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의 발달에 대하여: 변성하고 마법을 부리기까지
무기의 발달사를 대충 슥슥 그린다면, 신체의 근력에 의존하는 단계(타격, 조르기, 당기기 등), 여기에 원심력을 응용한 단계(돌팔매), 탄성을 이용하는 단계(활)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다른 신체, 다른 몸, 다른 덩어리의 다른 힘과 성질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똑같은 근력/원심력/탄성 이용이라 하더라도 맨손보다는 돌덩이, 청동, 철을 쓰는 게, 그냥 마구잡이 형태보다는 둥글거나, 길거나, 뭉툭하거나, 울퉁불퉁하거나, 날카롭거나 등 형태를 변형하는 것이 더해집니다. 근력 > 원심력 > 탄성의 단계에 ‘다른 소재’가 더해지고, ‘형태 변형’이 더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지막에는 ‘화약’을 쓰기 시작하면서 냉병기의 시대를 마감하고 열병기의 시대로 넘어갔고, 그게 끝인 줄 알았더니 하나의 특이점으로서 핵무기가 등장했고, 거기다가 이를 실어나르는 ‘다른 몸’, 다른 프로그램이 등장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등장하여 쓰이는 현실입니다.
전쟁사나 무기의 발달사를 논하는 게 목적은 아니고, 이런 것이 물질세계의 무기라면 우린 정신의 무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의 무기는 결국 ‘언어’인데, 매체와 해독하는 감각에 따라 다양한 언어가 전개되지만 언어 중의 언어는 물론 ‘언어’입니다. 말과 글.
말과 글의 발달 또한 다른 이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데 더 효과적이도록 발달하였는데 물리적 무기와 정신적 무기의 발달 기제는 어딘가 좀 닮았습니다. 말과 글도 무기처럼 상대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감동을 주든 격앙케 하든 아무튼 세게 타격을 줄 수도 있고, 불안이나 안심 등 부드럽게 그러나 깊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그 말을 합니다. 근력에 의존하듯이. 다음에는 반복하여 강화합니다. 심지어 이야기꾼의 이야기도 음유시인들이 그리한 것처럼 상투구를 반복하고 리듬을 부여하였습니다. 마치 원심력을 일으켜 그 덕을 입는 것처럼요. 그다음에 탄성을 활용하는 단계는 특별한 단어를 특별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탄성이 큰 말들은 어떻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누가 어찌어찌 마음대로 조작해서 만드는 게 아닙니다. 개인이 그 말을 사전적 의미로서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정신 세계 안에서 그게 어떤 변성을 겪었느냐와 상관합니다. 그리고 이 변성은 한 사람치의 언어 사용으로 어림도 없고, 대중의 말글살이가 집중하거나 누대에 걸쳐 의미를 다지고 겹쳐서 일어납니다.
간혹 핵분열과 핵융합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런 작가들도 있고, 시인들은 종종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게 꼭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다면 그들이 제일 잘합니다. 발견을 다한 자들이 뜻대로 바꾸는 거죠. 그밖의 변화 — 시인이 아닌 자들이 벌이는 변성 — 는 우연이고 사고이겠죠.
그대가 쓰는 말, 그대의 말글살이는 어느 만큼의 근력을 지녔는가요?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놓치거나 중심을 잃지 않고 회전하여 원심력을 쓸 수 있나요? 원하는 바로 그때 그 방향으로 놓아 던질 수 있나요? 사랑한다고 하건 미안하다고 하건, 안심하라고 하건 당신의 말은 어느 만큼의 힘을 갖고, 어느 만큼 떨어져서도 힘을 발휘하나요? 어느 만큼 시야에서 벗어나고, 어느 만큼 시간이 흘러도 말입니다. 어떤 말들은 죽은 자의 말이어도 필요할 때 생각나고, 생각나면 온몸이 뜨거워지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이제 탄성. 그대는 어떻게 탄성을 높이고, 그 높은 탄성의 위험과 가치를 이해하고 다스리시는지요?
삼국지 속 익덕 장비가 장판교에 홀로 버티고 서서 대갈일성하여 조조 군대의 장수 하후결이 놀라 떨어지고 그 군대는 건너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번 시간으로 다리를 끊고 달아날 수 있었지요. 유비와 그의 아들, 아들을 구해 온 조자룡까지 모두 구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의 말은 스토킹으로 공포를 주고, 가스라이팅이어서 누군가를 무기력하게 합니다. 불화를 만들고 정상적인 관계 맺을 줄을 배우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친구를 모두 떠나보내기도 합니다.
괜찮습니다. 실패는 이해하면 성공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전에는 불가능했던 성공에 꼭 필요한 양분을 주는 밑거름입니다. 그렇게 한 번 썩어나야, 그 시간을 겪어야 비로소 수확이 가능했던 겁니다. 다만, 그냥 버리지 않고 제대로 삭혔을 때, 현명하게 썩는 것, 발효시키는 것, 놓치거나 잊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언어의 발효를 만듭니다. 탄성을 높이고 다스릴 뿐 아니라, 전에 같던 그것이 이제는 전혀 다른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그래서 한 단어 뒤에 붙인 접미사 ‘만’이 우리 가슴을 ‘쿵’ 떨어뜨리기도 하고, 훨훨 날게도 합니다.
포기하는 대신 응시하고, 발견하여, 이 직관적 이해를 통해 아무것도 잃지 않고 다 쓰기를 바랍니다. 잘라서 쓰는 자들, 해부(解剖)하는 자들이 얻지 못하는 발견자의 기쁨, 통째로 살려 ‘변성’하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그대가 하는 일이 마치 ‘마법’ 같을 겁니다.
아서 C. 클라크 경(Sir Arthur Charles Clarke, CBE, 1917년 12월 16일~2008년 3월 19일)이 발달한 과학은 마치 마법과 같다고 한 말*은 사실입니다.
休
*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