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관우 Oct 03. 2021

헤드폰 쓰고 지하철 타는 사람=나. 소니1000XM4

 헤드폰을 쓰고 지하철을 타는건 조금 어색했다. 사실 많이 그랬다.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음악, 이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모양새 같아서. 하지만 궁금했다. 정말 안 들릴까? 지구상에 나와 26만원만 존재하는 것 같다던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캔슬링보다 더 뛰어난 노캔 기능이라면 지하철이 특정 구간을 달릴때 나는 이 굉음이 정말 안 들릴까? 그 구간을 지날때마다 ‘뭐라고? 잘 안들려 크게 말해봐.’ 하고 코로나 시국에도 아랑곳 없이 전화를 하고 있는 저 사람의 목소리가 정말 안 들릴까? 


 소니 1000XM4 헤드폰을 구입하게 된 건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 필요해서였다. 프리랜서 구성작가였던 나는 코로나로 일을 잃고, 오디오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하게 되었다. 팟캐스트를 제작하며 야금야금 하던 편집 일이 주업이 된 것이다. 하지만 편집실이 따로 있는건 아니어서 보통 사무실에서 오디오 편집 작업을 하려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아주 빡쎈 헤드폰이 필수였다. 때는 마침 에어팟 맥스 출시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어차피 좀 비싸고 좋은걸 쓰는 쪽으로 결정한 마당에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에어팟 맥스냐 소니 1000XM4냐. 매일 밤 11시까지 강제 야자를 해야했던 고딩시절. 모두가 아이리버 mp3를 쓰던 그시절에도 혼자 메뚜기 색 아이팟을 쓰던 모태 애플빠인 나지만 결국은 소니를 선택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무게였다. 길게는 한 두 시간 잠깐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하루종일 헤드폰을 끼고 작업을 해야하는 날도 있었기에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에 에어팟맥스를 써보고 이 선택이 탁월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잡스도 날 이해해줄거야… 마지막으로 쪼끔 돈을 아껴보고자 병행수입 된 미개봉 제품을 파는 당근마켓에서 세 제품보다 7~8만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헤드폰을 겟하였다. 헤드폰이란게 어차피 한번 맛탱이가면 AS무쓸모일 가능성이 크기에 와이어리스+AS리스... 합리적인 나란 녀석…

 와이어리스 이어폰은 정말 편리하다. 헤드폰일때는 더 대단해진다. 쓰지 않을땐 잠시 내 목을 거치대로 활용할 수 있다. 정말 인체공학적이지 않은가?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특히 더 좋은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어떤 대단한 기술적인 것도 있겠지만 일단 귀 전체를 덮어버리기 때문에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캔슬링보다 당연히 좋을수밖에. 물론 갑자기 중력이 사라지고 우주에 온 듯이 아무소리도 안 들리는 건 아니다.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나도 다 들린다. 하지만 목소리는 꽤 걸러져서 내가 사무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있을때 누가 날 부르려면 내 앞에서 손을 들거나 내 책상을 노크해야 내가 반응할 수 있는 정도이다. 방해 받고 싶지 않을 때는 편집을 하지 않아도 아무 소리 나지 않는 헤드폰을 끼고 있기도 한다. 가끔 딴짓하고 노래를 들을때도 일을 하는 척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아주 좋은 음질로 평온하게 음악을 즐기며 딴 짓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이거다. 이게 직장인들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사야하는 이유다. 청각적으로 독립되는 것만으로도 같은 자리에서 다른 차원의 공간이 생성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일 할때의 집중력 향상 만큼이나 쉼의 퀄리티도 올릴 수 있다. 


 헤드폰을 쓰고 일을한지 오래 되자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지하철을 탈 때도 헤드폰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헤드폰과 나는 한 몸인 물아일체. 혼이 담긴 구ㄹ.. 음악을 듣는데 더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에.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지하철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이어리스 헤드폰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발을 사고 싶을때 남들 신발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헤드폰을 쓰고 지하철에 오르자 그제야 헤드폰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과 눈이 마주쳤을때는 우리만의 언어와 눈빛으로 대화도 가능할것 같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도 쓰고 있군요. 우리는 콜드플레이와 BTS의 하모니처럼 이 도시의 소음과 멜론이 어우러진 그 세계 어디쯤에서 또 만날수 있겠군요. 

 브런치에 어떤 새로운 시리즈물을 연재해볼까 하다가 생각해 낸 “나의 전자기기리뷰 근데 이제 감성을 곁들인…” 이거 계속 쓸 수 있을까? 쓰고보니 쫌 이상한애 같은데 나…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