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의 성씨는 왜 특이할까?
나의 뽀이(пой)를 찾아 떠나는 모험 | 고려인들의 성씨는 왜 특이할까?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내 일상엔 수많은 사연이 스쳐간다.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눈에 띄는 건 스무 살 고려인 학생 '율리야'다. 태어나면서부터 집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늘 러시아어만 썼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의 ‘뿌리’를 잊고 살진 않았다. 고려말(고려인들이 쓰는 말)로 본관을 ‘뽀이(пой)’라고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처음 듣던 날,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 하나가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는 느낌이랄까.
이미 한국어를 5년 넘게 배웠다는 그에게도 말하기는 여전히 큰 벽이었다.
“주변에 한국어를 쓸 사람이 거의 없어요. 괜히 틀리면 창피하잖아요.”
그는 스스로를 한 번 세워두고, 뒤로 살짝 물러선다. 소심함과 부끄러움이 엿보이지만, 그 안에는 작은 불씨처럼 반짝이는 열정이 숨어 있었다.
그 열정의 근원은 할머니의 한마디에서 비롯된 듯했다. “눈치 있게 행동해라.” 딱 한 문장이지만, 할머니의 목소리가 그의 삶 곳곳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우즈벡의 명절 대신 한국의 명절을 쇠고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말하진 않으면서도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니. 그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자연스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수업 시간이 익숙해졌는지 그는 고려인에 관한 궁금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 한국에는 ‘엠(эм)’씨가 있어요?”
나는 처음엔 ‘엄씨’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려인들 사이엔 ‘엠’, ‘옘’, ‘초이’, ‘니가이’, ‘유가이’, ‘짜이’, ‘쪼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성씨가 존재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러시아어 표기 체계에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담아내기 어려웠기 때문. 예컨대 ‘채’나 ‘최’처럼 복모음을 가진 성씨가 ‘짜이’, ‘쪼이’ 식으로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호적에 이름을 올릴 때, “허가, 지가, 서가” 식으로 ‘-가’를 붙여 부르는 한국어 습관을 러시아 관리들이 고스란히 옮겨 적었기 때문이다. ‘허가이’, ‘유가이’ 같은 성씨가 자리 잡은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설명해주자 학생의 눈은 더욱 반짝였다.
그는 요즘 할머니께 물려받은 고려인의 삶에 대한 책을 뒤적이며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곰곰이 되짚어보는 중이다. 내게는 그 모습이 단순한 호기심 해결이 아니라 더 큰 모험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접 부딪혀 보는 시간인 셈이다. 한국인도 우즈벡인도, 그렇다고 러시아인도 아닌 채 살아왔던 고려인들의 마음 한가운데를 누가 쉽게 가늠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의 눈빛을 보면 자기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여기느냐 마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한국, 러시아, 우즈벡 세 언어와 문화가 교차하는 그 경계에서 나 역시 선생님으로서 작은 역할이라도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그가 언젠가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 못지않은 유창한 발음으로 자신의 본관, ‘영월 엄씨’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그날이 오면 얼마나 근사할까. 물론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테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길을 떠날 용기가 있다. 그 용기가 있다면, 언젠가는 분명 자신의 뿌리로 당당히 돌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