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길게 했다.
그는 나처럼 한국과 미국을 오가다가 요즘은 한국에 더 오래 머무는 친구다. 그는 IT 쪽 창업을 하고 연구개발과 투자를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어제 술 한잔 제대로 했어, 그런데 내가 아주 웃기더라고"
그는 술자리에서 과분하게 마셨다고 했다. 평소 주량이 소주 1병인데 기분에 못 이겨 청하를 1병 반 추가해 마셨다고 했다. "괜찮기에 대중교통 타고 집으로 갔지, 그런데 웃기게도 집에 어떻게 왔는지 몰라"
그는 기억과 수분을 다 토해냈다고 했다. 천천히 취하는 약한 청하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고. 정신만 차리면 이 정도 취한 것은 감당할 줄 알았는 데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해설을 덧 붙였다. "강속구가 안 통할 땐 커브나 체인지 업을 던져야 하는데 아직도 쎄다고 믿는 거지" 그는 요즘 들어 고민이 많다. 사업 속도는 더디고 자금 사정은 어렵고 코로나 구렁이에게 얼굴을 칭칭 감겨 질식사할 것 같다고 했다. "가족들 한테 미안하고, 결과를 만들지 못하니까 지면서 사는 기분 알지?" 그는 나보다 인물도 좋고 스마트하고 글도 잘 쓴다. 학교 다닐 때 성적도 좋았고 젊어서 인기도 많았다. 내가 부러울 만큼 그는 나보다 가진 것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지는 인생, 패배를 고백한다.
나는 승부욕이 강했다.
테니스가 한창이던 시절 복식경기 때 네트 위로 로빙볼이 오면 팀원에게 코트가 쩡쩡 울리게 소리친다.
"죽여버려!" 상대 팀은 헛웃음을 짓는다. 나도 사력을 다해 상대 빈틈에 꽂는다. 경기를 너무 일방적으로 이길 때는 작전타임을 요청해 팀 동료에게 속삭인다 " 너무 쉽게 이기면 재미없잖아, 이번 세트 져주고 마지막에 긴장감 가지고 이겨버리자" 그러면 그는 말한다. "그냥 이기면 안 돼?" "안돼" 그렇게 해서 지면 내가 밥 다 살 테니 그러자고 설득한다. 그날 경기를 마치고 밥은 내가 다 샀다.
뇌경색을 당하고 겨우 재활해 투자자와 서울에서 골프 회동을 했다. 또 내기를 걸었다. (물론 한 타에 1불 정도) 예비 투자자가 잔뜩 긴장한다. "저에게 핸디 잡아주셔야 할 것 같네요 " "하하 아뇨, 전 한쪽을 잘 못 씁니다. 뇌출혈이 있었어요" 경기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캐디는 내가 공을 너무 못 쳐 남들과 떨어진 숲 저쪽에 있을 때 헛스윙하고 30센티 공이 굴러 가자 "이건 안 셀게요" " 아니요, 제대로 다 적으세요" 캐디는 어이없게 쳐다본다. 공도 망하고 투자유치도 망했다. 돌아오는 길에 동반한 동료가 주의를 준다. "대표님 좀 무모했어요, 아픈 사람이 한판 붙자고나 하고 그 사람 투자 잔데 그러면 어떡해요? " 그 양반 공치는 태도 보고 내가 더 이상 진도 나가지 말라고 하자 그가 불편한 속마음을 들려준다. 이놈의 승부근성은 아파도 세월이 흘러도 이 모양이다.
하지만 이 승부사 기질로 한때는 승승장구했었다. 아이디어는 넘쳐났고 추진력 또한 윗사람들 에게 인정받았다. 아무렇게나 말로 직구 던져도 웃는다. 집에 가면 그 말의 비수에 피 흘리고 있을 테지만. 내가 아주 잘난 줄 착각했다.
진화생물학자 도킨스가 그렇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저돌적 공격은 그 기세가 대단하다. 과학 하는 신학자 같다.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로 호감을 갖고 그를 오랫동안 읽고 지켜봤지만 그의 신념은 저돌적이고 승부사
기질이 차별화돼있다. 승부근성을 제대로 갖고 쓴 책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도킨스는
역시 전투적이다. 그래도 그는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싸움을 해 나간다.
종교학자 마커스 보그는 차분하다. 그는 권위적이고 저 하늘의 하나님을 넘어 "우리 안에 계신 초월자"를 설명한다. 근본주의 낡은 기독교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학자지만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대체적으로 호응한다. 나는 개인의 자유로운 종교가 자신에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고 본다.
나의 승부사 기질을 부드럽고 차분하게 바꾸는 노력은 그렇게 마커스 보그를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현재 나는 도킨스 스타일이 아니고 보그 쪽 삶의 태도를 수용하고 산다.
싸우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면 패배는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패배가 없으면 진보나 도약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패배에 익숙해져야 한다. 지난번 글 " 좋아한다, 싫어한다"에서 <지는 경험>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주장에 연결되는 말이다. 이기는 결과만 성취 혹은 성공이라고 착각하는데 "지는 중"과 "지는 결과" 또한 놀라운 성취의 일부다. 미국에서 지미 카터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그의 <최선을 다하는 삶>을 다시 떠 올렸다.
지미 카터가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할 때 원자력 잠수함 요원을 선발하는 면접 에피소드다. 해군 대위였던 카터는 훗날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현역 해군 제독으로 근무한 리코버(Rickover) 대령과 면접을 보게 됐다. 리코버 대령은 해군사관학교 시절의 성적을 물어봤다. 카터는 “820명 중 59등을 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대령의 칭찬을 기대했으나 그는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의외의 질문을 받는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 카터 대위는 잠시 생각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수정해 답변했다. 그러자 리코버 대령은 카터 대위를 응시하며 그의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었던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지 않았는가(Why not?)”라고.
이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카터에게 인생의 가치관이 됐다. 그는 조지아 주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거쳐 39대 미국 대통령까지 역임했다. 또한, ‘Why not the Best’는 조지아 주지사 시절, 대통령 선거에 다크호스처럼 나타난 카터가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첫 번째 자서전의 제목이었다.
어릴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 늘 의문을 가졌다. 참 추상적인 언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손흥민 때문에 그 말을 설명하기 쉬워졌다. 그가 월드클래스로 평가받는 이유는 지고 있는 경기를 뒤집는 능력이 있고 그는 끝날 때까지 골을 넣을 수 있는 기대를 갖게 해 주어서 그렇다. 그가 뛰면 지고 있어도 "언젠가 이길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해 준다. 골도 대부분 창의적이고 폭발적이며 종료 전에 터지는 극장 골도 많다. 최선을 다하던 손흥민 할아버지가 80세 기념 특집으로 TV에 나와 번리전 70미터 단독 드리블 골을 회상할 때 우리는 아쉽지만 대충 죽어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지고 있어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고민하고 생각하며 삶의 질문들을 대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최선을 다하고 사는 후회 없는 삶이다. 최선을 다하면 지고 이기는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구체적인 방법은 자기 몫이다.
줄리언 반스가 언어유희로 "신 God을 거꾸로 하면 Dog이 된다"는 말에 빵 터졌다. 그는 삶과 신에 대해 냉소적인 지적을 멈추지 않지만 그 역시 "삶이 겨우 이것뿐인가" 하는 고민의 흔적은 그의 저서 모두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패배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루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도하는 지점을 잘 찾는 것이다.
김두식 의 "불편해도 괜찮아"에 소개한 ‘지랄 총량의 법칙’ (누구나 평생 써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사람마다 발현의 시기가 다를 뿐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그 양을 다 쓰게 돼 있다는)처럼 패배를 경험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언젠가 패배의 총량을 다 쓰고 죽어야 할지 모른다. 따라서 승리에 도취할 필요도 없고 패배의 시간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다만 패배를 익숙하게 관리할 수 있다면 승리가 찾아왔을 때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검도부가 있었다. 검도는 호구도 착용하고 그럴듯하고 멋져 보이지만 무척 힘든 운동이다.
검도 선생님은 수업을 마칠 무렵 오늘 배운 것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앉게 하고 학생 한 명을 호명하여 자유대련을 했다. 눈이 마주치면 그날은 죽는 날이기 때문에 호구 틈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우리는 무척 애를 썼다. " 너, 앞으로!" 그 소리에 난 심장 무너지는 줄 알았다. 바로 내 옆자리 친구가 지목받았다. 그날 배운 것은 "머리~" 하면서 외치고 머리 치기로 공격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막무가내로 죽검을 휘둘렀다. " 그쳐, 배운 대로 해!" 멈추고 다시 해도 "야~ "하며 검을 마음대로 휘두른다. 우리는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죽을 뻔했다. 스승님이 맞고 있었다. 죽검을 마음대로 휘두르니 젊은 녀석 힘을 당해낼 재간이 있을까? 한참 동안 스승님은 뒤로 물러서다 발톱이 부러져 피가 나기 시작했다. " 피나요! 선생님"대련을 멈추고 스승은 자기 발톱을 보았다. 호구로 얼굴이 가려 분노는 볼 수 없었으나 화는 들을 수 있었다. " 너! 그 자리에 공격하지 말고 기본자세로 서있어 그리고 날 방어해" 분위기는 살벌했다. 친구는 덜덜 떨면서 공격을 멈추고 스승을 주시하고 있었다. 스승은 머리 공격을 하듯 날더니 곧바로 큰 함성 야잇!!! 과 함께 학생의 목을 공격했다. 목 찌르기, 일본 검도장에서 목 찌르기를 피했더니 죽검이 도장의 나무 벽을 관통했다던 그것. 순식간이었다. 만화처럼 친구는 쓰러지고 " 수업 끝" 소리와 함께 대련은 끝났다.
스승은 나중에 친구에게 사과했다. 감정적으로 그래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친구에게 나머지 공부를 해주었다.
"상대가 나보다 강한 유단자라 해서 겁먹지 말고,
상대가 나보다 약한 자라 해서 얕보지 마라.
평상심이다.
누구든 침착하게 맛 서다 보면 기회가 오고
단숨에 끝내면 된다"
나는 평상심을 가지고 패배를 능숙하게 관리하려고 애쓴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 하고.
친구에게 문자 했다. " 패배의 익숙함, 최선을 다하는 것, 평상심 나 요즘 이런 단어 생각 많이 해
응원할게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