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일이다. 자신이 태어난 날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물론 산부인과 수술실의 분위기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냐만, 그래도 그날 내가 엄마 배에서 나와 세상을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은 어땠는지 궁금한 건 사실이다. 겨울이니까 밖은 추웠을까. 이른 오전에 나왔다고 하니 아마 그랬을 것 같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난 언제부터 모유를 먹었을까. 병원에서 퇴원한 내가 처음 집에 온 날 조부모와 고모들, 삼촌(어릴 적 우린 서울 변두리에 함께 모여 살았다)은 날 어떻게 바라봤을까. 언제부터 난 말하고 걷고 생각이라는 걸 했나. 유치원(태권도장을 겸한 유치원을 2년간 다녔다)을 다니기 전 일들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를 쥐어짜며 온 가족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내가 큰 변을 지렸다든가, 집 마당에 있던 강아지에게 물릴 뻔했던 기억을 가까스로 떠올려봤지만, 어머니는 그건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라고 넌지시 알려주었다.
그때의 일들이 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른다면, ‘내 인생의 처음’이 내 안에 있다면 나는 아마 그 이야기를 주야장천 글의 소재로 써먹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기억 속 갖가지 이야기를 팔아서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 내 살을 깎아 먹으며 자신을 증명하려는 이 가련한 존재의 운명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을 잘 챙기는 편은 아니다. 내 생일은 물론 남의 생일이나 특별한 날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 촛불을 불지 않는다고 딱히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에는 더 많았다. 자기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상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러려니 했다. 그날을 기념 삼을 수도 있지. 자신의 탄생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아니면 무슨 날이 됐든 간에 친구와 뭉쳐서 놀 기회를 만들고 싶은 걸 수도 있고.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생일이면 주변 반응을 신경 쓰는 존재로 자랐다. 1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회사에 다닐 때는 대표가 사 온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대표에게 5만 원대 선물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거창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메시지 하나라도 보내주는 사람은 무언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메시지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특히 요즘 카카오톡 메신저에 생일 알람 기능이 있으니 거래처나 친구 관리 차원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렇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것마저 안 보내는 사람들도 많지 않던가. 메시지 한 줄 보내는 것도 귀찮아하는 많다는 걸 떠올려보면 관리 차원에서 보내는 그저 그런 메시지 한 줄도 내겐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마저도 나이가 들수록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특히 사십 대가 되면 대다수 결혼을 하면서 미혼 친구나 지인의 생일을 챙기는 건 더 어려워진다. 가족과 친척까지 여기저기 엮인 사람들 관리하는 것도 골치가 아픈데 노총각 생일을 어찌 챙길까. 그나마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생일날이면 통신사나 쇼핑몰에서 기괴한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기는 한다. “고객님, 생일 축하합니다. 기념으로 어쩌고저쩌고 쿠폰을 드립니다. 단, 5만 원 이상 결제 시 사용하실 수 있으니 유의 바라며…….”
물론 나조차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음력으로 주민번호가 등록돼 있다 보니 음력과 양력 두 가지의 생일날이 존재하는 탓이다. 조상들은 왜 이토록 복잡한 계산을 하도록 만드셨을까. 매년 달력의 작은 음력 글자를 헤아려야 하는 수고로움이라니. 내 경우에는 몇 년 전에 진짜 생일을 찾았다. 11월 14일이 내 등본에 기재된 생일이지만 사실 그건 진짜 내가 태어난 날이 아닌 음력이다. 매년 음력 11월 14일이 12월 며칠인지 찾고는 했지만 그건 좀 불만족스러웠다. 진짜 내가 태어난 날은 아니니까. 그리하여 네이버 달력(기술 발전에 따른 문명의 혜택 덕에 이제는 과거의 날짜 계산도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가능하다!)을 이용해 찾아본 결과 당시 내가 진짜 태어난 날을 찾을 수 있었다. 12월 20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날을 내 생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날이 되면 가만히 앉아 그때를 상상해본다. 태어난 날, 나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산부인과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나를 기억할까. 그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직 살아 있을까. 그때 같이 태어난 산부인과 동기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와는 삶의 무늬가 얼마나 같고 다를까.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을 상상으로 채워 넣다 보면 시간이 빨리도 간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내 안에는 어떤 요소들이 채워져 있을까. 나도 모르는 어떤 요소들이 진즉에 내 안을 파고들어 나를 괴롭히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가 이토록 불안하고 잘 흔들리는 걸까. 어쩌면 그 불안은 내가 기억할 수 없는 그 첫날부터 시작됐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얼마간은 안심한다. 마치 내 인생, 내 불안의 뿌리를 찾은 것 같아서. 그때로 돌아가 가위로 그 선을 끊어내면 ‘오래 이어진 이 고민과 불안의 시간도 이제는 내게서 멀어질 수 있진 않을까’라고 헛된 생각을 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