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작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한 순간

by 초생달

요즘 부쩍 작별(作別)이라는 단어를 되새긴다. 어릴 때부터 내 세상의 전부였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슬펐지만 죽음은 남의 일이었다. 삼십 대 초반의 나는 혈기가 왕성했다.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사치라 생각했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좋아했을 시절이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구절은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였다. 그 무렵 나는 청춘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간다고 느꼈다. 여전히 호기심이 많았지만 이십 대만큼은 아니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삼십 대가 되어 깨달은 건,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내게 청춘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은 젊음’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책임감이 생길수록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과거에 재미있던 이야기들이 더는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들어 다시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모든 노랫말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가장 와닿는 부분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살아남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달려온 사십 대의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이별(離別)이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한 할머니, 내 건강을 항상 챙겨주던 할아버지, 친구처럼 편하고 애틋했던 삼촌, 그리고 가깝진 않았어도 안면은 텄던 몇몇 대학 동창과 선후배. 내가 태어난 이래 언제나 이 세상에 존재했던 배우 안성기도. 그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의 연속이다. 내가 어릴 때 청춘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노인이 돼 있다. 부모님의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는 속도가 해마다 빨라진다. 이렇게 또 살다가 누군가와 영영 이별하겠지. 시간이 더 흘러 나도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될 테고.


이별과 작별.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이별은 그냥 헤어지는 것이다. 슬프든 아프든 그냥 떨어지는 것. 하지만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이다. 거기엔 한 번 더 마주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이별할 수는 있어도 매일 작별할 수는 없다. 이별은 노력 없이도 가능하지만, 작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다 보니 태어나 단 한 번 산다. 두 번은 없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마주하는 시간도 단 한 번이다.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이야기들과 그냥 이별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서글프니 작별을 보내도록 하자.


오늘 밤에는 내 인생을 가득 채워주었지만, 지금은 이곳에 없는 그 모두를 추모한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보낸다.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애도한다. 다시 태어난다는 일은 믿지 않지만, 혹시라도 내 생각이 틀린 거라면, 다시 태어날 기회가 생기면 그때도 다시 내 가족이나 친구가 되어달라고 간청한다. 당신들을 만났던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을 빛내주었다는 걸 잘 안다. 돌아갈 수 없어서 더 아름답다는 사실도. 그러니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노랫말을 나는 “매일 작별하며 살고 있구나”로 바꾸어본다. 입으로 나직하게 소리 내어 불러보면 꼭 내 근처 어디선가 당신들이 기척을 낼 것만 같다. 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부스럭거릴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말라고, 언젠가 꼭 만나자고 말해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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