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문제 — 성찬경 시인의 밀핵시론을 소개하며
‘김씨는 돼지다’ 하는 말은 은유는 은유지만, 은유의 조건을 간신히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어서 그리 신선한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이나 돼지나 같은 포유동물로서 개념상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이 쏜 살처럼 간다’ 하면 이 표현은 김씨 운운의 경우보다는 다소 묘미가 있다. [시간 = 쏜 살]에서 [A]와 [B]에 약간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이 쏜 로켓처럼 간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은유가 일상적인 관용구가 되기 위해서는 은유의 한 쪽 항목이 되는 사물과 친숙해지는 기간이 필요한데, ‘화살’과는 그만큼 친숙해져 있지만 ‘로켓’은 생긴 지가 얼마 안돼서 우리와 아직 덜 친숙한 것이다. 그리고 로켓은 시간에 대한 은유의 한 쪽 항목이 속도가 너무 빠르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으오.’ 하면 표현에 신선도가 있으며, 이만하면 이 말은 시다. [마음 = 호수]의 연결에서 둘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은유에서 [A]와 [B]의 개념상의 거리가 멀면서도 그 사이에 유기적인 통일성이 유지되면 그 거리의 정도에 따라 은유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러나 그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지면 그 은유는 과중한 거리의 부담을 견디지 못해서 자폭하고 만다.
이제 은유에서 [A]와 [B]의 거리의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할까 한다. 시에 나오는 은유에서 [A]와 [B]의 거리가 멀면서도 거기에 의미상의 통일성이 있다면 그럴수록 그 시는 깊이가 있고 위대한 시이며 그러한 시를 쓰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이다. 예를 하나 들겠다.
천국은 겨자씨와 같다.
여기에서 우리가 아직 가보지도 못한, 그러나 어딘가에는 있을 그 미지의 ‘천국’과 ‘겨자씨’와의 거리는 무한대라고 밖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서로 무한대로 떨어져있는 이 두 항목이 연결되어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국과 관련되는 새로운 뜻이 살아서 피어오른다. ‘천국’은 설명이 아닌 은유의 방식으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다. 사실 예수그리스도는 시인으로서도 비길 바 없이 위대한 존재이지만 예수의 이러한 면이 구세주로서의 그의 모습에 많이 가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기 인용한 이런 시구가 바로 내가 꿈에 그리는 밀핵시의 보기 드문 보기이기도 하다.
— 성찬경, 『밀핵시론』(조선문학문학총서 15), 조선문학사, 2014, 75-76쪽.
성찬경 (成贊慶, 1930–2013) 시인이 펼치는 밀핵시론은 당대(1960~70년대) 유행한 참여시론이나 언어실험과 거리를 두고 시의 본질을 “겉으로 드러난 언어 바깥에 숨어 있는 핵심적 의미의 응축된 중심”으로 이해하는 이론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시에는 표면 언어 뒤에 ‘밀봉된 핵(core)’이 있으며, 좋은 시는 그 핵을 중심으로 조직된다는 관점인데, ‘시의 의미가 암시되어야 한다’는 말라르메나 발레리 같은 상징주의 시학의 관점을 닮기도 했고, 에즈라 파운드나 T. S. 엘리엇의 이미지즘과 같은 이미지 중심 시학으로서 엘리엇이 말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의 구조를 떠올려 주기도 합니다. 또한 동양 수묵화의 여백의 미나 한시(漢詩)의 기운생동(氣運生動), 암시적 표현이라는 특징들로부터 동양적 ‘핵’ ‘기운’ ‘여백’ 개념과 이어져 있습니다.
시인이 절대시라고도 부른 일자시(一字詩)가 아니라도 시인이 추구한 밀핵시론은 스스로의 창작을 통해 실천되었습니다. 체험의 핵을 발견하고, 핵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며, 독자가 스스로 그 핵을 발견하게 이끄는 것이지요. 그에게서 밀핵은 ‘시의 중심 에너지'로서 주제와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시의 의미나 감정이 집중되어 있는 중심점으로서 시 전체가 이 중심점을 향해 조직되어야 합니다—조직됩니다. 또한 밀핵은 직접 설명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시 속에 명시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채 언어의 표면 아래 압축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밀핵은 독자가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독자는 시를 읽으며 이미지·리듬·언어 사이의 긴장을 통해 밀핵을 감지하지요. 즉, 시의 의미는 표면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들이 둘러싸고 있는 ‘숨겨진 중심’에 있다는 것이지요.
성찬경의 밀핵시론은 시인이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채 작고하시어 미완성인 채 남겨졌지만, 시인의 평생에 걸친 부단한 노력 덕분에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 구조를 묘사하자면, 다음 세 개 정도의 명제로 압축,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는 핵을 중심으로 한 구조다.
밀핵은 언어 이전의 경험이다.
시는 설명이 아니라 암시다.
시가 핵을 중심으로 한 구조라는 말은, 좋은 시는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핵 → 주변 언어 → 이미지 → 리듬’의 구조로 조직된다는 뜻입니다. 밀핵 중심으로 이미지와 상징, 언어와 리듬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도식을 그려볼 수 있을 겁니다. 시의 모든 요소가 하나의 밀핵을 중심으로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지요.
밀핵이 언어 이전의 경험이라는 말은 밀핵은 단순한 주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것은 감각이요, 체험이며, 존재의 충격이고, 사유의 응결 같은 ‘언어 이전의 경험’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경험을—>응축하고—>상징화하여—>언어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 시를 짓습니다.
시는 설명이 아니라 암시라는 말은, 사건을 던지고 의미를 설명하는 설명적 시에 [적절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대항하여 이미지로 긴장을 유발하고 이로부터 의미를 발생시키는, 의미는 독자의 해석 과정에서 비로소 발생[해야]하는 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결국 시인이 추구한 밀핵시론은 <시의 의미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하는 물음에 구조적으로, 미학적으로 대답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인이 이 문제를 논구하는 가운데 시가 어떻게 긴장을 일으키고, 이미지로부터 독자의 해석 과정 곧 의미 발생 과정을 추동하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그 세부사항 중 하나로 두 이미지 ‘사이의 거리’를 논하는 단락을 옮겨 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시인이 충분히 해석한바 제가 다시 풀이하여 혼동을 주느니 이대로 읽고 이대로 이해하실 것을 주문합니다.
다음에는 직접 성찬경 시인의 시 구절과, 다른 시인의 시 구절로부터 밀핵시론을 적용하는 예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다만 지금은 장염에서 덜 회복되어 더 이으려다 맺지 못한 채 글을 올리지 못하는 불상사를 피하고자 부족한 대로 멈추고 나누겠습니다.
休
*객관적 상관물은 원래 엘리엇(T. S. Eliot)이 정의한 개념으로 특히, 그의 비평 비평 「Hamlet and His Problems」(1919) 속 다음 문장에서 제시된 개념입니다.
“The only way of expressing emotion in the form of art is by finding an ‘objective correlative’; in other words, a set of objects, a situation, a chain of events which shall be the formula of that particular emotion.”
이 문장의 요지는 ‘예술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어떤 감정에 대응하는 객관적 사물·상황·사건의 배열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감정은 직접 말하지 않고, 사물과 상황을 제시하여, 독자에게 감정 체험을 일으키는 것을 가리켜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부른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