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탓일까, 아니면 감기의 영향일까. 일요일 내내 두통에 시달린다. 이마를 만져보니 감기 기운이다. 뜨끈한 캐모마일 차를 만들어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기니 목이 부어 있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요일에 업무를 신경 쓰느라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으니까. 차가 담긴 머그잔에는 “어쩌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정말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글을 쓴 이도 확신은 없었는지 ‘어쩌면’이라는 수식어가 맨 앞에 붙어 있다.
겨울이 되면 곤란한 일이 많이 생긴다.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몸 덕에 항상 두꺼운 옷으로 무장을 해야 하고, 그렇다 보니 이동할 때 움직임이 불편한 건 흔한 일이다. 추위를 많이 타니 집 보일러도 상시 가동해야 하고, 그렇다 보니 도시가스 비용이 훌쩍 뛴다. 면역력이 안 좋은지 감기에 자주 걸린다. 목감기는 겨울 중 절반은 달고 산다. 가족은 내가 사는 아파트 내부가 따뜻한 편이라며 부러워하던데, 왜 나는 으슬으슬 춥게 느껴질까. 감기에 걸려 몸이 무거워질 때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있기만 한다. 머릿속으로는 ‘그래도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거나 ‘책을 한 권 보거나 영화를 한 편 봐야 뭔가 남는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할 뿐 실천하지는 못한다. 몸이 무거우면 움직이기가 싫어지고, 타협도 그만큼 쉽다. 타협하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타협은 또 다른 체념을 낳는다. 체념은 생떼로 이어진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지. 내가 뭘 시도한다 해도 안 될 거야. 여기 소파에 누워 있는 것 말고 내가 뭘 잘할 수 있겠어. 안 그래?’ 자학은 나만의 특권이다. 도파민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자학을 찾는다. 난 쓰레기지. 세상 최악의 쓰레기. 자학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속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만져지는 기분이다. 끝도 없이 나 자신을 연민하며 모든 걸 쉽게 포기했던 그 시간이 만들어낸 찌꺼기들. 그걸 다 쓸어내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한 뼘은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쉽게 흔들리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을까. (그러고 보니 왜 나는 항상 질문하는 글을 쓰는 걸까.)
몸이 아프면 마음도 따라서 나약해진다. 얇아진 마음에는 불안함이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내 미래는 괜찮을까. 나는 괜찮은 걸까. 하긴, 누군들 미래를 확신할 수 있을까. 이미 감정의 바닥에 다다랐으니 더는 두려울 것도 없지. 어차피 더 이상 떨어질 나락도 없으니 한 발만 앞으로 내밀어도 내게는 의미 있는 전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령 더 많은 날 더 많이 아프고 쓰라리더라도 같은 자리에 있는 거라 생각하면, 어차피 맨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밑바닥에 다다랐다고 세상이 끝나지는 않으니까. 인생도 마찬가지일 테고. 이렇든 저렇든 시간은 흐르고 나는 그에 따라 여기저기서 살아갈 게 뻔하지 않은가.
내게 행복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아예 안 올 수도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내 인생이 최악은 아니다. 여태껏 큰 문제 없이 버티며 살고 있으니. 오래 지속된 불안과 고민에도 아예 굴복하지는 않은 걸 보면 그럭저럭 나쁜 것은 아니라고, 넌 아직 괜찮은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은 일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