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달빛독서

지도를 드릴게요 ―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by 이제월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김보영·박상준·심완선, 돌베개, 2019)는 과학소설(SF)의 역사를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을 통해 한눈에 조망하는 교양서이자 안내서입니다.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와 평론가들이 힘을 모아, SF라는 장르가 어떤 상상력과 사유를 통해 형성되고 확장되어 왔는지를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설명합니다.

저에게는 최애 작가 중 한 분인 김보영 작가가 필진으로 참여했고, 청소년기에 SF 장르에 열광하고 소설가로서의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입문하게 했던 작품 『파운데이션』을 번역했던 박상준 저자가 필진이라는 것만으로도 책을 집어들고 신뢰하기 충분했지만, 지금은 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저자들을 모르는 이는 어떻게 소개받으면 좋을까를 생각하며 써 보겠습니다.


세 가지 특징을 집어 볼게요.


첫 번째 특징, SF라는 장르의 계보를 보여 주는 안내서


이 책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출발하여 현대 SF 작가 테드 창, 중국 SF의 대표작 류츠신의 『삼체』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에 걸친 SF 문학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저자들은 주요 작가와 작품을 통해 SF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상상력을 발전시켜 왔는지 설명하며, SF를 하나의 “문학적 계보”로 보여 줍니다.


특히 이 책은 단순한 작품 소개가 아니라

SF가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는지

특정 작품이 이후의 장르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과학·사회·철학적 사유가 어떻게 문학 속에서 결합되었는지

를 함께 해설합니다.



두 번째 특징, 다섯 단계로 보는 SF의 발전


책은 SF의 역사를 몇 가지 중요한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흐름입니다.

첫째 단계, 장르의 탄생

메리 셸리, 쥘 베른 등 초기 작가들을 통해 과학적 상상력이 문학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둘째 단계, 장르의 성숙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같은 작가들이 등장해 현대 SF의 규칙과 세계관을 확립합니다.

셋째 단계, 사회적 상상력의 확장

조지 오웰, 필립 K. 딕 등은 기술뿐 아니라 정치·사회 문제를 SF로 탐구합니다.

넷째 단계,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확장

영화, 만화, 슈퍼히어로 서사 등 SF적 상상력이 다양한 문화 장르로 확장됩니다.

다섯째 단계, 동시대 SF의 지평

테드 창, 류츠신 등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인공지능, 우주, 문명 등의 문제를 통해 SF를 새롭게 갱신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작가 50여 명과 주요 작품들을 중심으로 SF 문학의 연대기를 구성합니다.



세 번째 특징, “미래를 예측하는 문학”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


저자들은 SF를 단순한 공상이나 미래 예측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SF는 과학기술과 사회 변화를 사유하는 문학이며, 상상력이 현실의 변화를 자극해 왔다고 강조합니다.

즉, SF는 미래를 맞히는 문학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문학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SF를

과학과 문학의 만남

기술과 윤리의 질문

인간과 문명의 미래를 탐색하는 사유

로 읽도록 안내합니다.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는 특별히 한국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였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김초엽, 정세랑, 배명훈 등 SF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더는 비주류 문학이 아니라 주류 작가가 진지하게 접근하고 창작하는 영역이 되고, SF가 대중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들이 장르의 역사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지닙니다.


따라서 이 책은

SF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입문 지도(地圖, map)가 되고

이미 읽어 온 팬들에게는 장르의 계보를 정리하는 참고서로 삼을 만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는 한 편의 SF 소설이 아니라, SF 문학의 역사와 상상력을 여행하는 지도입니다. 메리 셸리에서 현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인간이 과학과 미래를 어떻게 상상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교양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서는 이른바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공부보다도 더 인간의 뇌를 자극하고 발달시켜 준다고 합니다. 스스로 연결선을 찾아 만들며 전뇌(全腦)를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모든 독서가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굳이 효용이 큰 장르를 꼽는다면 SF라고 확신합니다.

SF의 독자는 더 유연하고 활발하게 미래를 상상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지적 동기와 활력을 지닌다고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치 앞을 모르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이 국제 정세와 지구 단위의 기후 위기를 헤쳐 나가기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미래를 알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미래를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미래를 만드는 상상력을 고수들로부터 배워 보면 어떨까요? 그것도 그냥 즐기면 어느새 성장하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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