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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n 06. 2019

1년 동안 왕복 4시간의 거리를 출퇴근했다

출퇴근 거리가 먼 직장인에게 일어난 변화

집은 인천, 회사는 강남에 있는 필자는 매일 왕복 4시간 거리를 출퇴근한다. 날이 좋은 날도, 날이 적당한 날도, 날이 좋지 않은 날도. 이 고행을 1년 동안 지속했다니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이제 부처가 되어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렴.


사실 필자는 어려서부터 회사는 서울에서 다니고 싶었다. 초중고, 대학까지 인천에서 나온 인천 안 개구리라 서울 상경의 꿈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았다. 진짜 그냥 마냥 좋았다. 현재 회사는 강남이지만, 이직 전에는 연남동에 있는 회사를 다녔다. 그나마 연남동은 왕복 3시간 거리였고, 한동안 백수 생활을 오래 했었기 때문에 북적북적한 지하철에 직장인들과 섞여있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인천-서울을 오가는 고행이 1년 반이 넘으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내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나의 통근시간. 출퇴근 거리가 먼 직장인에게 지난 1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뭘까.





개인 시간이 없어졌

정확히 말하면 '평일에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개인 시간이 없다.' 매일 칼퇴를 하는데도 집에 도착하면 저녁 8시가 훌쩍 넘는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집에 오면 그냥 누워있기 일쑤. 책을 읽는다던가, 운동을 한다던가 하다못해 이렇게 글이라도 쓴다던가 등의 생산적인 일을 할 수가 없다. 물론 필자가 천성적으로 거지 체력에 귀차니스트이므로 핑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리라. 퇴근 후 집에 오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일상이 그야말로 지루하다. 그나마 하는 건 넷플릭스나 왓챠 보는 건데, 이 마저도 쉽지 않다.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서 회사 가야 하니까!!!!



낮과 밤의 경계가 무뎌졌다

필자는 술을 좋아한다. 사회초년생이었을 때는 서울에서 자주 술을 먹었었다. 물론 지금도. 서울에서 술을 마시고 12시 전에 집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10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10시에 집에 간다는 것은 그냥 술을 안 먹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걸핏하면 새벽에 택시 타고 가거나 서울에 사는 후배 집에서 자고 간다거나 아예 밤을 새우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렇게 낮과 밤의 경계가 무뎌지니 돈도 돈이고, 정신도 피폐해져 갔다. 그래서 지금은 평일에는 안 먹거나 먹어도 일주일에 1번만 마시는 걸로 나와 합의했다.



실제 저장 되어있는 기사님 번호


내 전용 택시기사님이 생겼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부잣집에 기사님이 계신 것처럼 전용 택시기사님이 생겼다. 사실 전용이라 하긴 뭐하고 단골 기사님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영등포에서 친구들과 새벽에 술 마시고 택시를 잡는데, 친근하게 다가오시는 분이 계셨다. 다른 기사님들은 "인천이요"하면 거부하거나 요금을 비싸게 부르는데, 그 기사님만큼은 흔쾌히 가격 협상을 해주셨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며 자기한테 전화하면 똑같은 가격에 인천까지 가준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실로 영업을 잘하는 분이셨다. 이후에는 기사님 덕분에 편하게 집에 들어갔다. 요즘은 착실히 집에 들어가고 있어서 못 뵌 지 꽤 됐다. 조만간 전화드릴게요.



살이 10kg 가까이 쪘다

저녁 먹는 시간이 일정치 않고, 먹어도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다 보니 1년 동안 살이 오를 대로 올랐다. 원래도 통통했는데 지금은 퉁퉁해졌다. 힘들다고 운동도 안 하니 몸이 난리가 다. 사실 회사 주변 헬스장을 다녔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2~3번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었는데, 모두가 그렇듯 한 달만 가고 이후에는 거짓말처럼 가지 않았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운동을 시작해보려 한다.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도록 이번에는 헬스 트레이너에게 PT를 받아볼까.



자연이 좋아졌다

사람들이 시간 날 때마다 산으로 바다로 여행 가는 이유를 드디어 깨달았다. 나름 이제 서울쥐가 됐다고 도시 생활이 지치기 시작했다. 빽빽한 빌딩 도로, 무채색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꽉 막힌 변기처럼 내 마음도 답답해져 갔다. 뚫어뻥으로 뻥 시원하게 가슴을 뚫고 싶어 지는 욕구를 여행으로 해소하려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 많던 대학생 때는 여행을 손에 꼽게 갔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 올해만 벌써 여행을 3번 다녀왔다. 다 국내이긴 하지만.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보고 있으면 숨이 탁 트이고, 정신이 맑아진다. 직장인들이 나중에 귀농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에 어느새 나도 동참하게 다.



길고 긴 버스 줄을 보며 드는 생각


그렇게 힘들면 자취하지 왜?


당연히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다. 지금도 매일 자취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그렇지만 서울 집값이 그냥 집값인가, 금값 아닌가. 서울의 비싼 월세를 충당하기 겁이 난다. 그리고 자취를 한다고 해도 삶의 질이 그닥 올라갈 것 같지 않다. 지금은 거리 때문에 힘들지만 독립하면 돈 때문에 힘들어질게 뻔하기 때문. 필자는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계산기 돌리는 스타일이 아니므로 통장에 분명 구멍이 날 것이다. 차라리 내 통장이 무제한으로 돈이 나오는 화수분이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모를까.


그리고 오기가 생겼다. 간생간사(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다), 노빠꾸(No Back)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필자는 어째 쉬운 길을 택하는 게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의 경쟁도 아닌, 자존심의 문제도 아니지만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보겠다는 오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흠... 그냥 힘들어서 미쳐가는 것 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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