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알란책방

작가의 실제이야기

단역배우 김순효 씨 - 이수정

by 노아나

지난주 스펙터클한 주말을 보냈다.

중간과제를 제출하고 마음 편히 평산책방에 다녀왔다. 그곳에서의 인연은 앞으로 날들을 살아갈 힘이 된다.

평산책방의 책방지기의 추천 도서이고, 문학소매점의 점장의 추천 도서인 이 책을 이제 읽었다.

제4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인 이수정 작가의 [단역배우 김순효 씨].

읽는 내내 엄마가 생각났다.


KakaoTalk_Photo_2025-04-29-13-01-03.jpeg


아마 딸들은 이 책을 읽으며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엄마란 존재는 애증의 존재라고.


- 나는 카메라를 줌아웃해서 엄마를 프레임에 넣었다. p58


엄마를 카메라를 통해 보는 딸. 그 광경을 상상하니 참 아름다웠다. 딸의 솔직한 심정이 어떻든 상관없이.

카메라를 엄마를 향해 들면 엄마는 항상 45도 각도로 몸을 틀고 손을 배에 올렸다.

스튜어디스도 아니고 거의 대부분 단체사진 속 엄마는 같은 포즈였다.

만약 그런 엄마를 비디오카메라에 담는다면 어떨까?

잔뜩 긴장한 채로 카메라가 아닌 나를 바라보지 않을까?


- 엄마는 처음 말 배우는 아이처럼 내가 하는 말을 한마디씩 복창했다. 맡은 역에 관한 모든 것을 소상히 알아야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다고 믿는 노장 배우처럼.... p75


어색함을 숨기는 것이 더 어색할 듯한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늘 곁에 있는 건 아닐 텐데 엄마는 항상 부르면 그곳에 계실 것 같다.


- 하모, 받쳐주는 눔 없이 저 혼자 무슨 수로 고인돌이 되것노. p141


왜 엄마가 고창으로 가자고 했을까? 궁금했다.

고창은 엄마의 남편의 아내의 고향이었다. 딸에게 엄마 소유의 땅을 물려주기 위해......

반전이다.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 듣던 딸은 카메라 너머로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이런 구도의 소설은 읽다 보면 아! 하고 감탄하게 된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장면이 나오곤 해서 그렇다.


- 가울. 나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반복해서 발음해 보았다. 가을과 겨울 사이, 또 다른 계절의 이름 같기도 했다. p153


인터뷰 중 집이 팔렸다는 전 남편의 문자를 받았다.

영어로 자신의 감정을 담지 않고 보낼 수 있었다고 하는 장면이 참 먹먹했다. 이제 완전히 끝난 사이가 된 걸까?


엄마가 덤덤하게 고창에 간 이야기를 할 때 울음을 참았다. 최안순 씨가 김순효 씨에게 감 네 개를 건네는 순간 터졌다. '이파리가 요래' 붙어 있던 그 감 네 개를 받는 김순효 씨를 상상하며.

그 감 한 개를 업혀 있던 '얼라'가 순효 씨에게 건넨다. 터벅터벅 걸어가며 그 감을 꾸역꾸역 먹는다.


살다 살다 그래 맛난 감은 처음인 기라요. 걸어가믄서 봉다리에 든 걸 다 묵어뿌릿지예. 얼라한테서 받은 거까지 몽땅.... p178


인물과 너무 가까워도, 너무 동떨어져도 안 되는 것이 휴먼 다큐 만들 때 주의점이라고 했다. 창작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인물과 너무 가까워도, 떨어져도 안 되는 거리로 글을 써야 한다. 그렇구나. 글을 쓰는 이는 철저히 숨어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최안순 씨의 어머니가 묻힌 땅을 김순효 씨에게 넘기고 그 묘를 이장하던 날, 최안순 씨는 울음을 터트린다.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는 어메의 얼굴이라면서.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게 이 장면에서였다.

자신의 남편이 이전에 결혼한 여자에게 엄마가 묻힌 땅을 팔았다. 그건 모르고 있다.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 무덤 앞에는 고인돌이 있다. 경주 엄마의 무덤이.


내 몸은 공처럼 둥글어지고 새처럼 작아졌다. 마치 물속에 들어앉은 양 나는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밀려났다. 이제는 몸 바깥에서 들어오는 그 어떤 자극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칼을 흔드는 바람, 나뭇잎이 서로의 몸을 비비는 감각, 말을 섞듯 번갈아 우짖는 새소리, 바닥에 밀착된 내 몸을 찌르는 돌멩이, 얇은 비닐 깔개에 스미는 땅의 냉기.... 그런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p228


그 고인돌을 보는 딸의 마음이 읽혔다. 이 세상에 나만 남겨진 기분.

모든 소리가 점차 줄어들고 흙 속 미생물만이 움직인다.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결국 그 움직임은 내가 움직이면 끝이 난다.


나를 낳은 사람의 것인 동시에 내 것이라고 엄마가 말한 그것.... 그건 땅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p251


이 소설은 흥미롭다. 답답하지도 않다.

슬프지만 따사롭다.

저자의 자전소설이기도 해서 더 실감 났던 것 같다.

카페에서 책을 읽다 눈물이 흘러 난감했다. 맥북 속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눈이 아픈 척했다.


살랑살랑 봄에 읽을 만한 소설로 추천.

에어컨 아래 여름에 읽을 만한 소설로 추천.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가을에 읽을 만한 소설로 추천.

따뜻하게 난로를 켜두고 고구마 까먹으며 읽을 만한 소설로 추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