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는 왜 '우즈베키스탄'으로 유학을 떠났을까

by 라나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아,,,외국에서 나왔어요’

‘우와! 어느나라요?’

‘우즈베키스탄이라고...아실진 모르겠지만 그 나라에서 4년동안 공부했어요’

‘헐! .어떻게 그 나라에서 공부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졸업 후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했던 대화의 패턴이다. 내가 개발도상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을 한다고 하면 현지에 있던 한국인들도, 한국에 있는 한국인들도 입을 모아 묻는다. ‘왜 우즈베키스탄이에요?’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속 시원하게 하지 못한다. 돌아보면 왜 하필 우즈베키스탄이었는지, 어쩌다 거기에서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사실 그 당시의 나는 직감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개발도상국으로 유학간 사람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한국에서 원하는 대학을 못갔으니까 도피한거지’ 보통 속으로 그렇게들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이런 순간이 오면 나는 남들이 듣고 이해하기 편할법한 말들로 대충 얼버무리고 빨리 대화의 화제를 돌리려고만 노력했다.


누군가 말했다. 어떤 말을 듣고 내 마음이 긁히는 이유는 그 말에 사실이 첨가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도 "내가 도피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지금은 러시아어와 상관 없는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내가 나의 유학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거기에서 시작한다. 지금 생각하면 우즈벡 유학은 나의 인생의 방향을 틀어준 확연한 분기점이다. 과거의 파편화된 경험들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싶었다. 유학을 결정하기까지 수 많은 결정의 기로에서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글을 발행하는 목표이다.


당시에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고, 도피라는 생각이 든 이유를 나도 조금은 인정했다. 한국에서 한의대를 목표로했던 나는 한의대 수시 면접에서 떨어지고 우리 지역에서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경영학과에 붙었다. 원하는 대학은 떨어졌지만, 남들이 그래도 인정해주는 대학교를 간다는 선택지가 내 앞에 놓여졌다. 초중고 모범생 스테레오타입으로 살아온 나는 대학까지도 꿈 없이 그냥 내 앞에 놓여있다는 이유로 주어진 길을 가고싶지 않았다. 사실은 뻔한 꿈 없는 고등학생의 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심지어는 졸업한 후에도 고 3 겨울방학의 내 의식의 흐름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하고 싶다’는 마음을 따라간 것 뿐이다. 초중고 한국에서만 자라고 수능용 영어만 공부한 아이가 외국이라는 별천지가 궁금해졌고, 수많은 외국 중 딱 우즈베키스탄에 사업을 하고 계시는 외삼촌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들은 마치 내게 다른 세상을 줄 것만 같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 같았다. 시작은 그래, 외삼촌의 권유였다. 내가 막 고3이 되었을 때 우리 집안 분위기는 아버지가 우즈벡에서 사업을 하냐 마느냐로 어수선해졌었다. 아버지께서 홀로 3개월 우즈벡에 다녀오시기도 하고 현지에서 사업을 하시는 삼촌으로부터 딱 그시기에 많은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그당시만 해도 나는 유학이라는건 우리나라보다 잘 살고 이름있는 명문대로만 가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삼촌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선택지를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그 이야기들이 그저 시키는대로만 말 잘들으며 살아오던 나에게 내게 주어진 길 밖의 세상을 궁금하게 만들어준 촉진제가 되었다.


주변사람들은 우즈벡 유학을 고민하는 나를 보며 이상하다고 했다. 괜히 마음에 헛바람이 들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성적 잘 받고있고 공부도 잘하고 별 일 없으면 대학도 순조롭게 잘 갈텐데 그런애가 왜 굳이 개발도상국까지 가서 대학을 다니겠다는건지 담임선생님도 이해하지 못하셨고 우리 아빠, 고모는 특히 아쉬워했다. 차라리 재수를 하라고 했다. 너는 그동안 공부를 잘 해왔으니 재수해서 수능성적을 조금만 올리면 교대, 한의대를 갈 수 있다고. 그마저도 나는 딱히 원하지 않고 별 생각 없었으나 어른들의 눈에 보이는 ‘정답’을 내게 강요한 것이다.


나는 가스라이팅이 별 것없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생각을 무시하고 내 생각이 정상이기 때문에 상대를 고쳐줘야하고 조언해줘야 한다는 마음에서부터 가스라이팅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눈에 나는 마냥 허파에 바람이 분 어린 아이처럼 보여서 나름의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선택에 불신을 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그래서 나도 이게 무모한 도전일지 용감한 도전일지 결정을 하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인생의 숙제 ‘수능’을 친 직후 나는 마음 속으로 어떤 결정을 마쳤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다들 놀러다닐때 나는 아이엘츠 학원을 등록했다. 무조건 영어 점수는 한국에서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로 다들 놀 때 나는 학교 마치면 바로 학원으로 향했다. 2달간 영어 공부에 몰두해서 원하는 점수를 한번에 획득하고 1월 말 졸업식을 하자마자 우즈벡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렇게 나의 우즈벡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글을 쓰게된 두번째 이유는 나만이 겪었던 유학시절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지만 참고할만한 참고 서적은 많다. 글로벌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21세기 학생들은 다양한 국가로의 유학을 결정한다. 그리고 각자의 고민과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구글에 ‘유학생활’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연관검색어가 쭉 뜬다.


‘유학생활 힘든 점’

‘유학생활 잘하는 방법’

‘유학생활 현실’

‘유학생활 외로움’

‘유학생활 포기’


나는 20살이 되던 2016년에 홀로 우즈베키스탄행 비행기를 탔다. 모든 일을 혼자서 헤쳐나가야했지만 유학을 하는 4년은 정말 행복했고, 즐거웠고, 외로웠고,우울했고 그리고 힘들었다. 그 와중에 정말 남들은 겪지 못할 다사다난한 일들도 겪었고 무엇보다 4년을 혼자 버텨낸 내가 너무 대견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인생의 교훈들과 나만의 방법들, 그리고 다져진 내성들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유학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힘듦을 극복했던 방법들, 유학생과는 뗄레야 뗄 수없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들 등등. 나의 4년을 되돌아보고 그때의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갔는지를다시 한번 떠올리고 글로 기록해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