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가족 , 그 후

by 강노아

슬픔을 정리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고왔던 그녀는 서른을 넘기지 못한 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녀의 이별식은 채 서른 명 넘지 않은 송별객들로 조촐하고 차분했다. 공항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자처럼 화덕에 들어가는 순번은 재빠르게 그녀에게 달려왔다. 네모난 마지막 목선에 탄 그녀는 뜨겁고 빨간 태양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타임머신 타고 떠났다. 슬픔을 벗 삼아 가족이 되어 우리는 한 줌의 그녀를 기다렸다. 정말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줌 재로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긴 그녀는 가볍다. 무겁고 차갑게 입장하고 가볍고 따듯하게 퇴장한 그녀를 가장 사랑하던 이가 이를 악물고 참으며 가슴에 꼭 움켜 잡았다.

그녀는 교회 납골당 동산에 뿌려졌다.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끝까지 따라온 사랑하던 이들 보는 앞에 하얀 재가 되어 세상을 날았다. 비둘기 같은 그녀는 바람을 타고 산을 내두르며 내 머리칼 속, 내 옷의 빈틈에도 고맙다고 안겨 주었다. 그녀를 떠나보내고 지친 하루가 꺼져갈 무렵, 그녀 오빠는 허탈을 이기지 못해 지친 나를 불러 밤새 술을 마시고 함께 밤을 보냈다. 취하자, 그는 허탈해 웃고 괴로워 울었다.






미국의 대학병원에 노인은 노구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나와 면식 없는 그녀였지만 내 생애 처음으로 죽음을 이륙부터 지켜보았다. 흑인 간호사는 옆에 대기하고 나이 든 백인 아들은 안타깝게 노모를 지켜보았다.

아이를 낳듯 몸의 힘을 다 쥐어짜 그녀는 숨을 쉬려 했다. 호흡의 리듬이 엉키고 컥컥 대는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 그녀 손을 꼭 잡은 동양인 간호사는 리듬을 따라 긴 호흡 할 수 있도록 자신이 죽어가는 그녀가 되어 크게 숨을 몰아쉬며 따라 하라고 간절히 말했다.


" 허읔, 허읔, 컥, 컥"


노모는 아직도 생명의 본능과 사력을 다해 사투를 벌인다. 아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호흡이 어려운 어머니의 마지막을 더 이상 보기 힘들어서다.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녀는 아직도 살아 있다. 작은 병실에 노모를 돕던 동양인 간호사만 남고 나와 흑인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다. ' 다 끝나면 연락 달라" 말만 남기고.


노모는 그 후로도 몇 시간 더 살아 있었다. 아들을 찾아 위로하고 싶었으나 아들은 이미 병원을 빠져나갔다.

그의 어머니는 냉동실로 갈 것이고 성대한 장례식만 남게 될 것이다.







죽음의 기억은 너무도 많다. 그나마 내 마음에 선명한 것만 적어 볼 뿐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앞의 글 "가족사진의 메시지"를 읽고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는 독자의 댓글에 갑자기 마음이 아파, 두 번째 읽고 있던 줄리언 반스의 책 'NOTHING TO BE FRIGHTENED OF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를 옆에 제쳐놓고 글을 쓰고 있다.


반스는 지독하게 냉소적이며 집요하게 까칠하다. 영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면서 그는 죽음이라는 자기 미래의 화두에 고춧가루를 심하게 뿌린다. 내가 그동안 상상하던 아름다운 죽음과는 거리가 먼 그러나 사실에 접근한 디테일을 핀셋으로 콕 집어 지적하고 아프게 한다. 솔직히 내가 그만큼 유명한 작가라면 "집어치우라고, 반스"라는 책을 쓰고 싶을 지경이다. 그는 아름다운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한다.


그를 까칠하게 생산한 그의 어머니나 과묵한 지성인 아버지조차 그들이 원래 가졌던 온전한 상태의 정신으로 죽지 않았다고 적는다. 먼저 죽어간 그의 친구들도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았고, 누구나 예상치 못한 개인 종말에 휩쓸려 떠내려 갈 것이 뻔하다고 말한다. 한 차원 앞서가는 솔직함이고 현장에서 만나는 사실이다.


미국의 내 선배는 죽음과 맞짱 뜨려고 마지막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리화나(미국은 합법이다)로 고통을 줄이고 단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겠노라고 공언했지만 누가 먼저 죽든 한번 지켜 볼일이다.






현대인의 죽음 처리속도는 인터넷만큼 빠르다.


아니 죽음을 처리한다기보다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군에 있을 때 우연히 교대하는 헬기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온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지만 그때 이미 우리나라 산하는 무덤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깜짝 놀란 것을 생각하면 화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죽음 산업은 인간의 신속한 해체로 가족에게 조금의 위로를 제공하는 퀵서비스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아름답고 고상한 죽음의 기대는 이제 불가능하다.


빌어먹을, 이 슬픔은 아직 지우지 못했다고!


가족의 죽음을 "빨리 나라"의 속도만큼 빠르게 처리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올 것 같지만

문제는 나와 우리다. 남겨진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그나마 재산 모아놓고 남은 가족이 기대어 살아갈 정도면 다행이지만, 달랑 몸만 가지고 닳도록 쓰던 사람들은 경제적 곤궁에 처할 것이 뻔한데 약 먹은 사람처럼 슬픔에 잠겨 있다 떠나보내고 나면 마취에서 깬 차가운 현실을 보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깨어나도 아직 슬픔은 조금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거다. 장수하다 호상으로 치러진 이별이 아니라면 떠난 가족의 그리움은 죄책감과 상처들로 뒤범벅된 채 작고 초라한 뇌의 모든 신경세포를 하나씩 건드려가며 하루에도 열두 번 눈물을 터뜨려 버리게 한다. 나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내가 그토록 어려워하던 아버지를 잃었을 때, 나를 죽이고 싶은 슬픔이 밀려든 까닭은 죄책감이었다. 로 설명하기 곤란한 죄책감이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고, 훗날 방문한 묘지에서는 오히려 담담하고 포기하는 심정으로 그분을 만났다. 하물며 사랑하고 사랑받던 가정에서 살던 분들은 사별을 당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슬픔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가족 이별, 그 후


그 후는 모두의 관심이 사라지고 나 홀로 떠난 그 와 단 둘이 남아 있는 순간이다. 그 (그녀)는 항상 내 앞에, 선명한 기억의 창 앞에 단단히 서있다. 내가 그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가 나를 보고 있다.


그와 지금 대화하고 싶지만 그는 항상 오래전 영상만 "다시 보기"로 보여준다. 다시 보기도 꼭 내가 잘못한 것만 골라서 보여준다. 그가 아름답게 보여주는 추억은 내가 찍은 각도에서 다시 보게 만든다.


왜 좀 더 잘하지 못했을까?

내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가 원망 섞인 불평을 늘어놓으면 동생은 싫어한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가 과거에 잘 못 했던 일을 토해낸다. 어머니는 웃지만 우는 거다. 아버지 잘못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자신의 회상으로 아버지를 다시 세상에 꺼내놓기 위한 뾰족한 묘수였을 것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면 길수록 받은 사랑이 크면 클수록 슬픔은 그 시간만큼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하던 가족, 애견 루이도 세상을 떠난 지 꼬박 2년이나 되었는데 아직 핸드폰과 노트북에 남아있는 이유는 우리는 다만 보살펴 주고 녀석에겐 사랑더 많이 받아 그렇다.

사별하면 슬픔은 완전히 삭제되지 않는다. 범죄자들이 제일 먼저 핸드폰을 바다에 던져 버려야 증거가 없어지듯 슬픔도 내가 죽어 바다에 던져질 때 비로소 없어진다.



슬픔을 저장하고 함께 사는 방법이 있다

지워지지 않을 만큼 사랑한 가족이라면 누가 뭐라 하든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와 함께 살면 오히려 세상 소음이 사라져 좋다. 몸은 좀 무겁지만 목소리는 중저음으로 가라앉을 것이고 수다 떠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큰 목소리는 귀먹은 사람처럼 조그맣게 들릴 것이다. 깔깔대며 웃을 일은 사라지고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봤자 미소가 전부 일 것이다. 밥을 먹을 때마다 기도 대신 잠깐 울어도 좋고 눈물이 터지면 그날 밥을 굶어도 좋다. 그렇게 그(그녀)와 함께 지우지 말고 담담해질 때까지 사는 것이다. 내 안에 저장된 슬픔이 증발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살면 그것이 담겼던 빈 그릇에 다른 것이 차기 시작한다.



그것이 차 올라 내 웃음이 소리를 내고 남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떠난 자가 우리에게 신호 보낸 것이다.
" 나 이제 괜찮아, 너도 잘 지내"





지상 최대의 믿음은 우리 영혼이 영원할 것 같은 믿음이다.


나는 낡은 근본주의 기독교 탈은 벗었지만 아직도 믿음을 갖고 산다. 내가 반스와 다른 점이다. 그는 불가지론 자라고 하지만 그의 책 Nothing to be~에서 “I don’t believe in God, but I miss Him,”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 라고 시작한다. 그는 종교적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어쩌면 당면한 죽음을 진지하게 통찰하지만 그의 카메라는 신을 찍을 수 없다. 만약 당신이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적어도 아주 조금 자유롭고 싶다면 떠난 그와 내가 함께 만날 공간 "하늘" 정도는 마련돼야 한다. 그 하늘은 신앙의 하늘이다. 그곳에는 절대자가 없어도 좋다. 종교가 가르치는 희멀건한 날개를 달고 하얀 옷을 입고 날아다니지 않아도 좋다. 윤회를 위해 대기 번호를 달고 화장장에 반듯이 누워 들어갈 때처럼 다음 생에 태어날 분주한 곳이 아니어도 좋다. 그 하늘은 자신이 죽음 앞에도 지키고 싶은 최소한의 자기 방어막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별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이 참 의아했었다. 일반적으로 별이란 가스로 이루어진 항성을 의미하는데 물론 우주먼지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다시 별이 되면 좀 무지막지하지 않나? 죽으면 태양처럼 되어서 그 뜨거운 지옥불에 들어가라고? 태양계 지구형 행성을 상상한 것은 아니겠지? 난 죽으면 별이 아니라 "신의 품 안에" 미국에서 쓰던 God's embrace란 문장을 좋아한다. 신의 품은 생명의 처음이며 창조자의 혹은 어머니 우주의 자궁이다. 이 부분은 각자의 믿음에 따라 정하기 나름이고 내 주장은 먼저 간 가족을 위해 망상이라 들어도 좋으니 하늘을 가지란 말이다. 나는 내 하늘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계시고 사랑하던 친구도 루이도 있다.


신앙의 하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생긴 것은 흑인 가족 죽음을 돕던 일 때문이었다. 내가 호스피스 인턴으로 공부하던 에모리 대학병원에는 매일 두 세 사람 정도 죽어 나갔다. 당직근무 중 호출기 연락을 받고 간 곳은 흑인 가장의 죽음 현장이었다. 대부분 조용하고 침착한 가족들과 달리 이들은 시끄럽고 요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들의 가장은 죽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했고 환자는 의식이 희미하지만 죽고 있었다. 가족들이 찬송을 부르고 박수를 치고 아, 정말 나는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안되지만 나는 슬쩍 자리를 피했다. 나는 필요 없는 곳에 서있는 것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 든 흑인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잠시 그들의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이 Baptist ( 미국은 제일 큰 교단 침례교 신자를 그냥 뱁티스트라고 부른다)라는 것. 그래서 천국 문을 열고 기다리는 본향으로 가는 것이라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 잠시 후 죽으면 연락하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조금 시간이 흘러서 그곳에 갔을 때 똑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환자가 사망한 다음이었다. 그때 알았다


"그래, 의심이나 불신보다 저렇게 단순하게 믿는 것이 낫겠구나".


무지와 앎 사이에서 고민하느니 죽음 저편을 믿음으로 밟고 지나는 것도 반스가 갈구하는 " 신이 그립다"의 답일 수 있다. (짧은 단상에서 이 의미의 깊은 학문적 고찰은 피한다. 각자 믿음으로 이해하시길) 반스가 철학을 공부하다 문학으로 돌아온 것은 철학자로 자격이 미달해서도 그렇지만(자기 말로) 문학으로 삶과 죽음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어서다. 뜨거운 별 말고 " 저 하늘"은 나의 문학적 표현이고 "장소 (토포스 topos)를 말하는 메타포다.


나는 하나님의 품, 저 하늘, 우주 어머니의 자궁, 이런 정의 definition를 가지고 내 세상을 구축하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우주 이런 단어도 즐겨 쓴다. 브런치는 문학지 니까 여기서 그만 하련다.


한국 선배 말이 생각나서 그렇다.


" 동생, 사람들이 미국 가면 다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다고 하는데 아직도 저 ~하나님은 믿어?"



"네, 저 하나님은 안 믿고 그 하나님은 믿지요"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내고 상심한 분들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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