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구분

구분. 공사를 구분하듯.

by 이제월

내 눈앞의 한 사람은 내 순간의 실천을 결정한다. 기꺼이.


내 인생의 수행은 눈 밖의 많은 이,

결코 보이지 않는, 오지 않은 사람들까지 보고서야

결정한다, 마땅히.


이를 혼동하면 우리는 평등심을 품은 것이 아니라

시비심을 잃은 채 기계적으로 눈앞의 것에만 대응하며

같은 상황을 재생산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개입이 매우 긍정적일 때조차 그것은

나를 소모한 것으로서

공유할 수도 전파할 수도 계승할 수도 개선할 수도 없는 채로

생물학적 내가 종료됨과 동시에

사라지고, 대개의 투입이 그렇듯 이런 식으로 소멸되면

그토록 정성과 기력을 쏟은 일은, 사람은

최초의 개입 시점보다 더 퇴보하고 나빠지고,

다시 새로운 개입을 향해 좀체 개방하지 않는 불신과 회의에 빠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기꺼이

예기치 않은 것, 완전치 않은 것에 개방하고 내 판단과 욕망을 내려놓으며

응답할 수 있다, 맞추어 출 수 있다, 아름답게.


우리는 마땅히

틀렸을 때의 수치와 비난, 때로는 배척과 탈락을 감내하고서라도

책임을 느끼며, 책임을 지려 나서

최선을 다해 예측하고, 예비하고, 설계하고, 안내하고, 뜻을 높이고 나누어

미리 응답하여야 한다. 초대하여야 한다. 아름답게.


과거를 버리고 현재에 충실한 나는 이제,

미래를 끌어당겨 현재를 변형할 때 우리다.


공사를 구분한다는 건

우리가 경험에 정직하고 겸허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경험주의에도, 숭배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때 내 행동과 내 고민은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된다.

나는-우리-로서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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