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온실을 벗어나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방인 생활

by 라나


어렸을적의 난 부모님 말씀 잘 듣는,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다는 생각으로 공부만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다. 열심히 하면 결과가 정직하게 나오는 공부가 오히려 마음 편하기도 했다. 꿈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고3이 되고 갑자기 사람들이 내 꿈을 물어보고 목표를 정하라고하는게 아닌가. 나는 꿈이 없는데… 앞만 보고 달려오던 내 앞에 엄청난 황무지가 나타난 것만 같았다. 남들은 다 나름의 꿈을 찾아서 목표 대학도 척척 정하고 확신을 가지고 달려가는데 나는 갑자기 방향을 잃은것이다. 그냥 주변에서 여자는 초등학교 교사가 최고니까 교대를 가야한다, 여자가 늙어서도 하기 좋은 한의대가 좋다고 하니까 마치 내 마음이 그쪽으로 끌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애들을 가르치는 교대는 싫었고 한의대는 멋져보이고 비전이 있어보여서 어영부영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있었다. 그리고 내신은 잘 쌓아뒀기 때문에 만만하게 붙을거라고 생각되는 대학이 있었어서 남들처럼 엄청나게 부담감을 가지고 고3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방황하고 있었을 뿐. 그 때 삼촌이 나에게 툭 던진 말 한마디에 꽂혔던 것 뿐이다.


‘사실 대학이 중요한게 아니야. 대학에서 네가 뭘 보고 스스로 배우는지가 중요하지. 이제는 글로벌시대야. 우즈베키스탄에 영국대학이 있는데 여기서 영어로 공부를 하고 밖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우면서 2개 국어를 마스터해보는건 어때? 미래에 너에게 큰 무기가 될거야’


삼촌의 그 말이 나에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한국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없었기에 더욱 더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가보고싶었다. 그렇게 어렵다는 러시아어라니..! 잘하면 나에게 엄청난 무기가 될 것 같았다. 물론 배워보니 한 언어를 ‘마스터’한다는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고 지금도 나는 러시아어를 공부하고있다. 그리고 그간 한국에서 걸어왔던 나의 발자취는 너무 재미없었다. 내가 원해서 따라가고있던 길이 아니라 모두가 그게 ‘맞다’고 말했기 때문에 남들의 속도에 맞춰서 따라갔던 것이다. 살면서 한번쯤은 그 길에서 벗어나서 내가 내 길을 만들어보고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주입식 교육에 순응하며 살았던 스스로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누가 시키는 것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당연했던 내게 우즈벡 유학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선택지가 생기자 그게 더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시의 나는 내가 새로운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다 반대할때 과감하게 가겠다고 결정한 나는 전혀 새로운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온실을 벗어난 내게 가장 먼저 다가온 어려움은 ‘도움 받기'였다. 한국에서 살 때는 부모님의 따스한 보살핌 아래에서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상황이 없었지만, 유학생은 항상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배운 첫번째 법칙은 바로 ‘인생은 도움 받고 도움 주며 살아야한다’는 것.


우즈벡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상황이 없었다. 보통은 내 선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봤자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는 ‘도움 받는 일’에 스스로가 굉장히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작은 외삼촌의 꼬드김이었지만 막상 내가 우즈벡으로 유학을 떠날 때 쯤 영국으로 대학원 공부를 하러 떠나셨다. 도착하자마자 지낼 곳이 없던 나는 삼촌 회사 직원분의 집에서 짧은 한달을 지내게 되었다. 그 땐 내가 우즈벡 현지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러시아어는 알파벳도 모르지, 지리도 모르지, 아는 사람도 없지…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난생 처음 그런 상황에 놓이자 모든 것이 불편했다. 삼촌 직원분 집에 머무는 것도 눈치보이고 그분들 일상에 자꾸 내가 껴서 같이 돌아다니는 것도 불편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냥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집의 리듬에 맞춰 살면 되는 문제였는데 당시에는 자꾸만 죄송한 마음이 들고 불편했다. 그 집을 나와서도 내가 혼자 살 집을 구하는 일, 학교 입학을 위해 여러방면에서 나는 도움이 필요했다. 20대 초반에는 최대한 도움받는 일 없이 내가 얼른 능력을 키워서 혼자서 잘해내고싶은 욕심이 컸다. 그래서 그렇게 불편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 때 마다 ‘얼른 내가 우즈벡에 익숙해져서’ ‘러시아어 공부를 해서’ 혼자 해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하지만 1년, 또 1년 살다보니 이 세상은 내가 아무리 잘나진다고 한들 나 혼자서 살아갈 수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을땐 주변의 도움을 그 때부터는 내 능력이 안될때 겸손하게 도움을 청하고 감사히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낀 것이다. 이렇게 무력한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으니 상대는 얼마든지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나 스스로가 선뜻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얻은 첫번째 깨달음이자 지금까지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공부는 내가 마음먹으면 100점이고 1등이고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할 때는 아무리 조바심을 내고 초조해한다고 한들 그 경험의 갭을 빠르게 채울 수는 없었다. 그럴때 우리는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느끼게 된다.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굉장히 많이 찾아온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유학 에피소드를 풀다보면 나올 이야기들이지만, 나 혼자 살 집을 구할때, 긴급상황이 생겼을 때, 사소하게는 동네 맛집을 알기 위해서라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즈벡 생활을 하며 첫 반년정도는 정말 내가 여기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적응만 하면 내가 뭐든 척척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급했던 나는 학교 직원에게 비자 사기를 당해 $500를 날리는 경험을 하고야 만다…그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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