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500 내놔
우즈베키스탄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나선 길. 이곳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해 한국인에 대한 호의적인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했고, 나는 외국에서도 편안함을 느꼈다. 그 속에서, 한국에서와는 달리, 나는 미처 경계하지 못했던 함정에 빠지게 될 줄 몰랐다.
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 결과를 받은 나는 외국인 유학생으로서 다른 친구들에게는 불필요하지만 나에겐 필수적인 한 가지 단계를 더 거쳐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학생 비자받기였다.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비자 발급과 관련된 복잡한 절차를 겪어야만 한다. 내게 말해주신 것은 학교 측에서 지정한 교직원이 이 모든 절차를 대신 처리해 준다는 것이었다. "정말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외국인 학생들을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는데 우리 학교도 그랬다. 그곳의 직원이 나의 비자를 도맡아서 책임져주었다. 그의 이름은 글쎄,, 이름마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내게 자신이 이 일을 오랜 기간 동안 맡아왔으며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의 비자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 왔다며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그의 당당한 눈빛과 정확한 설명에 나는 완전히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엄마닭을 따르는 병아리처럼 그 사람이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의심이라는 건 할 생각도 못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우즈베크에서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오비르’라고 하는 공기관에 내 여권과 학교 서류를 제출해서 비자를 신청하고 약 2주 후에 여권을 돌려받는다. 그러면 이제 ‘거주등록’ 이란걸 해야 하는데 이건 그 동네 경찰서에 가서 여권을 맡기고 여권에 그 도장을 받아야 한다. 이 두 과정에 있어서 드는 돈이 $500 정도였는데 원래는 우선 여권을 신청해서 그것을 받고 그다음에 거주등록에 대한 돈을 주고 거주등록증을 받는 절차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원래 계획된 날짜보다 일찍 비자를 받아준다고 얘기를 했고 나는 이 $500를 한 번에 이 사람에게 주었다. 학교에서는 이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고 나도 무조건 이 사람이 정직하게 일할 것으로 생각해서 이 사람에게 여권과 돈을 맡기고 얌전히 모든 절차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던 거지..
그러나 그로부터의 일은 예상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는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처음에는 나는 그냥 바쁜 일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여권을 돌려주겠다고 한 날짜가 지났는데도 해당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없었고 내가 전화를 걸어도 그 사람에게 닿지를 않았다. 성질 급한 한국인은 참지 않지. 학교에 따로 연락을 해보니 이게 웬걸? 그 사람은 최근에 학교에서 안 좋은 일로 해고당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타임라인을 짚어보니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였다. 학교 안에서도 이리저리 채무관계가 복잡했던 이 직원은 회사(우리 학교)에서 채무 관련 문제로 해고를 당했고 본인이 해고당한 것을 모르는 상태의 외국인 학생들에게 접근해서 돈을 받은 후 (마치 수거하듯) 튀었던 것이다. 그것도 몰랐던 나는 오매불망 가져간 여권을 주기만을 기다렸었는데 이때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내 돈이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는 내가 책임지고 그 과정을 다 알고 있고 이 돈이 왜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학교 교직원이면 무조건 나를 위해서 알아서 모든 일을 처리해 주고 사기를 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돈이 중간에 끼어있으면 사기사건은 왕왕 일어난다는 것. 학교에서는 나름 대책을 세운다고 학교 변호사랑 사기 피해자들을 연결시켜 줬는데 사실상 한국에서도 사기당한 돈은 돌려받기 어렵듯 우즈베크도 똑같았다.
머리 털나고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토록 믿고 의존했던 학교의 교직원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떻게 그런 사람을 믿게 되었는지, 그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를 곱씹게 되었다. 하지만 유학생의 냉혹한 현실은 내가 사기를 당하든 말든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쨌든 내 비자는 만료되었고, 비자를 받아야만 했다. 결국, 나는 그 돈을 포기하고, 새로운 비자 절차에 필요한 비용을 다시 지불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매우 깊었다. 나만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일에 너무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 일은 내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것.
이 사건 이후 학교는 새로운 규칙을 도입했다. 외국인 학생들이 비자 절차 중에 돈을 지불할 때는 반드시 학교 관리자와 함께 직접 그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잃은 $500은 나에게 큰 교훈의 가치를 주었다. 그 사건을 통해 나는 더욱 강해지고, 더욱 신중해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억울하고 세상이 야속했지만, 유학생이 가져야 하는 No.1 자세를 체화할 수 있었다. 바로, 혼자서 살아남으려면 매사 의심하고 나 자신은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20년 평생 평화롭기만 했던 내 세계에 알람이 켜졌다. 하지만 병아리 유학생의 진짜 최악의 순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운 좋게 살아 돌아왔던 그때의 기억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