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질서, 진공을 견디어

질서, 진공을 견디어

by 이제월

내재(內在)하는 중심(中心)은 초월(超越)한다.

이로써 만유(萬有)가 평등(平等)해진다.

중심과의 거리(距離)는 모두 같다.

모두가 똑같이 세상(世上)을 바꾼다.



두 개의 올바른 순서.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먼저 처음은 인(in). 안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출발/시작할 수 없으므로.

첫 번째 올바른 순서.

인(in, 안에서)―쿰(cum, 함께)―페르(per, 통하여). 중심이 존재할 때 옳다.

두 번째 올바른 순서.

인(in, 안에서)―페르(per, 통하여)―쿰(cum, 함께). 중심이 존재하지 않을 때,

또는 중심이 가려진 때.


첫 번째 순서는 계시(啓示)된 상태를 말한다. 그때에 우리는 직접 보고 걷는다.

두 번째 순서는 봉인(封印)된 상태를 보여 준다. 그때에 우리는 메아리를 듣고 더듬어 간다.

전자에서는 자유가 질서다.

후자에서는 내부 위계가 행동을 규약하고 사고를 판단한다. 창구가 중앙집중, 서열화한다. 피할 수 없을 뿐이다.

전자에서는 반대로 내부 위계가 붕괴되고 자꾸

새로운 질서가 요청된다.

개인과 사건은 매번 최초의 것으로 다시 조명된다. 변론하고 평가된다.

군림은 불가하고, 저마다 내적 권위가 자율에서 비롯하는 공동의 질서를 시시각각 생성(生成)한다. 파도처럼 일어서고 넘어질 뿐, 단단한 뭍, 기반(基盤)은 바랄 수 없다.

전자, 계시된 우주에서 창조가 일어났고

후자의 침묵, 이 거룩한 불만의 상태를 거쳐

다시 말하고, 전자의 상태로 창조가 계속된다. 창조의 목소리가 울린다.


봉인된 상태에서 군림과 억압은 질서를 찾거나 시도하는 걸

배제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자유와 자유주의는 다르다.

계시된, 열린, 생성하는 우주에서 어떤 ‘주의’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후자에서는

자유조차 ‘주의’가 되어 다른 전부를 억압하고 배제한다.

자주 그렇고, 애써 버텨도 결국은 그렇다.


홀리지 말 것.

중심을 보지 못할 때

차라리 반드시

진공(眞空)을 견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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