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된 69만점의 황실 보물들.
세계적으로도 보기드문 귀한 이 보물들이
평생의 원수였던 장제스와 마오쩌둥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25년 국민당의 총리였던 쑨원이 사망한 후,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장제스,
제 2의 당이였던 공산당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수 천명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국민당과 공산당은 협력관계였는데
공산당이 자신의 정권을 위협할 존재로 여긴
장제스가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한 것이죠.
이에 큰 배신감을 느낀 마오쩌둥,
장제스를 무너트리기 위한 게릴라전을 준비중이었습니다.
장제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병력을
가지고 있었던 마오쩌둥은 군사력을 확보하기위해
농민들의 민심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장제스가 속해있던 국민당은
농민들에게 무자비한 세금탈취로
사람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던 상황이였고
마오쩌둥은 지주들의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세력을 점차 확장해 국민당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장제스.
대만으로 도주할 계획을 세웠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마오쩌둥은
장제스를 제거하기 위해 끝까지 그를 쫓아갑니다.
그렇게 장제스의 뒤를 끊질기게 쫓던 마이쩌둥.
결국 바다 위에서 장제스를 마주하게 되지만
그를 그냥 살려주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장제스가 탄 배에 중국 역대 왕조의 보물
수 십만점이 실려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이러한 급박한 상황속에서도
장제스는 왜 이 보물들을 악착같이 가져가려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정통성’ 때문.
이제껏 중국은 새 왕조가 전 왕조의 보물을 대대로 소유하였는데
이를 본 장제스는 보물을 가진자가 진정한 통치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심지어 그 중에는
건륭제와 서태후의 묘까지 도굴해 얻은
수 백점이 넘는 보물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도주에 성공한 장제스는
타이페이에 국립고궁박물원을 건설한 뒤
세계적으로 희귀한 청동기 유물부터 각종 공예품까지
69만점이 넘는 국보급 보물들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두 배 규모인 엄청난 양의 보물들을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3개월마다 바꿔가며
전시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본군으로부터 중국의 국보급 보물을 지켜낸 장제스와
보물이 수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살려준 마오쩌둥,
평생의 원수였던 두 사람때문에
중국의 보물이 이처럼 후대까지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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