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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24. 2023

장터

 오랜만에  한국에서 읍내 5일장을 만났다.


옛날 미국태생 한인친구는 우리나라에선 재래시장이 제일 재미있다고 했다. 그는 재래시장 갈 때마다 낡은 캐논 카메라로 오만 사진을 마구 찍어댔었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재래시장을 좋아했다. 지금도 인천공항, 대형 쇼핑몰, 지하철, 한식, 안전한 밤거리 보다 민낯 그대로의 시골 재래시장이 더 매력적이다. 재래시장 상인은 깊은 한숨과 즐거운 탄식을 번갈아 터트리며 매상을 따라 손님을 따라 함께 울고 웃는다. 장터는 시간마저 느려터진 slow city다. 또 한 번씩 터지는 "뻥이요"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심벌즈 소리 같아 한 번씩 정신이 번쩍 든다. 어려서도 "뻥이요" 소리 나면 연기사이로 쏜살같이 달려가 자루 사이로 뛰쳐나온 봄의 살구나무 꽃 같은 뻥튀기 한두 개쯤은 너끈히 받아먹었다. 그래서 뻥튀기 연기와 소독차 연막은 아이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지금도 장터에는 구경거리가 많다.


 어떤 영화에서, 죽음을 앞둔사람 집마당에 서커스 공연을 해주던 장면이 희미하게 기억난다. 나도 이 행성의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누군가 마련한 시장풍경이 내 앞에 펼쳐진다면 웃으며 울며 감동받을 것 같다.   





 자전거 헬멧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봄바람을 가르며 달려 얼큰한 동태탕부터 먹고 시장을 구경했다. 삼십 대 부터 고향을 등지고 살았기에 언제나 사는곳은 항상 객지였다. 인류가 우주선 타고 외계 행성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지구는 수백 년이 흘러 다른 행성이 되어버린 것처럼 고향 풍경은 또다시 모르는 것 투성이에 모든 것이 처음처럼 막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딱 한 가지 타향에 없 것은 고향의 온기다. 미국 Flea market에도 동네 Garage sale에도 이런 구수한 따뜻함은 전혀 만나보지 못했다.


 요즘 장터는 과거보다 많이 조용해졌다. '골라, 골라"도 없고 간절한 호객도 없다.  저들은 평생 장터를 지키며  아이들을 열심히 키웠을 것이다. 아이들은 커서 도시로 나가 마침내 검정 가운에 사각모를 쓰고 부모에게 자랑스런 자식이 되었다. 그 아이들은 부모가 장터에서 팔던 생선, 나물 대신 무기를, 반도체를, 백신을 파는 큰 장사꾼이 되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젠 바쁘다며,아이들의 부모가 그랬듯이, 명절에도 얼굴 한번 안 비치고 돈만 보내준다.


 아이들 용돈으로 마침내 장터에 안 나와도 되지만 남은 인생 할 일 없으면 쉬이 늙을 것 같아 노인들은 운동삼아 장사를 한다. 아직 생존의 끈을 꽉 잡은 노인은 은퇴한 도시 부자보다 겁나게 건강하다.   


그래서 말년에  "잘 살았다"는 것은, 경기가 끝나봐야 승패를 아는 프리미어 리그처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고심 끝에 텃밭에서 일할 때 쓸만한 혁대 하나를 골랐다. 그래봤자 군대에서 쓰던 바로 그 혁대다. 젊을 때 군대에선 몰랐는데 이 혁대는 가볍고 잘 조여져 참 좋다. 몇 가지 농기구도 사고 싶었는데 "인터넷에 주문하기로 한다" 호한  판사같은 주문이 머리채를 콱 잡아 세웠다. 인터넷 물건은 만져볼 수도 없는 허상인데 우리는 이제 아마존의 노예가 되어 버린 듯하다.


장터는 잠시지만 내게 여백의 기쁨을 주었다.   


아련한 시장 소음은 피아노 협주곡처럼 들렸고, 느림은 백화점의 가득한 인파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엉켜 매달린 굴비 같은 매듭을 손쉽게 풀어주었다.


 무엇보다 느리게 생각하며 여유롭게 걷는 것이 한가한 미술관의 명화를 감상하는 특권 같아 나에겐 소중했다.   


아무래도 나는 인파에 섞여 무리로 사는 체질은 아닌가 싶다.


장터를 구경했으니 오늘 만큼은 시차를 이기고 잘 잘 수 있으려나 했는데,

지금 시카고는 오후 3시, 어쩐지 초롱초롱하더라니...


  https://youtu.be/WQ2ejGuLq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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