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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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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Apr 02. 2022

단편소설 : 빛의 박동 上

「효원」 134호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혀끝에 남은 짠맛이다. 깔끔한 맛 뒤에 약간의 쓴 향이 남는. 이를테면 바닷물 맛이 난다. 그러고 보니 아직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떠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갔다가, 눈꺼풀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꺼풀 너머가 차갑고 묵직하다. 그리고 이따금 흔들려오는 흐름들. 눈을 뜨지 않는다. 서서히 돌아오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로 한다.


눈꺼풀 너머의 감각을 온몸에서 느낄 수 있다. 주먹을 쥐어도 무언가 이물감이 남고, 발을 휘저으면 무언가가 발가락 사이를 지나간다. 팔다리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가슴팍 위에서 무게감이 느껴져, 심장이 박동하는 데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촉감이 신체의 말초에서부터 서서히 회복되어간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량이 급격히 늘어난다. 혼란스럽다. 이곳이 물 안이라도 되는 걸까. 내가 바다에 빠지기라도 한 걸까?


그때, 하얀색 빛이 눈꺼풀 위를 살짝 훑고 지나갔다. 어렴풋이 나타난 빛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는 한 번, 그리고 두 번 계속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광시증인 줄 알았지만, 곧 속으로 머리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망막의 착각으로 발생하는 눈앞의 일렁임과는 다르다. ‘이 빛은 무언가를 뚫고서야 나에게 도달했다’는 강한 직감.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는 광원이 이 빛을 뿜어내고 있을 것이었다. 계속해서 눈두덩이를 두드리는 빛이 방향성을 지닌 것임을 알게 된 순간, 눈앞이 점점 밝아오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광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와 광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압력이 살며시 가벼워지는 게 느껴진다. 내 몸이 떠오르고 있었다.


몸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작은 점이었던 빛이 하늘에 뜬 태양만 한 크기가 되더니, 결국 눈가의 어둠을 모두 잡아먹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몸이 수면에 닿았다.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경계의 감촉. 찬물에 발끝을 담가 볼 때처럼 조심스럽게 피부를 내밀어본다.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는다. 물 안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다니,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잠겨있었던 걸까. 얼굴부터 시작해 상반신을 물속에서 꺼낸다. 그제야 깊은 날숨이 토해져 나온다. 들이쉬는 숨에선 짠 내가 난다. 윗몸을 둘러싸고 있던 물들이 수면으로 도로 굴러가는 감촉을 뒤로하고, 눈 주위를 흘러내리는 물을 손으로 훔친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뜬다.


바다다. 내 예상대로 나는 바다에 있었다. 그것도 한가운데에. 어마어마한 물들이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어둠을 품고는 출렁인다. 마치 거칠게 호흡하는 지구의 본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다. 그리고 등대. 나의 정면에는 등대 하나가 서 있다. 그 꼭대기를 중심점 삼아 돌아가는 빛줄기, 지금의 나에게는 등대가 세상을 양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색깔의 구분 없이 새까만 바다와 하늘, 그 사이의 경계면을 비춰 비로소 구분 짓는 것이 등대였다. 갯바위에 몸을 부딪치는 검은 파도 속에서도 포말들의 하얀색만을 취한 듯, 등대는 뽀얀 몸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얼마나 바라보았을까. 심장 박동이 등대의 회전 주기에 맞아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순간 함께 박동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등대의 눈이 나를 향한 채 멈췄다.


엄청난 빛이 나에게로 쇄도했다. 빛을 막아주기에 내 눈꺼풀은 너무도 얄팍하기 그지없다. 곧 내 몸을 둘러싼 빛들 사이에선 방향성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림자마저 날려버릴 강한 백색이 나를 에워싸고는 사방에서 눌러왔다. 어느새 등대는 없었다. 차라리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즈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이제껏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던 친숙한 존재가 느닷없이 사라진 느낌. 몸에서 두근거림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장이 꺼졌다. 박동이 멈췄다.


허억-하고는 꿈에선 깬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거친 숨을 바로 하는 것도 아닌 가슴팍을 부여잡는 일이었다. 심장이 혈액을 분출하는 주기의 간격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 사이에 손을 얹고는 다음 박동을 기다리고, 쿵- 하고 전해오는 진동에 마음이 놓였다. 박동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사방은 떠다니는 수증기로 가득하고, 밝은 형광등 빛이 그들에게 부딪히면서 욕실이 온통 뿌옇게 탈색되어 있었다. 수증기 속에 숨은 산소를 갈구하는 허파의 목소리만이 잠시 욕실을 메웠다. 적절한 호흡의 템포를 찾느라 헐떡이는 상반신, 욕조의 수면이 거칠게 출렁였다. 수면 아래에는 곤두선 털들이 보였다. 닭살 때문이 아니었다. 털 가락들 사이에 작은 공기 방울들이 가득 맺혀있는 것으로 보아, 욕조에 앉고는 곧바로 잠이 들은 모양이다. 다리를 쓸어내리니 이제껏 갇혀있던 기포들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제자리를 찾아간 털들과는 반대로 심장은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요즘 잠을 통 자지 못했나. 아니면 나도 모를 심경의 변화를 겪었다거나. 지난 몇 주일을 조금 돌아보지만 뚜렷이 잡히는 일은 없다. 답답하다. 여러 달 동안의 내 일상은 따분할 정도로 일정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손으로 물을 떠 담아 얼굴을 닦는다. 물이 아직 뜨거워 얼굴이 화끈하다. 다시 수면을 바라본다.


일렁이는 파문들 사이로 한 친숙한 노인의 얼굴이 얼핏 스쳤다 사라졌다. 흠칫 놀라 눈을 똑바로 뜨니 보이는 것은 수염을 깎지 않은 내 얼굴뿐. 흰머리를 골라내지 않은 노인의 얼굴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운 노인. 이장님.


회상의 욕조가 채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등대의 꿈이라는 기억 줄기, 그 흐름이 새어나갈 구멍을 이장님의 이름을 한 마개가 메워준 것이다. 상념이 차오르고 차올라 쇄골선을 건드렸다. 그 불명확한 형태 속에서 내가 불현듯 발견한 것은 1년 전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도 작은 등대가 하나 있었다. 내가 잠시나마 온전히 호흡할 수 있었던 곳, 등대마을.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등대마을 이야기는 이렇듯 갑작스럽게 나에게 돌아왔다. 마치 동전을 찾기 위해 장롱 아래를 휘저은 빗자루에 결혼반지가 쓸려 나온 것처럼.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책상 서랍을 뒤진다. 찾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곧 두꺼운 노트 한 권이 손에 집힌다. 종이 재질의 표지에 인조 가죽을 잘라 덧댄 모습이다. 바래지도, 그렇다고 새하얗지도 않은 종이, 그 첫 장을 펴기로 한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던 회상의 방향을 반대로 한다. 노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짠 내였다. 차에서 내리자 바다의 비린내가 성큼 다가왔다. 낯선 곳으로 떠난 한 달 살기, 그 첫날의 기억은 이렇듯 짭짤함에서 출발했다.


배낭을 짊어지고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등대마을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그 옆에 서서 나를 맞이하는 것은 두 머리의 장승이다.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 떡갈나무로 보이는 진한 몸에 소금기가 밴 것이, 꼭 곰팡이가 핀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바닷가에서 장승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어색하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명목상 세워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학교 안의 석상들이 밤새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초등학생의 직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두 대장군 장승들은 이곳에 있고,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어디엔가 솟대도 있을 수 있겠다 싶어 고개를 두리번거리지만, 꼭대기에 갈매기 장식이 된 가로등들이 여럿 보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은 텅 빈 시간을 접어내기에 탁월하다는 걸 증명하듯, 금세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이다. 현관 오른편의 화분을 들춰 열쇠를 꺼낸 뒤 안으로 들어간다. 방은 사진으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섯 평 남짓의 작은 공간. 장롱 안에는 솜이불이 차근히 개어져 있고, 손때 묻은 보일러는 전원을 누르자마자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따뜻한 물을 뿜어낸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 사실 오는 동안 조금 걱정을 하지 않았나. 비어있는 집을 마을 차원에서 잠시 빌려주는 형식이었는데 생각보다 관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비어있음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뿐, 사람의 손이 완전히 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닌 모양이다.


가져온 짐 가방만 두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들어올 때는 환했던 날이 더 이상 밝지 않다.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겨울엔 역시 해가 짧다.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다.


바다를 보기 위해 나왔다. 어촌에서 바닷가를 찾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짠 내를 따라 걷다 보면 파도 소리가 들리고, 파도 소리를 더듬어가면 파도가 보인다. 그뿐이다.


부두의 감상은 ‘정말이지 정직한 곳’이다. 만의 끝자락에서 조금 더 파여 들어가 있고, 바다가 육지와 만나는 모양이 면 하나가 날아간 직사각형이다. 세 면으로 이뤄진 직사각형, 그중에서 가장 안쪽 면에는 낡은 어선들이 메어져 있다.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듯, 조타를 잡은 선장이 밖을 내다보아야 할 유리창엔 뿌연 먼지가 앉아있다. 그리고 바다와 접한 꼭짓점에는 흰 등대 하나가 서 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았을까, 해가 이불을 덮어쓰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 석양이 눕는다. 그 색 대비가 워낙 강렬해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본다. 물로 그린 유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만나 보라색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기도 할 테지. 파란 바다 위의 석양은 여전히 빨갛기만 하다. 그런 내 생각에 동의라도 하듯, 작은 포구에 메어진 통통배들이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리고 곧 등대의 꼭대기가 밝아지더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일정한 주기에 따라 하얀빛이 사방에 뿌려지는 광경. 발끝은 자연스럽게 그 주기를 따라 까딱이고 있었다. 운동화의 고무창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연한 밤하늘이 찾아왔고, 등대의 빛이 돌아가는 경로 위에 내 몸이 있었다. 빛이 다시 한번 나를 훑고 지나가려는 찰나, 그때 내 몸 안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한 치수 작게 맞물려 있던 톱니가 올바른 크기의 것으로 교체된 것 같기도, 또 지퍼에 끼어 내려가지 않던 옷이 한순간에 탈출한 것 같기도 하다. 나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어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날을 회상할 때면 항상 따라붙었던 어지러운 이미지들이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가 지르는 고함들, 그 사이사이를 메웠던 훌쩍임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등대, 혹은 등대의 빛이 그걸 이끌어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인데,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답답했다. 마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새벽에 깨서는 머리맡의 안경이 잡히지 않을 때처럼. 나는 그 해답을 갈구하고 있었다. 어차피 어떤 것을 얻어서 돌아올지에 대해서 전혀 정하지 않고 떠나온 여행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느끼는 이 갈증을 충족시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등대를 계속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항구로 나갔다. 숙소를 나설 때의 기분과 하루하루의 날씨는 매번 달랐지만, 결국 매일 밤마다 신발을 신는 목적은 같았다. 등대를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서고, 아침 해가 떠올라 등대 빛이 꺼지면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런 생활이 여러날 이어졌다.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아예 숙소 마당에 있던 낡은 철제 의자를 들고 가 앉았다. 그야말로 평이한 나날. 누군가는 타지까지 와서 이런 짓만을 반복하는 것에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스스로 쳇바퀴 달리기를 선택한 햄스터는 불행하지 않은 법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등대마을 어귀에서 장승을 본 것이 저번 주 월요일이고, 여느 날과 같이 의자를 끌고 와 항구에 앉아있는 오늘도 월요일이다. 온 세상에 안개가 꼈다. 등대 마을에 온 후 가장 심한 해무다. 덕분에 날이 어두워지는 것이 평소보다 늦다. 안개 방울 속에 갇힌 햇빛 조각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까닭인가. 패딩 위로 삐져나온 얼굴이 사뭇 촉촉해졌다고 느낄 무렵, 쭉 뻗어 꼰 다리 옆으로 낯선 그림자가 보였다.


“오늘도 나왔구만.”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항구와 숙소를 오가며 마주쳤던 마을 사람들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노인이다. 뻗치는 머리 속에는 완연한 흰색 가닥들이 보이고, 얼굴은 짙게 그을렸다. 특히 이마의 피부색이 진한데, 이마 라인의 뒤편에는 색이 조금 연하다. 이마를 태울 때와 머리가 벗겨질 때 사이에 시간차가 있었던 모양이다.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는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내가 어색하게 구부린 허리에 노인이 고개를 마주 끄덕인다. 노인은 누가 봐도 바다 사람이었다. 등산 브랜드의 패딩 상하의와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옷 전체에 얕게 배어있는 소금기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에게 앉으라는 듯이 손짓을 하고는, 노인도 접이식 의자를 하나 펴고 앉는다. 낚시꾼들 많이 들고 다닐 법한 등받이 없는 의자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여기서 뭘 그렇게 보고 있는가? 보아하니 날마다 나오는 것 같던데.”

“아 저….”


등대를 보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요즘 내가 보내고 있는 일상이 그리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입술을 오물오물하고 있는 와중에, 채 발화되지 못한 말 사이로 노인의 목소리가 선수를 쳤다.


“등대지? 그렇지? 등대를 보고 있었지 자네.”


흠칫 놀라 돌아본다. 노인의 시선은 나를 향해있지 않다. 노인은 허리를 숙여 양 팔꿈치를 자신의 허벅다리 위에 괸 채, 등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지난 일주일간 저 안에 있었거든.”

“등대 안에요?”


그렇지-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 등대는 유인 등대야. 그러니까 사람이 상주하는 등대라는 말이야. 자 보라고, 등대 색이 하얗지? 그래, 하얀 등대는 사람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인 게지.”


노인의 목소리는 특이했다. 힘이 있는 듯하면서도 중간중간 알게 모르게 끊어지는 것처럼 힘이 빠졌다. 그 오락 가락의 틈이 뭔가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꼭 등대 빛같이 말이다. 노인은 그런 목소리로 등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덕택에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우선 이 마을에는 없지만 다른 항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빨간 등대는 무인등대라는 것. 그리고 각 등대마다 고유 발광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 뱃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빛의 깜박임, 그리고 해도에 기록된 각 등대의 발광 주기를 대조하여 길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손목시계를 한번 바라본 노인은 가래 끓는 목을 다듬더니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물었다. 플라스틱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어낸다. 정면의 안개 덩어리 속에 연기가 끼어들어 갔다. 공기가 묘하게 변했다. 독한 담배 연기를 몇 차례 들이쉰 뒤, 노인의 목소리는 오히려 맑아졌다.


“그리고 우리가 저 등대를 관리하지. 마을 사람들이 일주일씩 교대로 들어간다네. 바로 어제까지가 내 순번이었고, 등대 안에 있는 내내 자네와 눈이 마주치더구만.”


눈이 마주쳤다라. 무언가 시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찰나, 나를 돌아본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문득 노인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딱딱해졌던 지점이 떠올랐다.


“저 그런데, 어….”

“그냥 이장님이라고 부르시게나. 뭐 지금은 이장이 아니긴 하네만.”

“네 이장님,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거로는 등대는 공무원들이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등대지기라는 단어도 있잖아요. 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등대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건- 하고 노인이 대답하려는데, 이제까지 침묵하던 등대의 꼭대기가 대뜸 밝아졌다. 함께 그 광경을 바라본 노인이 손목시계 위로 다시 시선을 돌리더니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염병, 그렇게 시간 좀 지키라고 말을 해도 참. 총무가 돼서는….”


그 뒤로도 별안간 몇 가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뱉어내는 노인. 호흡이 조금 거칠어진 것이 보인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자 신경질적으로 긁어대는 라이터 소리가 그 불편한 불규칙에 힘을 더한다. 그 와중에도 등대는 돌아가고 있었다. 등대마다 주기가 있다는 말이 기억나, 과연 저 등대는 1회전 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세어보기로 한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기다렸다. 세 바퀴를 도는 데 걸린 시간은 12초. 등대의 주기는 4초다. 빛줄기가 하늘에 새긴 문양은 매 4초마다 똑같은 형태를 하면서도 그 흔적이 남지 않았다. 되려 불러일으킨 것은 노인의 민망한 듯한 헛기침 소리였다.


“초면에 미안하게 됐네. 날이 추우니 자네도 무리하지 말고 들어가지.”


일어서는 노인을 배웅하기 위해 엉덩이를 뗀다. 내미는 손을 마주 잡는다. 힘 있는 악수. 마디마다 굳은살들이 고여있는 것이 느껴진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라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그대로 의자를 챙겨 떠난다. 그 뒷모습을 한동안 눈으로 좇다가 다시 앉는다. 자, 오늘은 언제 숙소로 돌아갈까.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하다. 아직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다는 생각. 오래 바라본다고 해답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등대와의 눈 맞춤을 이어나가는 것. 그것뿐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새벽녘에 들어와 쓰러지듯 잠든 나는, 얼마 안 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덮어쓴 이불 안이 온통 후끈거렸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게 분명했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꼼짝없이 방에 있어야 할 신세가 되었다. 벌러덩 하고 누워서는 코를 들이켠다. 어제 노인에게 들은 등대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안 등대와 빨간 등대. 등대마다의 리듬. 그리고 등대지기. 이제껏 등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했던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는 노트북을 켠다. 흰 포털사이트 배경에 ‘등대’를 검색한다. 그리고는 스크롤을 내린다. 오늘 밤도 길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날은 하늘이 깔끔하게 개었다. 그렇게나 짙던 그저께의 해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날씨와 마찬가지로, 목욕탕 같이 뿌옇기만 했던 머리도 많이 개운해진 것이 느껴졌다. 머릿속을 뭉게뭉게 돌아다니던 잡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해무들이 바다로 돌아갔듯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인 마음속으로 가라앉았을 것이었다.


의자를 끌고 항구에 도착하자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노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돌아보는 노인의 얼굴은 지난 만남 때 보다 훨씬 선명해져 있었다. 나와 노인, 두 사람의 얼굴 사이에 떠다니던 안개 알갱이들이 주름들을 효과적으로 가려줬던 듯하다. 노인은 내가 건넨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슬쩍 쳐다보고는 양손을 모아 뒷짐을 진다. 그 상태로 등대를 바라본다. 그 일련의 행동들이 매우 자연스러워, 마치 등대를 보기 위해서 마땅히 취해야 하는 동작들처럼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노인을 따라 뒷짐을 진다.


그리고는 침묵. 파도 소리와 바닷새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항구 끝자락을 노려보고 있는 노인의 옆얼굴이 딱딱하게 굳더니 미간이 조금 구겨진다. 그걸 신호로 삼기라도 하듯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노인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고, 입가 너머로 몇 마디의 웅얼거림이 들려온다.


“그래도 늦는군. 말을 해도 소용이 없어.”

“네?”


잘 알아듣지 못해 반문하는 나. 노인은 그런 나를 흘긋 바라본다. 시선을 다시 등대로 돌리면서, 노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등대는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켜져야 하지, 그냥 얼핏 보고 날이 좀 어두워졌다고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니란 말일세. 자 생각해보게, 해가 떠오르고 지는 시간은 매일 바뀌지? 그럼 등대 점등 시간도 마찬가지야. 시간에 맞춰서 등대를 켠다. 이 얼마나 간단한 원칙인가?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것보다 어려울 게 없단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것과 똑같다는 말, 꽤나 타당한 비유다.


“그런데, 지금 점등은 5분이나 늦었어. 이런 것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무슨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건지… 쯧.”


노골적으로 악의를 드러내며 혀를 찬다. 그리고 들려오는 라이터 소리. 익숙한 담배 냄새가 옆에서 날려온다. 노인이 말하는 ‘놈’은 누구일까? 등대에 들어가는 주기가 일주일이라는 노인의 말에 따르면, 저번 만남 때와 방금의 등대 점등이 같은 사람에 의해서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놈’은 총무를 일컫는다는 것인데,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입술이 살짝 달싹거리는 것을 붙잡는다. 그 전에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저 이장님, 저번에 하시던 말씀 있잖아요.”


담배를 꼬나문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노인. 폴더폰이다. 노인은 인상을 쓰고 화면을 노려보더니, 이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을 닫고는 고개를 들었다. 손으로 담배를 옮겨 쥐며, 노인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말하는 건가?”

“저번에 등대 이야기를 좀 해주셨잖아요, 기억하시나요?”


노인이 잠시 생각하는 듯 흰자위를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마른 침이 난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지.


“그때 말씀을 되게 재밌게 듣고 있다가 끊겨서 좀 아쉬웠거든요. 등대지기 이야기를 하고 계셨었는데.”

“…그랬었지.”

“혹시 이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등대를 관리하게 됐는지요.”


잠시 뒷짐을 지고 있던 노인이 의자를 편다. 나도 마찬가지로 가져온 의자를 자리에 놓는다. 저번의 만남 때와는 반대의 위치다. 나의 오른편에 있었던 노인은 지금 내 왼편에서 담배 연기를 뿜고 있다. 위에서 갈매기가 운다. 나와 노인 사이에서는 짠 바닷내가 난다. 그리고 정면에는 바다가 있다. 파도가 밤빛을 품고는 검게 출렁이더니 방파제에 몸을 부딪힌다. 물살의 흔적을 남기고는 물러서고, 조금 이따가 다시 부딪혀온다. 흰 시멘트가 파도의 색으로 젖어간다. 그 무모한 모습이, 꼭 파도가 자살이라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등대 빛이 10바퀴 정도 원을 그었을까, 노인이 입을 열었다.


“명태 때문이지.”


그 아리송한 단어를 뱉고 노인은 다시 침묵의 바다로 가라앉았다. 노인의 입이 다시 열리기까지 등대 빛은 5바퀴 정도를 더 돌았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명태가 떠났기 때문이야. 우리 마을, 그러니까 등대 마을은 본래 명태를 잡던 곳이었다네. 나의 증조부 때부터 쭉 그래왔어. 청년들이 명태잡이를 떠나고, 그 청년들이 늙어서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경험을 물려줬지. 지금은 터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곳에도 명태를 말리고 분류하는 판이 꽤나 크게 벌려졌었다네.”


항구를 주욱 훑어가는 노인의 손길을 따라가 보니, 과연 바닥에 큰 나사들이 여럿 박혀 있었다. 그들을 꼭짓점 삼아 선을 긋자 직사각형 평상 모양이 그려졌다.


“그렇게 몇 세대를 살아왔네. 한적한 바닷가에 있는 마을 같아 보이지만 예전에는 그 규모도 훨씬 컸다네. 적어도 지금보다는 말이지. 난로 기름을 산답시고 차를 타고 나갈 필요는 없었단 걸세. 그리고 우리의 그런 공동체는 명태로 이루고 쌓아왔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그놈들이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게 됐어.”


고개를 위로 꺾고는 한숨을 터트리는 노인. 담배 연기 섞인 입김이 밤하늘로 퍼져나갔다. 그 위로 등대 빛이 한번 지나갔다. 노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바닷물이 뜨거워졌다나 뭐라나. 명태잡이로 생계를 꾸려오던 마을에서 더 이상 명태를 잡을 수 없게 됐다니. 그 뒤로는 어떻게 됐을지 뭐 뻔하지 않나. 줄기가 끊어진 귤처럼 그렇게 떨어져 내린 게지. 잡을 물고기가 사라진 어부들은 배를 놔두고 마을을 떠났네. 남은 건 나 같이 미련한 늙은이들 몇 명이 끝이야. 할 줄 아는 거라곤 명태잡이밖에 없는데 마을 밖으로 나가서 뭐 하겠나.”


노인의 얼굴에 쓴 웃음이 떠올랐다. 잡을 물고기가 사라진 어촌이라. 등대를 관리할 공무원조차 떠난 것일까.


“이야기가 조금 샜구만. 다시 돌아와서, 왜 우리가 등대를 관리하느냐고 물었지?”

“네.”

“불필요한 행정력 소요라고 판단했다더군. 어부들이 떠난 항구에선 배가 출항하지 않는 법이거든. 자네도 보았겠지만 여기 떠 있는 배들은 더 이상 바다에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네. 사실 배라고 부르기도 뭣 허지. 띄워놓고 떠났으니 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런 곳에 등대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하지만 유인 등대를 하루아침에 무인으로 바꿀 수도 없는 법이지 않은가. 그냥 빨갛게 색칠하면 되는 거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 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더구먼. 통상적인 관리는 우리에게 맡기고 자기네들은 달에 한번 점검을 나와. 공무원들 사이에선 나름 가장 손을 덜 쓰고 처리한 거지.”


그 말을 듣고, 빨간 등대가 항구 끝에 서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저 등대는 하얀 등대로 존재해야 한다. 빨갛게 물들어서는 안 된다. 그때 노인이 나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빛에 놀라 들숨의 흐름이 한번 끊긴다. 강렬했고, 또 이글거렸다. 과연 평생토록 바다를 쏘아본 이의 눈다웠다. 노인이 그런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물결 위에 반짝이는 햇볕의 파편들, 그 속에서 물고기의 발자국을 찾아내려는 것처럼.


“그럼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지.”

“네 여쭤보세요.”

“자네는 저 등대 어디가 좋다고 매일 밤마다 이러는 건가?”

“(…)”


나는 여기서 왜 등대를 보고 앉아있는가. 내가 저 등대에 대해서, 또 그 등대가 몸담고 있는 이 마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매우 적지 않나. 그럼에도 어쩔 수가 없다고나 할까. 첫눈에 반한 상대를 떠올리는 앳된 고등학생이 된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 마주치고 싶다는 생각. 눈을 마주쳤을 때 상대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


“글쎄요, 정말 설명드리기가 어렵긴 한데… 그냥 보고 있으면 좋네요.”


허허-. 내 말을 들은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한 이유구만. 나도 그렇다네. 보고 있으면 좋거든. 사실 내가 여태껏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저놈 때문이라네. 자꾸 미련이 남아. 나를 부르는 것 같다고.”


등대가 부른다라. 어쩌면 나도 어떤 부름에 이끌려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문득 내가 떠나온 곳과의 거리감이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등대 빛의 도달거리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까닭일까.


“명태는 돌아올 거야.”


노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장님께서는 명태가 돌아오실 거라고 믿으시나요?”


노인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그리고 잠시 틈을 두더니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 터져 나온 문장은 이전보다 훨씬 강하고 간결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꺼낸 말이 곧 스스로의 근거라는 듯이. 노인의 얼굴이 강경한 빛을 띠었다.


“명태는 돌아올 걸세. 그리고 그놈들을 불러올 것이 바로 저 등대지. 아무리 생선눈깔이라고 하더라도 저 빛은 절대 지나칠 수 없거든. 저 빛은 특별해. 자네도 보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등대 빛을 따라온 명태가 마을을 다시 일으켜 줄 거야.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된단 말일세. 암 그렇고 말고.”


그 말의 여운은 노인이 떠난 후에도 항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한 확신이 지니는 힘이라고나 할까. 웅웅거리는 듯한 울림이 파도 소리 사이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고개 위로는 여지없이 등대의 빛줄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등대야 등대야. 네가 지금 부르고 있는 것이 무엇이니. 대화를 나눠볼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걸어본 말에 등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질문은 그대로 공기 중에 흩뿌려지고, 등대는 여전히 4초 주기로 박동하고 있을 뿐이다.


일상이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성질을 띠기에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이지만, 내가 요즘 살고 있는 나날은 그 반복성이 유독 강했다. 내가 이제껏 이토록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항구로 나간다. 항구에 앉아있자면 마을 안 편에서 알아듣지 못할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을의 일이다. 나의 일상과 마을의 일상은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


가끔 마주치는 노인과는 여전히 대화를 나눈다. 다만 등대와 명태는 대화 속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주로 노인이 옛이야기를 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한번은 항구에 메인 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용석, 성규, 성재…. 보이나? 배들에 이름이 적혀있지? 예전엔, 그러니까 10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 이름들이 외쳐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지. 어부들이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배 이름으로 새겨놓은 걸세.”


그럼 저 배들 사이에 이장님의 이름도 있는 것이냐고. 질문을 꺼내다가 말고 목 안으로 삼켰던 기억이 난다. 왠지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래 노인의 이름 위에 다른 이름이 덧칠되었거나, 혹은 노인이 직접 끌어내어 해체 해버렸다거나…. 배들은 떠난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봉분 앞에 손을 모으고 절을 하기 전에 묘비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을에 남은 몇몇 사람들은 배의 이름을 보며 과거를 회상할 터였다.


그렇게 오늘도 항구에 앉았다. 어느덧 한번 더 지나가 버린 일주일을 되새기면서, 발 앞에서 위아래로 울렁이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시선의 가장자리에서 그림자를 찾았다. 작은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오늘도 노인과 대화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가움이 일었다.


“(…)”

“안녕하세요?”


하지만 뒤를 돌아본 내가 눈을 마주한 이는 노인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나이는 나와 노인 사이 정도 될까. 40대 초반처럼 보이기도 하다가도, 웃음이 서서히 사그라들자 50대의 표정이 나타났다. 머리가 새까만 것이 노인의 흰 머리와는 사뭇 대비 됐다. 하지만 인위적인 검정이라는 것이 티가 났다. 얼굴의 나이와 머리의 나이가 지나치게 엇갈려 어색함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가르마가 6대 4라는 것도 거기에 한몫했다. 어쩐지 종 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때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내가 여태껏 앉은 채 올려다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허둥지둥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손을 맞잡는다.


“죄송합니다. 조금 당황을 해서요.”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 예의 그 웃음이 다시 나타났다. 어딘가 도회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눈은 가만히 둔 채 입꼬리만 올리는 데에 익숙한 사람의 웃음이다. 형식적인 악수를 마치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김총무입니다.”


총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노인의 입에서 나온 ‘놈’이었다. 등대 점등에 늦는 사람, 그런 주제에 청사진을 제시하려는 사람. 여러모로 노인에게 미운털이 박힌 듯싶은 인물이다. 하지만 처음 대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생각을 품는 것은 옳지 않다. 노인에게 전달받은 총무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그 안개를 날려버리려 눈을 꼭 감았다 떴다. 총무가 잠시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갑자기 일어나 조금 어지러웠다고 얼버무린다.


“이런, 제가 너무 갑자기 일으켜 세운 모양이에요. 괜찮으십니까?”

“이제 좀 괜찮습니다.”

“네에. 저, 마을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매일 여기를 찾으신다고요. 얼마 전에 숙소 잡고 오신 분 맞죠?”


내가 매일 여길 나온다는 게 아무래도 마을 안에서 소문이 난 모양이다. 맞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바다는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지요. 이해합니다. 저도 이 광경에 끌려서 여기로 터를 옮겼으니까요.”


나의 짐작이 맞았다. 총무가 풍기는 냄새는 이런 어촌의 것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시멘트의 색감이라고나 할까. 총무가 앞으로 조금 나와 나에게 등을 보이고 서서는, 항구 너머로 보이는 작은 바다를 안으려는 듯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몇 차례 큰 호흡을 내쉬었다. 얼굴을 볼 수 없지만, 필시 눈을 감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순히 바다를 감상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용할 줄 알아야죠. 보세요. 이 마을에서 바다가 가지는 의미가 뭡니까? 예전에 명태가 살았던 곳? 과거에 마을 사람들이 몸담았던 삶의 터전? 아 물론 좋죠. 명태도 좋고, 삶의 터전도 좋다 이 말이에요. 제가 궁금한 건, 지금의 의미에 왜 예전과 과거의 모습을 들이미냐는 거에요.”


총무의 등이 크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큰 호흡이 거칠어졌다. 바닷바람에 총무가 흘리는 흥분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날아왔다. 총무가 돌연 뒤를 돌아보더니 씨익 하고는 웃었다.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겠지요? 그렇지요?”


그 번들거리는 눈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총무가 허리를 굽혀 골프화의 끈을 매만진다. 몸을 크게 숙이자 향수 냄새가 떠오른다. 총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주말에 마을 회관에서 회의가 있습니다. 오시면 제 계획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한번 오시겠습니까? 오셔서 외지인의 감상을 말씀해주시지요.”


내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총무는 작별 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뜸 들이미는 악수를 거절하지 못한 채, 할 말만 하고 떠나는 총무의 뒷모습을 좇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총무가 남기고 간 흥분의 페로몬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등대를 바라본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바라본 등대의 꼭대기에는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등대도 물론 회전하지 않는다. 갈비뼈를 박차기 시작한 심장만 그 박동에 가속도를 붙여나갈 뿐이었다.


주말까지 얼마간 남아있던 날들은 철부지 아이에게 맡긴 카라멜의 행방처럼 묘연하게 사라졌다. 하나씩 하나씩 착실하게 지나가더니 일요일이 되었고, 나는 어느샌가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을회관은 숙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한 작은 건물. 걸음을 조금 빨리 하고, 이내 회관의 미닫이문 앞에 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와 있었던 이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머리가 하얗게 센 이들이 다섯 명. 그보다 머리가 검은 사람들이 네 명. 내가 늦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바라본 시계에는 아직 5분의 여유가 있다. 실내의 중앙에는 원통형 전기난로가 있고, 식당 대기 손님을 위해 내어놓을 것 같이 생긴 접이식 의자들이 난로를 빙 둘러싸고 있다. 난로를 켠 지는 꽤 되었는지, 난로 열이 의자에 앉아있는 이들의 무릎에 주황빛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고, 게 중에서 노인의 것을 발견한다. 언제나 그랬듯 강렬한 눈빛. 노인은 늘상 입던 차림을 한 채 접이식 의자에 구겨 앉아있었다. 반가움의 표시를 하려는 찰나, 나를 향하던 강렬함은 얼른 본래 위치를 찾아 돌아갔다. 그 덕에 무안함을 품고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정돈되어 있던 공기 속에 낯선 이가 불어온 바람이 사그라든다. 그리고 다시금 찾아온 침묵. 누군가가 구두 끝을 맞부딪히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거기에 응하듯 패딩 바지가 사부작댄다. 그런 산발적인 백색소음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마치 냉전 중인 남녀 사이에 앉아 밥을 먹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10분 남짓이 흐른 뒤, 회관 문이 열리고 김총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구 다들 와 계셨군요.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전한 6대 4 가르마와 골프화 차림. 그는 입구에 서서 잠시간 실내를 눈으로 훑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총무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동공이 기묘한 빛을 띠었다. 전에 본 적이 있던 눈빛이다. 흥분에 젖은 번들거림…. 그가 하나 남은 의자에 앉자, 나와 총무는 난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모양새가 됐다.


“(…)”


웃고 있는 총무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실내의 분위기는 점차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돌아본 노인의 옆얼굴이 딱딱했다. 주황색 난로 빛이 노인의 얼굴을, 동공을 가득 메운다. 총무는 그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고는 큰 호흡을 한번 내쉰다.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하는 공기 속에 총무의 향수 냄새가 섞여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때.


짝-.


총무가 양손을 한번 맞부딪히고는 입을 열었다.


“자-. 이제 회의를 시작해볼까요?”


노인의 눈이 점점 더 주황색으로 변해가고, 총무의 웃음은 더욱 진해진다. 벽시계에서는 초침의 달리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좋지 않은 예감.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선 불안함 감정이 찾아온다. 나와 총무가 눈이 마주치고, 난로에서 아지렁이가 피어올라 둘 사이의 공기를 일렁인다. 그리고 아지랑이를 따라 흔들리는 총무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순간, 나는 헉-하는 숨을 들이켤 수 밖에 없었다.



-135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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