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저러니 해도 데이트하기 좋은 곳은 연남동이고 최악은 강남과 코엑스다.
코엑스 메가박스 4관을 좋아해서 오긴 하나 코엑스는 최악이다. 왜? 내 생각엔 입점 건물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코엑스 입점 점포들의 전면부는 최소 10m 에서 길게는 20m까지 된다.
사람의 보행속도를 시속 4km/h라고 하면 초속 1.1m/s다. 즉, 코엑스에선 한 개의 매장을 지나치는데 최소 10초에서 길게는 20초가 걸린다. 내가 ZARA매장에 관심이 없어도 다음 매장을 만나기까지 최소 10초를 걸어야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관심 없는 것을 참는 한계는 7초다. 유투브 광고 스킵은 5초다. 반면 네이버캐스트는 15초를 보게한다. 소비자들이 후자에만 욕설을 퍼붓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긴 전면부를 가진 점포로 가득한 강남이 재미없는 이유도 마찬가지. 물론 거기에 너무 넓어 차에 압도당하게 만들며 길건너와 단절을 만드는 도로의 문제도 있다. 강남의 이쪽과 저편은 분단돼있다.
반면 연남동의 가게들은 대게 폭 5m 정도로 좁게 빼곡히 들어서있으며 지하와 2층 위에는 또 다른 점포가 들어서있다. 보행자 입장에선 대략 5초마다 새로운 가게를 만나며 수직적으로도 여러 구경거리와 선택지를 마주할 수 있다.
코엑스로 돌아가보면, 코엑스의 그 무지막지하게 넓고 을씨년스러운 하얀 복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좌판도, 예술작품도, 좌석도 없다. 코엑스에서 통로는 단지 걸어서 앞으로 가기 위한 공간일 뿐이다. 양쪽과 하늘이 막혀있어 답답하다. 조명은 왜 또 그리 어두운지. 더럽게 크기만해서 사람들의 '유속'만 빨라진다
코엑스는 내부도 엉망이지만 삼성동에 끼친 해악은 재앙이다. 도심에 내려앉은 거대한 코엑스에 외부를 향해 열려있는 가게는 거의 없다. 코엑스의 둘레는 2km인데, 보행속도로 따지면 30분이다. 안쪽으로 모든걸 껴안고 있는 코엑스 덕에 삼성동 일대를 걷는 시민들은 30분가량 마땅한 상점 하나 없는 지루한 거리를 걷게 된다.
그 결과 코엑스는 거리를 죽이고 있다. 이 문제는 코엑스 만이 아니라 건대의 스타시티 같은 류도 마찬가지. '자폐적' 대형쇼핑몰들의 해악이다. 땅값은 올랐을지 모르나 거리는 재미 없어졌다. 코엑스 같은 민폐가 서울시내에 한두갠가.
얼마나 사람에 관심없는 위인들이 돈을 퍼부어 이런 흉물을 만들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