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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WER Mar 19. 2021

너와 하염 없이 걸었어.

기억나? Y

"with 서교동의 밤 - walking in the moonlight"



'사랑해'

뭐라고?

'사랑한다고.'

.....


그 날은 당신을 다섯 번째 본 날이었어.

우린 쉬지 않고 걸었지, 얼마나 걸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래도 공간과 시간은 기억나.


새벽이었어. 분명!

그리고 강이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그 강변을 걸었어.

네가 걷잖고 했잖아. 나는 네가 어디사는 사람인지도 몰랐는데 말이야.

그냥 어쩌다 보니 몇번 봤을 뿐이었는데.

근데 같이 하던 일을 끝내고, 나오던 길에 네가 같이 걷자고 청했었지.

나는 당황했지만,

근데 나는 좋다고 말했어.

나는 걷는 걸 좋아하거든. 나는 그 밤이 좋았거든. 그리고 가슴이 좀 떨렸거든.


뭔가 비가 올것만 같은 날이었는데, 해가 떠있어서 밝던 아침을 가진 밤이었어.

그리고 습기를 머금은 맑고 무거운 밤이 되었지.

그래서 망설임 없이 좋다고 말했던 것 같아.

하루 종일 걷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거든.


11시쯤, 걷기 시작했으니

도로는 조용했어, 우리는 그 강변을 따라 쉬지 않고 길을 걸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사랑하는지 이야기를 나눴고

아, 라라랜드 이야기, 그리고 하루키 이야기도 좀 섞여있었어.

이전에도 너랑 나랑은 공통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했는데, 역시나 생각만큼 많았지.

대화를 하는 동안, 그 날 밤은 온전히 우리 둘만의 것이었어.

공간과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어.

대화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였지. 안그래?


아 맞아. 마지막에는 해가 떠올랐어.

산 중턱을 넘어 해가 떠오르고 있었어. 물론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빛은 보였어.

그때 너랑 나는 마주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어.

편의점에서 500짜리 두캔을 샀더랬지.

이제 막 새싹이 파릇하게 돋아나는 강변 옆의 벤치에 앉아

두 눈을 하염 없이 바라봤지. 네 눈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네가 말했지.


'사랑해'

뭐라고?

'사랑한다고.'

.....


그래 정확히 그렇게 말했지. 기억나 Y? 바보 같은 녀석.

우린 다섯번 밖에 안봤는데 말이야. 그것도 온전한 대화를 나눈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는데 말이야.

너는 나의 두 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어. 사랑한다고.


그래서 나는 대답했지.


'나도'


그랬다고 그냥. 근데, Y

너는 오늘도 늦잠을 자내. 10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바보 같아.

아. 너 지금 일어나기 전에 항상 하는 몸짓을 하고 있어.

곧 깨어 나겠다. 나 이만 갈게. 너에게 전할 말이 있거든.


'Y 깻어? 사랑해.'

뭐라고?

'사랑한다고.'

.....


나도 B,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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