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유난히 잿빛이었다.
맑은 하늘 대신 두꺼운 구름이 며칠째 머물러 있었고,
달빛을 기다리던 마음은 어느새 빗소리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마음 한켠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아마도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 날은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늘은 흐렸지만 공기가 부드러워서
점심을 먹은 뒤 오일장을 한 바퀴 돌았다.
시장엔 송편과 전, 과일과 약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사이를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이제는 제법 혼자 걷는 걸 즐기는 아이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주위의 시간도 잠시 멈춘 듯했다.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장터엔 사람들의 목소리와 냄새와 온기가 섞여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따라가던 시장의 풍경이 문득 겹쳐 보였다.
그땐 그저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소음마저 그리움이 된다.
세월이 흐르며 익숙한 것들이 사라져가지만,
이런 장면들 속엔 여전히 삶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둘째 날엔 비가 내렸다.
조용히 차를 몰고 내 부모님 댁으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빗방울이 길게 흘러내렸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고,
차 안엔 빗소리와 조용한 숨소리만 남았다.
그 소리들이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의 따뜻한 인사가 들렸다.
식탁 위에는 늘 그렇듯 정성스러운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아이를 본 아버지의 얼굴엔 자연스레 웃음이 번졌다.
아이의 작은 발소리가 거실을 오가며 울릴 때마다
비 오는 집 안이 한결 밝아졌다.
그날의 풍경은 단순했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오래 남았다.
비는 밤까지 이어졌고,
창문 밖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빗방울을 타고 부서졌다.
달은 끝내 보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환한 얼굴들과 웃음 속에서
나는 이미 충분히 빛나는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시간을 조금 나누어 가진다.
그 단순한 일이 어쩌면 요즘 세상에선
가장 명절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추석이었지만 마음은 환했다.
아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안에서 세대가 이어지고, 시간이 자란다.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비추던 이 따뜻한 온기,
그게 올해 우리가 맞이한 ‘달 없는 추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