동력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필라테스 기구인 리포머.(집에도 한 대 사놓았지만 처치 곤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월, 수, 금은 필라테스 수업이 진행되며 화, 목은 플라잉 요가 수업을 한다. 필라테스는 그럭저럭 따라 할 만했다. 난이도도 높지 않았으며 원장님이 너무나 세심하게 잘 봐주셔서 사용하지 않던 근육과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느낌이 들어 운동이 끝나면 항상 기분 좋은 상쾌함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플라잉 요가 수업은 가히 온몸을 비트는 '고문'이었다. 내 몸이 빨랫감이 되어 쥐어짜지는 것을 느꼈다. 해먹에 매달리는 것이 악력, 다리힘, 근력 모두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는 일이라 앞에 별이 보이고 정신이 흔들렸지만 양옆, 앞뒤 수강생분들과 원장님은 깃털 같은 움직임으로 모든 동작을 물 흐르듯 해내셨다. 주위 이야기를 들어보니 플라잉 요가를 시작한 지 다들 3개월 이내 그만뒀다고 한다. 온몸에 멍이 들어 견디지 못해서다.


 여기서 또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시작한 길은, 포기해선 안 된다.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한다. 피멍이 들든, 해먹에 발이 꼬여 넘어지든 될 때까지 한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수업에 나왔다. '이걸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동작이 많았지만 그냥 따라 했다. 근육과 신경이 끊어질 것 같아도 무작정 루틴을 따라갔다.


 플라잉 요가 수업 두 달이 지난 후, 드디어 '투 다빈치'에 성공했다.(너무 기뻐 달력에도 표시해 놓았다.) 플라잉 요가의 기본인 다빈치 동작의 성공을 시작으로 또 다른 동작을 완벽히 해낼 때마다 근력, 체력과 함께 자존감이 덩달아 높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때부터 운동을 통한 쾌감, 성취감에 맛 들리기 시작했다.


 필라테스 센터에 다닌 지 4년 차가 된 지금, 필라테스와 플라잉 요가는 절대 빼먹어서는 안 될 소중한 하루 일과가 되었다. 대학원 수업이나 야자 감독 때문에 운동을 못 가게 되는 날이면 그날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우울했다. 모든 일상과 약속을 운동 일정에 맞추게 된 것이다.


 필라테스와 플라잉 요가 수업은 50분~1시간 정도였으므로 퇴근 후 운동을 하면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 체력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느껴 강도가 더 센 운동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집 앞에 헬스장, 사우나, 각종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큰 스파랜드가 생겨 망설이지 않고 등록했다. 필라테스나 플라잉 요가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새로운 운동을 할 요량이다.


 새롭게 나의 일상을 깨우게  운동은 러닝 머신, 스쿼드나 파워 레그 프레스 등의 근력 운동, 스피닝이다. 필라테스를 마치고 헬스장에 들어서면  1시간에서 1시간 30금방 지나간다.


 필라테스, 플라잉 요가, 30분 러닝, 근력운동, 스피닝을 하루에 적절히 배합하여 총 2시간 30분~3시간가량의 운동을 끝내면 그제야 제대로 하루를 살아낸 느낌이 든다. 애플워치에 움직이기, 운동하기, 일어서기 목표가 모두 달성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하루를 보낸 것이다.


렛 풀 다운 20kg 20개씩 4세트. 언젠가 30kg를 30개씩 4세트를 할 것이다.

 

 사실 아직도 운동가기 전, 귀찮음이 사고 전체를 지배한다.


 '어제도 가고, 엊그제도 갔으니 오늘은 쉴까? 너무 배부르고 졸린데...'


 가기 싫은 마음은 언제나 들지만 운동 갈 시간이 되면 아예 생각을 멈춘다. 무의식적으로 운동복을 주워 입고 현관을 나서는 것이다. 어떤 일이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면 안 된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도구를 챙기고 집을 나선다'는 행동만 하도록 사고 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


 막상 도착하여 운동을 시작하면 온몸이 뻐근하고 아픈 것 같다. 또 내가 나에게 어리광을 피운다.


 '역시 힘드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안 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해 보자.'


 라는 생각으로 인상 찌푸려지는 고통스러움을 참아본다. 10분만 더, 5분만 더, 한 세트만 더...

 그야말로 '눈 딱 감고' 힘겨움, 고통을 인내하다 보면 어느새 끝나 있는 것이다. 근육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지고 가쁜 호흡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만이 남는다. 운동을 끝낸 직후 느끼는 감정은 마약과 같다. 성취감과 뿌듯함이 전신을 가득 채운다. '운동에 중독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운동을 매일매일 한 이후 마음에도 근육이 생겼다. 신체적인 한계를 무릅쓰고 고통을 밀어붙이는 힘은 정신력에도 크게 작용하는 것을 업무, 생활 속에서 자주 느껴왔다. 전에는 '더 이상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금방 사고의 끈을 놓아버리거나 드러누웠다면 지금은 '아니야, 조금만 더 해 보자'는 마음이 먼저 든다. 상념에 빠질 때도 자신에 대한 비관이나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운동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 아무도 없는 헬스장, 거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마음껏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섭리라고 한다. 그러나 나의 남은 삶만큼은 젊고 건강하게 살아내보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열 아홉이 푸는 문제가 맞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