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7번방>이나 <베테랑>류의 신파 혹은 사이다 영화만 인기를 끄는게 문화적 퇴행으로 느껴지고 어쩌다 <올드보이>와 <왕의남자>를 만든 한국 영화계가 이렇게 됐나 하는 자괴감도 느꼈다. 그런데 요새 생각이 바뀌었다. 요몇달 영화관에서 일을 하고있는데, 내가 생각하던 영화 소비계층은 '데이트하는 20대 커플' 혹은 '영잘알 혼자'였다. 즉, 바로 나 자신만을 영화의 소비계층으로 상정했었다.
하지만 일하면서 느낀건 대한민국의 문화공간 중에 영화관만큼 세대와 빈부를 아우르는 공간이 또 없다는 사실이다. 조조시간엔 할일 없는 대학생만 오는줄 알았다. 그런데 조조시간에 얼마나 많은 중년세대들이 영화를 보러오는지. 노인분들 중에 영화관 포인트가 수만 포인트나 되는 헤비유저가 얼마나 많은지 영화관에서 일하기 전에는 몰랐다.
특히 놀란 점은 고객분들 중 장애인들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보통 영화관들은 경로/유공자/장애인에게 우대요금을 제공하는데(50% 할인 혹은 5,000원 정액제) 이 요금을 이용하는 분들 중 상당수가 장애인이다. (이후에 관심이 생겨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230만명이라더라. 외국인보다 많다.)
특히 내 근무시간인 오전시간엔 정말 많다. 난 예전 선별적 복지를 지지하는 관점에서 '골짜기를 메우는 최소한'의 복지를 지지했었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안되는 복지혜택이 있다. 예컨데 장애인의 이동권처럼 단지 돈을 주는걸로는 할수없는 복지. 그런 면에서 영화관의 존재는 문화소외계층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은 배고파서 자살하지 않는다.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 보다 문화적 혜택을 늘릴수있다면 생의 목적을 잃고 포기하는 자살문제 해소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전 영화관 좌석의 한계비용은 0에 가깝다. 바라건대 앞으로의 논의에서 복지라는 것에 대해 돈 뿐 아니라 이런 다양한 경험에 대해서도 주목했으면 좋겠다.
이런 관점에서 한없이 대중적이고 또 대중적인 한국영화의 경향이 아쉽지만 영화소비계층이 말그대로 전국민이라는 점에서 납득할만하다. 애초에 영화란 자고로 고상하고 작품성 있어야한다는 생각자체가 지극히 골방 룸펜스러운 생각이었던것 같다. 역시 생각과 현실은 다르다. <7번방>을 비웃었다. 어려운 영화가 낯선 사람들에겐 기다리던 영화다.
또 생각해보면 천만영화류의 수준이 낮은것도 사실이지만 <비긴어게인>(약300만)이나 놀란의 작품이 기똥차게 성공하는 나라가 또 우리나라다. 그런 면에서 나름 고상한 취향의 관객이 최소 수백만은 있다는것. 뭐든 잘 모를때는 다 우스워 보인다.
덧. '영화 발권 같은걸 왜 아직도 사람이하지?' '그냥 폰이나 무인발권기로 하면 되는거 아냐?' 라고 생각했었는데, 일해보니 이거 얼마나 '나'의 관점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