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순간
2026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요즘은 시간이 토끼처럼 도망간다. 아무래도 따라잡는 건 어렵겠지? 부모님에게도 시간은 그런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내가 느끼는 것보다 토끼가 더 빠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같이 식사할 때면 밥 한 그릇은 기본이던 분들이 요즘엔 반 그릇도 잘 드시지 못한다. 그러고는 가끔 이런 말을 남긴다. 이제는 몸이 반응하는 것 같아. 너무 늙어버렸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다. 흘리듯 가볍게 건넨 말이지만 그럴 때면 내 마음은 얼어붙는다. 내가 벌써 40대 중반이듯, 두 분도 벌써 70대다. 인쇄 기계를 돌리던 아버지, 거래처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 나누던 어머니가 벌써 그렇게 됐다.
부모님의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내 마음과 생각마저 굳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글에 ‘노인 냄새’가 나거나 늙은 훈계가 남게 되는 것은 싫다. 올해 들어 열심히 일기를 썼다. 한 달간의 일기를 되돌아보니 하나같이 노인네의 신세 한탄이다. 날카롭지도, 생생하지도 않다. 매일 그렇게 쓸 수는 없지만 한 달에 한두 개쯤은 꿈틀거리는 활어처럼 느껴지길 바랐는데.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늙어빠진 생각으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렌디’하거나 ‘힙해’ 보이는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외면하기만 했다. 토끼가 더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는 것도 모른 채.
일요일 내내 더듬이를 찾았다. 바짝 세워서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들여다보기 위해서. 더 살아야 한다면, 그게 내 운명이라면 오늘의 생생한 감각을 두 팔 가득 안아줄 테다. 40대에 벌써 인생 다 산 노인네 흉내를 낼 수는 없지. 70대에 접어든 내 부모님도 요즘 유행하는 댄스 음악이나 ‘밈’을 외우려고 노력하시는데 말이야. 몸은 어쩔 수 없더라도 마음만은 지키고 싶다는 그 마음이 간절하다. 칠순의 부모님도 새로운 리듬을 배우려 하시는데, 내가 벌써 세상에 귀를 닫을 수는 없다. 내 삶에 그 간절함이 필요하진 않을까. 어떻게든 움직이고, 걷고, 느끼며 이 세상과 더 만나고 싶어. 내가 싫어하거나 외면하던 이야기들도 기꺼이 끌어안고 싶어. 분명 그들에게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연이 있을 테니까. 그런 과정에서,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더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