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누구나 크면 의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 나는 주황색 유니폼을 유난히 좋아했다. 대전을 연고로 한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는 나와 연관 관계가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데다 주변에는 이글스 팬이 전무했다. 아버지 본적이 충북 괴산이라지만 일 년에 한 번 명절 때나 가보는 데였고, 딱히 관심도 애정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팀을, 그리고 그 팀의 유니폼을 좋아했다. 오리처럼 엉덩이를 내밀고 특유의 타격 자세를 보여주던 이강돈과 악바리 이정훈, 송진우, 장종훈 등 이글스 선수들은 내 영웅이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도 항상 막판에 해태 타이거즈에게 패배해 우승을 놓치는 과정이 오히려 내게는 영화의 서사 중 일부분으로 느껴졌다. 아름다운 패배, 가능성 있는 선수들의 성장과 희망, 당시 최강팀이었던 타이거즈를 위협하는 모습은 당시 내 유년 시절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1999년 기적 같은 우승을 했다. 정규 시즌에서 4위를 기록했던 한화는 한 팀 한 팀 꺾으며 한국시리즈까지 올랐고, 결국 자이언츠를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마지막일 줄이야. 한화는 그 이후로 다시는 우승하지 못했다. 우승은커녕 하위권을 맴돌다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승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선수들 기량에서는 성장이 읽히지 않는다. 방관하는 감독과 코치, 헛다리만 짚는 프런트, 패배의 악순환에 익숙해진 선수들만 남았다. 바쁜 와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야구를 챙겨보던 시절은 흘러가고 없다. 왜 하필 이런 팀을 응원해서 이리도 마음 고생이 심한 걸까. 팀을 바꿔볼까, 아니면 야구를 끊을까.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 시즌은 끝나고, 이글스는 여전히 최하위 자리를 지킨다.
2023년도에도 한화이글스는 최하위를 기록 중이며 승률은 2할대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1승 거두는 것도 버겁다. 야구 전문가가 아니기에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정확한 문제점을 짚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야구 전문가라 하더라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느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쌓이고 쌓인 것이니까 말이다. 프로 수준에 적합하지 않은 감독을 선임해 3년째 유지하는 것도 문제고, 방관하거나 방향 설정이 잘못된 프런트에도 잘못이 있으며, 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도 아쉬움이 남는다.
초등학생 시절 야구를 처음 접했을 때 이글스를 좋아했던 것은 악착같은 팀 이미지의 영향이 컸다.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었으나 져도 쉽게 내주지 않는 승부는 어린 내 마음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야구란 것은 마치 여러 개의 이야기가 겹친 영화 같다고 생각했다. 좋은 흐름을 보이다가 정체되고, 흔들리다가도 한순간에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 맛에 3시간을 즐겼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야구는 내게 모험이었던 셈이다. 나침반을 들고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걷다가 어떤 위협이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서 더 흥미로웠달까. 요즘 내게 야구는 끝이 훤히 보이는 출근길이다. 발광을 한들 내가 어디로 가겠는가. 결국 목적지는 사무실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