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리뷰
상하원 의원 전원과 대통령, 내각이 모두 폭사하며 시작하는 미드 <지정생존자>는 모든 에피소드가 소음으로 가득하다.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수십개의 마이크가 따라 붙고, 정보는 항상 유출되며 내각과 주지사, SNS까지 정부를 흔든다. 대통령이 된 주인공은 지명 직후 화장실에 가서 토한다. 소음 때문이다.
<체르노빌>은 마찬가지로 지구상 처음 보는 재난을 다룬다. 하지만 대척점에 있는 세계를 그렸다. 문자 그대로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재난이지만 내내 고요하다. 방사능 측정기의 지직거림이 귀에 거슬릴 만큼 고요하다. 진공 속에 있는 느낌이다.
<지정생존자>의 모든 에피소드는 새로운 사건의 연속이다. 시끄럽다. 어쨌든 해결한다. <체르노빌>은 폭발 이후 '사건'이 없다. 현상을 사건으로 만드는게 권력이고, 권력은 더이상의 사건은 없다고 결정했다. 한 쪽에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발언, 가짜뉴스와 '소소한' 총격전이 이어지고, 한 쪽은 수만명이 숨진 재앙이 터져도 고요하다.
권위주의 체제는 매력적이다. 파시즘에 대한 수사 중 널리 쓰이는게 '정치의 미학화'다. 성과도 좋은 경우가 많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무 수천만명을 집중할 수 있는 힘. 제도라는 튼튼한 틀에 인민의 능력을 담아내니 오합지졸인 옆나라보다 앞서지 않을까한다.
하지만 체제는 시민의 사고도 규정한다. 당과 위원회 밖에서도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도 이런 체제에 물든다. 그날 조종실의 누구도 파국으로 갈 지시를 거절하지 못했다. 당이 시키지 않아도, 이미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제도가 담았던 창의적이고 뛰어난 인민은 사라지고 체제의 일부가 되고 만다.
질식해가는 체제가 선택하는 건 영웅이다. 지금도 '체르노빌 신화'로 회자되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한국에서도 이국종 교수가 응급의학계의 현실을 고발하니 성금을 모아준다. 대가를 달라했더니 성금으로 화답했다. '미학화'가 좋아하는 수법이다. 안좋은 신호다.
한국의 정치를 한탄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지적이 '5년마다 뒤집어지는 대계획 없는 정치'다. 하지만 거꾸로 한 정권이 큰 실수를 해도 5년이다. 한국이 베팅 할 수 있는 한도는 '5년'이다.
반면 10년, 20년이고 풀베팅을 하는 나라도 있다. 한두번은 딸 수 있지만 잃으면 다 잃는다. 영원히 이기는 베팅은 없다. 옆나라에선 고지가 눈 앞이라며 제어봉을 빼고 있다. 파국을 피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인간을 소음이 전혀 없는 방에 가둬두면 며칠을 가지 못하고 미쳐버린다고 한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와 저급한 SNS, 정치권의 소란에 염증이 난 사람이 꼭 봤으면 좋겠다. 소음은 원래 불편한 것이고, '적당한 소음'을 찾는 순간 적막해진다. 체르노빌이 그리는 세계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