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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맹 Jun 28. 2024

힘 빼고 흐물맹탕하게

프롤로그


잘하는 것이 없는게 무서웠다. 잘하는 것도 무서웠다. 서투른 모습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무서웠고 배알이 꼴리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도 무서웠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꾹 참는 것을 익혔다. 나는 욕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고 다독였고 그게 나다운 것인줄 알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실패에서도 예쁜 뭔가를 발견한 것처럼 누군가가 다가와주길 바랬다 그러면서도 다가온 그들이 나의 모습에 실망해 떠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나는 이중적인 마음 속에서 애써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잘했다. 잘하는 척, 못하는 척 적당히 꾸미기는 것도 잘했다. 너무 잘해도 안되고 너무 못해도 안되는 영역에서만 존재하기 위해 힘을 주어 버텨야했다. 










어느 순간, 안전한 영역에서 버티는 것에 지쳤다. 타인이 아닌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투명해지고 싶었다. 갑옷 같은 두려움에서 시작된 애씀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들쭉날쭉 울퉁불퉁한 나를 만나고 싶었다. 

우습지만 특단의 조치로 인터넷에서 쓰는 닉네임을 '흐맹'으로 바꿨다. 검색도 되지 않는 맹한 이름이지만 힘을 빼고 흐물흐물해지자고, 맹탕이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나는 본 적 없는 나를 만나게 될것이다. 한번도 나를 제대로 사용한 적 없으니 잘하지 않는 모습에 좌절을 하게 될것이다. 실패같은 실패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별 것도 아닌 것에 웃고 화내고 울게 될 것이다. 

맹탕한 나의 모습을 무시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속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나도 가볍게 무시해주면 된다. 

걱정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인데... 나에게 그렇게 과한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한번도 완벽하게 멋진 적이 없으니까. 나를 좋아한다는 건 그냥 내가 좋은 것이었으리라. 




나는 용기있게 별볼일 없는 자잘하고 하찮은 이야기를 할것이다. 시시콜콜한 사적인 이야기 안에 내가 문득문득 느껴질때 나는 진짜 나와 연결되리라 믿는다. 혹시...현실의 내가 너무 큰 좌절로 다가온다면 그저 꼬옥 안아줘야지.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맹탕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대하듯 나를 대하고 싶다. 대단치 않은 일을 미숙하게 했어도 잘했다고 박수를 처줘야지. 그 격려의 힘으로 나는 달팽이처럼 나에게 다가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결국 그 과정을 기꺼이 견디며 통과한 나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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