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유학 인생 최악의 순간 : 택시강도를 당하다
택시 강도 사건. 어쩌면 이 두 단어만으로도 그날 밤의 공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자 사기,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순간을 고르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택시강도를 당했던 그때를 떠올릴 것이다.
그날은 신나게 기다려온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를 친한 언니와 함께 보러 가는 날. 넓고 화려한 스크린에서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대형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예상대로 굉장했고, 그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거리를 나섰다. 우리 둘은 재잘재잘 떠들며 길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심으로 들어가 달라 말했다. 그 당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흔히 길가에서 차를 잡아 타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날 밤의 큰 실수가 될 줄은...
택시 기사가 우리의 목적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볼 수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말한 목적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부연설명을 한 후 우리는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택시기사는 우리가 부연설명을 할 때 약간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지만 뭐 우즈벡 길거리 택시는 항상 그랬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영화 감상을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여서는 안 될 것들이 창문 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가 점점 어두워지고, 길이 좁아지는 것을 발견할 때, 늦게라도 이상하다고 느꼈다.
도심으로 들어간다면 상식적으로 더 밝고 큰 도로가 나와야 하는데 좁고 어두운 외곽도로로 가는 것이 아닌가. 무서워진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느냐 물었고 택시기사는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개소리만 해댔다. 외곽을 넘어갈 때 보이는 경찰 초소를 보았을 때 우리는 직감했다. 이 사람 지금 우리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려 하는구나. 기사의 침묵과 신호등이 사라지는 외곽 도로의 광경에,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언니와 눈을 맞추면서, 그는 '이 사람, 우릴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현실로 변했다. 우리는 택시 기사에게 당장 차 세우라고 얘기를 했고 그제야 택시기사는 깜깜한 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웠다. 택시 기사는 평온하게 뒤를 돌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언니의 목에 갖다 댔다. 분명 그는 칼이나 무기를 들지 않았다. 택시 기사의 뒷주머니에서 꺼낸 그 물건, 열쇠. 그것은 작은 것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리에게는 굉장한 위협이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가?'싶을 정도로 상황파악이 안 됐고 공포감이 극에 다다랐다. 택시기사는 나에게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느냐 물었고 뒤에 타고 있던 내게 조수석에 앉으라고 협박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 공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택시강도가 들고 있던 게 칼도 아니고 고작 열쇠였는데 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상황이 주는 공포감이란 사람을 정말 무력하게 만든다. 언니가 이미 인질로 잡혀있으니 내게 다른 옵션은 없다고 생각한 나는 조수석으로 옮겨 탔고 그놈은 내게 휴대폰과 지갑을 내놓으라 소리 질렀다. 그 새를 틈타 언니는 뒷좌석에서 뛰쳐나갔고 언니의 탈출을 눈치챈 그놈은 내 폰과 지갑을 빼앗고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는 작은 마티즈였고 이제 막 속력을 내기 시작한 순간이어서 나는 이대로 차에 계속 있다간 진짜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속도는 10km 정도 되었을까? 아니 사실은 그보다도 느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던 터라 나는 이곳저곳 다쳤었다. 일단 차에서 탈출한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니의 손을 잡고 앞만 향해 빛과 민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택시강도는 내가 탈출하자 잠시 차를 멈춰 우리를 봤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한참을 뛰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그 도로는 가로등도 없고 정말 깜깜한 외곽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한동안은 눈만 감으면 내 눈앞에 그때의 깜깜한 도로가 펼쳐지곤 했다. 아무튼 탈출한 후 무작정 뛰어서 도착한 곳은 사건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였다.
어딘지도 모르고 나는 폰을 빼앗기고 공포감에 휩싸인 그때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린 언니가 자신의 폰으로 현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고 있는 사이 어떤 차가 우리 곁에 스르륵 섰고 사람들이 내렸는데 그 사람들마저 무서워서 무지성으로 언니의 손을 잡고 다시 뛰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은 아무런 관련 없는 동네 주민이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그냥 남자라면 다 무서웠다. 다행히도 뛰어간 길의 끝에 환하게 불이 켜진 민가가 있었고 할머니, 아주머니, 아이들이 대문 앞에서 놀고 있었다. 그분들께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경찰에 신고했으니 사람들이 와줄 때까지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있어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두 번째 악몽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때 시간이 꽤나 늦었어서 도시 중심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언니의 현지인 지인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이나라 경찰은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부랴부랴 대사관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하필이면 다음날이 우즈벡 국경일이라 대사관 직원들끼리 술을 마시느라 우리 보고 알아서 해결하시라 말했다. 여기서 그나마 믿을 구석은 현지인 지인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현지인 친구가 도착하고 경찰이 도착했다. 그때 시간이 어림잡아 밤 12시쯤 되었었는데, 일단 내가 그래도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고 몸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어 무릎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무작정 도망치고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엔 아픈지도 몰랐는데 경찰이 오고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경찰은 앰뷸런스를 불렀고 그것을 타고 병원을 가는 과정이 내겐 악몽이었다.
여기서 잠깐, 왜 이 과정이 악몽이었는지는 우즈벡의 문화적 배경을 한번 짚고 넘어가야 더 이해하기 쉽다.
우즈베키스탄은 1998년까지 구소련의 일원이었고,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중년층은 대부분의 교육을 러시아어로 받았다. 1998년 독립 이후, 원래 우즈벡인이 아니라도 국경 변경으로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갖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독립 전에는 우즈벡어는 주로 길거리에서 사용되는 비공식 언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독립 후, 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는 우즈벡어의 사용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구소련 시절, 러시아어가 통용되었지만 독립 이후에는 우즈벡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었다. 특히 수도 타슈켄트에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우즈벡어 사용자가 늘어난다.
따라서, 수도에서 만나는 현지인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기본적으로 알고, 우즈벡어는 추가로 사용한다. 하지만 지방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곳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즈벡어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앰뷸런스에 탄 사람들이 전부 우즈벡어만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일단 앰뷸런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마스라는 차를 아는가? 그것은 다마스 차량에 앰뷸런스 스티커를 붙인 것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디서 사고가 나면 그 근처 병원에서 앰뷸런스를 보내주는데 우즈벡도 같은 시스템이었다. 만약 우리가 아무리 외곽이지만 수도권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면 타슈켄트에서 앰뷸런스가 왔을 텐데 그 범위를 넘어서서 타슈켄트 외곽의 ‘키브라이’ 구역의 앰뷸런스가 왔다. 경찰이 사건 현장 조사를 하며, 나와 언니만을 앰뷸런스에 태웠다. 이 순간, 나는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다. 사건 직후 현지인 남자만 보면 극도로 공포감을 느꼈는데 그 앰뷸런스 안에는 운전자를 포함한 현지인 남성 3명이 있었고, 이 앰뷸런스가 진짜 나라에서 보내준 앰뷸런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사실은 경찰도 진짜 경찰이 맞나 의심됐다. 그냥 나는 그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의심됐고 무서웠다. 그런데 우리는 병원에 간다며 앞길도 보이지 않는 산길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너무 무서워서 숨이 안 쉬어지는 그 순간 조수석에 탄 남자는 우즈벡어밖에 못했고 나름 우리를 안정시키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번역기로 뭔가를 입력하더니 음성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 문장이 ‘도망가’ 였으면 그때 내가 느꼈을 공포감이 조금은 이해가 될까?
내가 느꼈을 공포감이 조금은 이해가 될까? 내가 안전하다고 믿을 수 없는 순간에 병원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어두컴컴한 산길로 운전하는 운전기사 옆에 앉은 사람이 번역기 음성으로 ‘도망가’를 들려주면 진짜 사람은 극도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도 안 났고 대답도 못했고 단지 언니랑 두 손만 맞잡고 제발 병원에 도착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다행히도 그 앰뷸런스는 산길을 넘어 키브라이 공립 병원에 도착했고 나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어두운 길 끝에 불이 켜진 큰 키브라이 병원을 봤을 때의 그 안도감은 정말 이루 말할 없을 만큼 큰 안도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