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을 쓰면서 선택한 주제는 불안장애에 대한 내용이었다. 십 년간 불안과 강박 속에서 살아온 내용을 담은 글이었고,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십 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기에 그만큼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그중 대부분은 내가 겪은 불행에 대한 내용들로, 투병을 하면서 겪은 박탈감과 약물 부작용 따위의 이야기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인 이 불행한 이야기도 열심히 쓰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아마, 그렇지만 그런 우울한 이야기는 읽는 사람은 물론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별로 좋지 못했다. 고통이라는 건, 그 고통을 발판 삼아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고통이 된다. 불행한 과거를 되새김질하느라 현재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글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신체적인 부분이라,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이 불행을 떨쳐버릴 수 없다. 기약도 없고, 확실한 희망도 없다. 그렇지만, 오래도록 불행한 삶을 살면서 배운 한 가지는, 이마저도 내 삶의 일부라는 점이다. 난 지금까지 불행을 내 삶에 받아들이지 못했다. 삶의 목표를 행복에만 놓고 살다 보니 피할 수 없는 불행을 강박적으로 피하려고만 했다.
지금까지의 불행한 나날들에도 잠깐씩이지만, 소소한 행복이 찾아왔던 것처럼, 끝없는 행복도 불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도 불행도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짜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삶은 뜻대로 안 되는 게 더 많지만 그럼에도 소신껏 내 인생을 만들어보려 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내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
글을 쓰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지만, 뭐 쓰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난 꽤 희소가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희소가치 있는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