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순간
신병 훈련소를 거쳐 배치된 강원도 철원의 한 부대에서 처음 겪은 훈련은 3월에 실시한 군 단위 규모의 호국 훈련이었다. 기상과 동시에 마스크를 쓰고(화학전이라는 설정) 짐을 챙겨 뒷산의 진지에 올라야 했다. 그러고 나서 긴 시간 행군이 이어졌다. 마스크를 쓰고 짐을 챙기는 것도, 그러고서 산에 오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밤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6~7시까지 이어지는 긴 행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걸을수록 군장의 무게가 느껴졌다. 어깨는 물론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그런데도 졸렸고, 그런 와중에 또 추위가 느껴졌다. 50분 단위로 걷는 동안에는 힘들고 10분간 쉴 때는 춥고 졸렸다. 한참을 걷던 새벽 어느샌가 내 옆을 지나가는 의무대 차량을 본 적 있다. 그 안에 어떤 사람이 누워 쉬고 있을까. 그게 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시꺼먼 행군길도 두렵지 않았다. 좁은 시골길 옆으로는 비탈길이 있었는데, 그 비탈에 몸을 맡겨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으로 넘어져 다리를 다치면(완전히 부러지는 대형 사고만 아니라면!) 의무대 차량에 몸을 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에 골몰했던 동안에는 기나긴 행군도 견딜 만했다. 50분을 걷고서 10분간 쉬게 될 때면 졸지 않으려고 부러 밤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했다. 하얀 달과 자잘하게 박힌 별들이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봤다. 그러고 있으면 아주 잠깐은 내가 마치 그들의 일부가 된 착각이 들었다.
요즘은 부쩍 그때 생각을 많이 한다. 금요일에 특히 그랬다. 26개월을 보병으로 근무하고 2003년 3월 1일에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그런데도 아직 행군길에 서 있는 듯하다. 자욱한 어둠 사이로는 끝도 없이 행군길이 펼쳐져 있다. 비탈로 빠지면 편해지겠지만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 악물고 버틴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스마트폰을 켜서 AI와 대화라도 해볼까. 제미나이야, 난 이제 멈추어야 하니, 아니면 계속 걸어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