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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Sep 10. 2021

전 직장 동료는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아니고…

"당신은 살아오면서 어떤 영향력을 끼쳤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나는 많은 대답이 생각난다. "저는 우리 가족이 '사랑한다'라고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 영향을 끼쳤어요, 어머니나 아버지께 무작정 사랑한다고 말했거든요.", "글쎄요, 거창한 영향력은 아니지만 제가 봉사하며 도움을 드렸던 이들에게 아주 작은 순간이나마 도움을 드리진 않았을까요?"

사실 이 질문은 카카오 2021 인턴십 자기소개서 질문이었다. 서비스 기획 직무를 지원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관련 프로젝트와 같은 것을 얘기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 할 프로젝트가 없었다. 그래서 조직이라는 곳에서 끼친 영향력을 논하고자 전 직장 동료, 군대 동기를 찾아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물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했는가?'


내가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는 내가 어떻게 살고자 했는지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자 했는지 묻는다면 단연코 "내 일에 있어서만큼은 최고의 전문가인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로,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둘째로, 무언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무언가 필요로 할 때, 이 일을 도와주거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듬직한가? 나는 그러한 '듬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늘 노력했다. 군 시절 행정병으로 근무할 땐, 자그마한 수첩에 빼곡히 업무 프로세스를 적어두고, 빠르게 하기 위해선 어떤 단축키를 활용해야 하는지 적어두었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물어본 것을 또 묻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업무 프로세스는 물론 내가 했던 질문과 답변까지 Google Keep(또는 수첩)에 적어놨었다.

실제로 누군가 내게 "그래서 당신은 최고의 전문가였는가?"라고 묻는다면 과감히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 군 시절에는 최고의 엑셀 및 문서처리 전문가였고, 회사를 다닐 땐 적어도 맡은 일에 대해서는 1인분 이상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영향력은 무엇인가?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자 살아왔던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쳤을까?'를 묻기에 앞서 영향력이란 무엇인가 고민했다. 여러 고민 끝에 "나의 행동이나 말로 인해 타인이 변화한 정도"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인터뷰어로 하여금 디테일한 사건이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하노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면 디테일한 답변을 받기가 어렵다. "음.. 좋은 사람이었지." 정도의 대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실제로 가장 처음 인터뷰를 진행했던 군대 동기에게 "하노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을 때, 동기 또한 여러 가지가 있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

영향력에 대한 인터뷰를 위해 간단한 질문 3가지를 준비했다. "나의 말이나 행동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기억에 남는지?", "그 기억 덕분에 본인이 변화한 것이 있는지?"이다. 여러 인터뷰 중에서도 군대 동기, 회사 사수, 그리고 조직에 함께 있던 이는 아니지만 '하노마'를 사람으로서 가장 오래 지켜본 친구 이렇게 3명의 이야기를 다뤄보려 한다.



내가 속한 집단을 빛내줄 수 있는 사람


군대에서 함께 생활관(자는 곳)을 쓰고 서로 고민이 있을 때면 항상 얘기를 나누던 군대 동기가 있다. 전역 후에도 오랜 기간 연락을 하고 지냈다. 비록 전역하고 2-3년이 지나서야 겨우 얼굴을 보게 됐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경상도에서 자라 특유의 무뚝뚝함이 묻어나지만 사람을 생각해주는 그 깊은 속내는 그런 무뚝뚝함이 무색하게 항상 그에게 묻어났었다.

당시 중대(보병중대는 통상 100명이지만, 행정 등 업무를 수행하는 본부는 약 3-40명)에 단 둘밖에 없는 동기였기에 더욱더 친밀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하는 일은 달랐지만 제설, 작업, 훈련은 늘 함께 했다. 함께 무언가를 수행하는 사이로 이렇게 가까이서 나를 오랜 기간 지켜본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를 잘 알만한 친구였다.


회사에 다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점심시간에 약속을 잡았다. 함께 밥을 먹고 난 후, 커피를 한잔 사들고 회사 주변을 걸으며 그에게 물었다(당시 첫 인터뷰라 정해둔 질문을 사용하진 못했다).

"하노마라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는 정말 어려운 질문이고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고민을 좀 하다가 "내가 속한 집단을 빛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막상 대답을 들으니 민망하기도 하고 내심 그런 평가를 내려주어 몹시 고마웠다. '동기'는 함께 평가되기 마련인데, 내 덕분에 "O월 군번은 잘하고 있다"라는 평가를 들어 자신까지 편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평가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묻자 항상 '남들보다 잘 나서고, 이것저것 먼저 하려고 하고, 모난 곳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 명의 이미지가 한 조직을 대변하기 힘들 텐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었다며 고마운 말들을 이어갔다. 더불어 그는 나를 생각하면 '부지런하다. 주도적이다. 자기 관리가 뛰어나다.'가 생각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군대를 전역하던 당시 후임들이 상을 만들어 줬다. "백 첩 반상, FM상, 잔소리상, 밉상" 등 다양한 상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곳에도 매번 "항상 솔선수범하여"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항상 솔선수범해서 무언가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귀찮은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했던 이유는 내가 하면 함께 해줄 이들이 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직을 빛낸다'라는 평가는 곧, 나와 함께 해준 고마운 이들 덕분이지 않았을까.



엑셀에 광적인 집착을 가진 사람


비록 지금은 떠나왔지만 내게 첫 직장은 의미가 깊다. 삶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고마운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도 만남을 이어가는 사수이자 친구가 있다. 그는 회사에 단 한 명뿐이 없는 귀중한 인재였는데, 특정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시간관리를 한 것을 살펴보면, 업무시간 4할은 이 프로그램 관리 업무에 사용했다. 그렇다 보니 사수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그는 업무도 수행하며 동시에 인수인계도 하며 다른 업무도 해내야 하는 아주 지옥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업무를 수행했는데, 심지어 잘 해내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는 인사평가에서 아주 좋은 등급을 받았다)
그는 업무능력을 떠나 사람으로서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귀가 두 개고, 입이 한 개인 이유가 더 많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는 잘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고민과 힘듦을 묵묵히 들어주고 나서는 정말 힘들었겠다며, 무던히 건네는 위로가 내겐 큰 힘이 되었다.


사수와 업무를 수행할 땐 엑셀을 몹시 자주 사용했는 데, 나는 군 시절부터 엑셀과 친하게 지내온 덕에 다양한 단축키로 보다 빨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함께 회의실에서 엑셀로 업무를 수행할 때면, 넌지시 "그.. 이동은 컨트롤로 하면 빠르고.. PgUp이나 PgDn도 쓸 수 있고.. Ctrl space, Shift space도 좋고.."라며 단축키에 대해 말했다. 업무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매크로로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다. 엑셀에 대해 자주 말해서 인지, 그는 나에 대해 "엑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왜 그런 모습이 기억에 남으세요?

사수는 "단축키가 편하다고 알려주거나, 매크로를 짜주는 행동이 보통 귀찮아서 잘 안 하기 마련인데, 그걸 꾸준히 하는 게 기억에 남았다, 가르쳐줘도 안 하기 마련인데, 그걸 꾸준히 알려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고 했다. 덧붙이며 "엑셀은 대표적이었을 뿐,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해주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천해주는 것을 즐겨했다."


그로 인해 사수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당연히 엑셀이 늘었다(웃음). 엑셀뿐만 다른 이슈로 문제를 고민할 때도, 더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고 공유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덕분인지 나도 "더 나은 방식은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퇴사를 회사에 알리기 1주일 전, 나는 가장 먼저 사수를 찾아가 회사를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왜 떠나게 되었는지 이유를 가장 먼저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는 선택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기껏 가르친 부사수가 떠나는 마당에 화가 날 법한데도, 그는 그런 기색 없이 그저 내 선택을 응원할 뿐이었다. 

업무적으로도 뛰어나고 업무외적으로는 좋은 사람인 사수를 만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기다려줄 줄 아는 그 모습에 고마웠다. 그래서인지 하루빨리 업무 능력을 향상해 사수의 짐을 덜어내주고 싶었다.


엑셀에 대한 집착도, 더 좋은 방식에 대한 고민도 묵묵히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건 아녔을까.



인간관계에 있어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사람


A는 나의 절친한 고등학교 친구이다. 나이 앞자리가 두 번 바뀔 동안 꾸준히 만나왔으니 10년은 거뜬히 넘은 셈이다. A와의 인터뷰는 얼떨결에 진행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영향력"에 대한 고민을 할 때 A에게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A는 내 모든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이다. 20살 대학에 입학했던 때부터, 퇴사를 고민하던 순간, 그리고 퇴사 이후의 삶에서 힘듦을 겪을 때까지 늘 A를 찾아 고민을 나눴다. A는 내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항상 자기 일인 것처럼 고민을 함께해주었다. 가장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면 A를 찾아 고민 과정을 털어놓고 의견을 묻기도 했다. 


나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행동이나 말이 뭐야?

A는 내가 어린 시절 했던 말, "내가 죽었을 때, 내 장례식장에 와 3일 동안 슬퍼해줄 친구 3명만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덧붙여 "평소 행복함에 기준이 인간관계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한 말을 듣고 인간관계에서도 행복함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A는 그 이후로 전화번호에 저장해두던 친구 이름을 바꾸거나(A는 평소 이름 석자만 저장해뒀는데 나는 그게 너무 정이 없다며 좀 바꿔서 저장하라고 자주 말했다), 생일을 챙기는 등 인간관계에 있어 조금 더 노력을 들이게 됐다고 한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인간관계에 대해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내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당장 끊어져 버릴 관계를 애써 노력해가며 유지하려 한 적도 있고, 그런 노력 끝에 결국 서로가 아니라 내게만 소중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 서로를 소중히 여겨주는 좋은 사람이 많았고 또 그런 이들 덕분에 내가 잘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쁜 일상 속에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이들이 있었기에 힘든 순간을 잘 이겨내고 잘 살아올 수 있었다


내 곁에 힘이 되어준 고마운 이들이 있었기에..




재밌는 인터뷰였습니다. 인터뷰를 빌미로 평소 만나지 못했던 이를 만날 수도 있었고, 또 오래간만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취업을 위해 진행한 인터뷰였지만 제겐 취업보다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절친하고 막역한 사이일수록 "나에 대해 기억에 남는 행동이나 말이 있는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 굳이 묻지 않아도 날 얼마나 소중히 생각해주는지 알 수 있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어떤 삶을 살고자 했고, 또 어떤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오셨나요? 이번 글을 읽으며 짧게나마 지난 삶을 회상해보고, 또 그 속에서 고마웠던 이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래간만에 서비스 공부가 아닌 "하노마"의 이야기를 온전히 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절 지지해주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오늘 한 발자국 더 내디뎌봐야겠습니다. 물론, 지칠 때면 조금 기대기도 하고요.


아무쪼록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노마 드림.


Main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Photo by Matheus Ferrer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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