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술
생각하는 데 기술(技術)이 있을까요?
테크닉(technic) 말고 에리히 프롬이 자기 저서에 쓴 것처럼 아~트(art)라고 합시다.
사유의 방식이라고 말할 때, 한편으로는 그 양식(樣式, style)을 가리킬 수 있지만
다른 한편 기술을 뜻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이게 성립하는가.
어떤 면에서 금요일마다 드린 글은 사고법에 대한 글이어서
사고방식 나아가 사고의 기술에 대해, 사유의 기술에 대해 이미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새삼 이렇게 말하는 건 우습고 안 어울리는 일일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한 번 짚어 봅시다.
이걸 짚어 보려는 까닭은
마치 시장을 형성한 듯 범람하는 숱한 ‘콘텐츠’들이 어느 사유방법이 맞다고
지나치게 단순하게/무식하게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역사 속에서, 학문 연구가 뒷받침해 주는 사고법들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파편화됐고
그 말과 글 들이 단순히 진술하고 소개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수용자 편에서
강제로 개방하고 받아들이게끔, 한편 유혹하고 한편 협박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힘듭니다.
그게 정말 의도했든 안 했든 질서를 더하고 점점 사고력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생각이 더 산만하고, 적절한 방법을 못 찾고 헤매게 이끄는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방법, 생각하는 기술이란 게 대체 무언지 그것 자체부터 짚어 두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말하자면 저울의 영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무언가를 익힌다는 것이
그것만 할 줄 알고 다른 건 못하게 되는 걸 뜻할 수 있습니다.
그게 맞지 않는데도 자꾸 그것만 쓰려다가 낭패를 보게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만
본론은 짧습니다.
생각하는 법, 사고의 기술이란 건
‘조건’을 부과하는 것입니다.
조건을 부과하되
능력을 발생시키고 증진하는 쪽으로 작동하면 쓸 만한 거고
그렇지 못하면 적어도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거기서는 쓸모가 없는 겁니다.
조건을 부과한다고 말하였지만 조금 다르게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겠습니다.
무언가에 그 조건을 부과한다라기보다
무언가를 그 조건 속으로 옮겨 놓는다는 게 더 정확한 기술(記述)일 터라 말입니다.
조건화-한다.
이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다만, 그냥 던지면 무슨 말인지 언뜻 상상하기 어려울 거라 여겨 순서를 바꾸어
조건을 부과한다, 그런데 거꾸로다 하며 이야기를 이끌었습니다.
어떤 것을 조건화하는 특정한 방식, 조건화하는 내용과 형식이 곧 사고의 기술이며
무언가를 이 조건에 맞추어 변형하는 그만큼이 사고의 힘입니다.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을 짜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든
인류학적 탐구를 할 때든
과학 실험을 구상하거나 사회 실험을 할 때든
혼자서 사고 실험을 하거나
행동하기 앞서 멘탈 리허설을 할 때나
면접 준비를 할 때에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 무언가를 바꾸어 거기 집어 넣고[대입(代入)]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험[simulation]해 봅니다.
그게 더 정교하고 정확하고 좀 더 일반적일 때
그게 사고 방식, 사고의 기술이 됩니다.
비판적 사고라거나 과학적, 실증적 사고 같은 것이 여기 해당할 것이고
이것들은 모두 어떠한 ‘논리적’ 사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다음 금요일엔 이 ‘논리’에 대해서도 짚어보아야겠군요.
안다는 게 혼란을 멈추고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고
동시에 정체된 것에 운동과 변화, 힘을 주는 일이기를 바랍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