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01
여성들의 집단 속에서는 종종 ‘질투’라는 감정이 조용히 생겨난다.
한 손으로는 서로 포개 잡고 공존하며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반대편 손에는 날카로운 감정의 칼을 쥐고 있는 경우도 있다.
흔히 질투는 누군가가 특별히 빼어나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얕봤던 사람’이 어느 순간 앞서 나가거나 돋보일 때 질투가 생겨난다.
그 대상이 원래 뛰어나서가 아니라, ‘쟤는 나보다 아래일 줄 알았는데’라는 기준이 깨질 때 뒤틀어진 감정이 생긴다.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1. 능동적 질투자
질투를 드러내고, 그 감정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말이나 행동에서 바로 즉각적으로 티가 나며, 비교적 상대하기 쉽다.
이들은 질투를 연료 삼아 본인을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때로는 “사실 나 너 질투했어”라고 털어놓는 용기를 보이기도 한다.
2. 수동적 질투자
수동적 질투자들은 상대적으로 능동적 질투자들 보다 위험하다. 겉으로는 친구를 가장하고, 공존을 이야기하지만 끊임없이 상대와의 경쟁을 조장한다.
스스로도 질투를 인지하지 못한 채, 합리화와 자기 연민 속에 갇혀 상대를 모방하고, 은근히 깎아내리며, 결국상대의 정체성을 갉아먹는다.
능동적 질투자는 자신을 연료로 삼지만,
수동적 질투자는 상대방을 연료로 쓴다.
그들이 따라 하고 흉내 내는 건 단순한 우상이 아니라, ‘내가 앞서야 할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착각에 기반한 경쟁심이다.
그러다 보면 질투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쟤보다 뒤처져야 해?”
“쟤가 누린 걸 왜 나라고 못 누려?”
"네가 하는 건 나도 해볼 거야-내가 더 잘 해낼 거 같은데?"
"왜 항상 쟤 주변에는 좋은 일들이 생길까"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감정, 즉
“나는 쟤보다 낫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가장하며 감정소모를 유발한다. 그런 질투자의 옆에서 점점 지쳐간다.
‘내가 너무 자의식이 과한가?’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걸까?’
‘내가 가진 걸 나눠도 그만이지...’
'친구사이에, 이런 것도 못 나눠..?'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
이미 그 질투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다 수동적 질투자들이 “나 사실 너 질투했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인정했으니 괜찮다는 듯한 어이없는 정신승리.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는 그동안 상대가 당한 애모호한 공격, 불안, 모방, 무례가 회복되지 않는다.
질투는 가해자가 털어놓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정신승리는 가해자의 몫이어야지,
피해자가 그 거대한 서사를 감당해 줄 이유는 없다.
질투는 당연하다, 하지만 피해는 선택이다
질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해소한다면,
그건 더 이상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질투는 연료다.
누군가를 모방하려고 애쓰기보다,
그 감정을 자기 내면을 살피는 발판으로 삼고,
변화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
그게 진짜 정신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