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인생

by 초생달


어릴 적 아버지는 무서운 가장이었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살던 유년 시절 아버지는 항상 종이가방에다 잉크 얼룩 가득한 작업복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좁고 잉크 냄새 가득한 공장에서 인쇄 일을 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어내기 일쑤였다. 돈을 번다는 건 참 힘든 일이라는 사실과 함께 아버지는 참 무서운 존재라는 것도 깨달았다. 아버지는 종이가방 속 작업복처럼 얽히고설킨 감정의 고리를 가족에게 쏟아냈다. 이따금 큰 싸움이 났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와장창, 하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간혹 들렸다. 그럴 때면 여동생과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워 문밖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는 했다. 두 분이 갈라서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둘 중 한 분과 살게 될까, 새로운 가정을 만날까, 아니면 고아원으로 가야 할까. 불안에 떨다가 잠들 때가 많았다.


사람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손쉽게 변화시킨다. 예순을 넘어 칠십 대가 된 아버지는 다행히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어머니와 함께 드라마 방영 시간대를 달달 외웠다가 욕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분이 됐다. 어머니와 소소한 수다도 떨고 운동도 함께한다. 폐암 2기 판정을 받은 이후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장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그야말로 은퇴 후 삶을 즐긴다. 마냥 좋을 것 같지만 때때로 쓸쓸하고 외로운 모양이다. 서울에서 따로 사는 나는 주말이면 본가를 찾아 함께 밥을 먹고 하룻밤을 지낸다. 내 입장에서는 주말마다 개인적인 일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날 반기는 부모님 표정을 보고 나면 그만큼 얻는 게 많다.


사실 사십 대에 접어든 이후로는 주변의 연락도, 지인들과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졌다. 만나는 사람은 급격히 줄었으나 소수의 친구와는 더 깊게 사귄다. 그 소수의 친구를 만나는 시간 외 주말은 모조리 부모님을 위해 투자한다. 지난 주말 아버지는 함께 밥을 먹다가 문득 이렇게 말을 했다. 그래도 윤영이가 주말마다 오니까 그게 좀 낙이 된다.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꺼내지 않는 아버지의 고백에 나는 깜짝 놀랐을 뿐 아니라 울컥했다. 말도 잘 건네지 않는 무뚝뚝한 장남의 방문이 아버지의 삶에 낙이 된다니. 내가 그토록 큰 임무를 맡고 있었던 걸까.


아버지는 이제 날카로운 펜촉을 버린, 뭉툭한 몽당연필 같다.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도 많이 희미해졌다. 대신 예전보다는 좀 더 웃고, 말이 많아졌다. 매정하게 흐르는 시간과 갈수록 무거워지는 몸이 왜 원망스럽지 않을까. 그런데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버지가 꽤 ‘대견하게’ 느껴진다. ‘대견하다’는 말이 버릇없이 느껴지겠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는 없다. 무법자 같던 아버지는 이제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가족에게 좀 더 친절하게 다정하게 보이려 애쓰고 있으니까. 아버지의 남은 삶이 좀 더 밝고 식상했으면 좋겠다. 식상하고 진부한 홈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쉽게 좌절하지 않고 자주 웃으면서 끊임없이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인생의 마지막은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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