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법정에서 러시아어로 호소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경찰서에 매주 나가면서 러시아어로 쓴 호소문을 재판에서 직접 읽어 판사에게 강한 처벌을 청하게 된 한국인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 같다.
다행히도 목숨을 건 탈출을 성공하고 경찰에 신고를 한 우리는 다행히도 금방 택시강도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외교 문제로 번질 수 도 있는 사안이었으므로 현지 경찰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범인을 잡아주었다. CCTV하나 없었지만 우리가 기억한 차량 번호판과 외각으로 나갈 때 군인 초소를 지나간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그 범인은 살인 전과가 있었으며 범행 당시 마약으로 인해 정신이 미약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난리에서 살아 나온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잠시, 현지 경찰의 무감각한 대처는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다.
8평 정도 되는 방 안에 피해자와 범인을 책상 하나 가운데 두고 앉힌 후 이 사람이 맞느냐고 우리에게 물었고 대질신문을 했다. 그 당시에는 범인 얼굴만 봐도 그날의 어두운 거리와 공포가 트라우마처럼 떠올라 과호흡을 참기가 어려웠는데 현지 경찰은 ‘이곳이 경찰서인데 뭐가 무섭냐’며 신문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질이 끝났을 때, 우리의 심리적 부담감은 이미 최고조에 달했다. 그때 아마 내가 느낄 수 있는 최고치의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방에서 나올 때의 그 안도감과 함께, 이러한 대처 방식이 정말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분노가 함께 들었다. 한국처럼 한쪽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유리벽이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피해 경험을 넘어, 신뢰해야 할 경찰의 대응 방식에 대한 깊은 상처와 불신을 남기게 되었다.
아무튼 못 잡을 것만 같던 택시강도를 검거하고 결국 재판에 그놈을 세울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외국인이고 현지 법원은 자국민을 우선으로 재판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현실은 우리의 걱정과는 다행히도 많이 달랐다. 사실 피해자가 모든 재판을 나갈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우리는 모든 재판에 참석했고 1차 선고에서 범인은 4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염치도 모르는 범인은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항소를 신청했고 지역 법원에서 타슈켄트 수도 법원으로 사건이 송치되었다. 1차에서 끝날 것이라 생각한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항소까지 가게 됨에 따라 우리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때 현지 친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친구 중 한 명의 아버지 지인인 변호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무료 법률 자문을 구할 수 있었고 아저씨는 우리에게 ‘외국인’이라는 상황을 이용한 호소문을 작성해서 재판장에게 어필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재판장에서 러시아어로 된 호소문을 읽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실 이때가 내 인생 중 러시아어를 제일 잘했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 ) 최근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연설문을 차용해 ‘외국인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너무나 불안전함을 느낀다고, 외국인으로서 우즈벡에 사는 것이 무섭다는 방햐응로 어필하자 항소에서는 더 강한 형이 내려졌다. 형 자체는 4년에서 3년으로 줄어들었지만 일반 감옥에서 흉악범들이 가는 감옥으로 변경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범인도 잡고 감옥으로 보낼 수 있었지만 이 일은 나에게 꽤나 오랫동안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겨준 일이 되어버렸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어두운 도로가 생각나고 자려고 누우면 조용한 방 안에서 벌레 기어가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불을 켜고 잠을 자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때는 두려움이 극도로 심해져서 친한 언니네 집에서 자고 오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게 트라우마인가 싶었다. 택시 강도 사건은 나에게 큰 공포심을 겪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귀한 교훈을 줬다. 세상을 너무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딸까. 외국에서 나의 상황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매 순간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억울하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항상 세상은 아름답기만 한 내게, 이런 세상도 있다는 걸 알려준 것 같달까? 지금도 택시를 타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머릿속으로 온갖 시나리오를 만들어 생존 방법을 강구하긴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어려운 일이 내게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