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불안이라는 파도 타기

불안이라는 파도 타기

by 이제월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를 꿰뚫어 <모두스 비벤디>라고 말하였다.

모두스 비벤디는 유동하는 삶의 방식과 태도이자, 생생한 삶의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리처드 로티는 <우연성∙아이러니∙연대성>으로

확실성을 좇고, 필연을 참구하며, 정의를 규정해 시비를 가리려던 근대의 이상을 부정하였다.


이들은 불확실성과 불안을 나쁜 것으로 보지 않고

문제로 바라보는 대신

그저 마주친 것, 가장 최근에 마주 바라보고 있으며

이전의 모든 발전들로부터 퇴행하거나 붕괴한 것이 아니라

이 모두의 결실이자, 첨단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이전 것들에 대한 지금 이 순간의 응답이고, 해결이며


다시 새로운 응답을 요구할 뿐이다.


불안은 나쁜 것인가?


그리스도교 신학과 수도 전통은 '복음적 불안정성'을

진리와 구원의 본질로 간파하고

도리어 이 불안정성을 추구한다.

안정에 드는 모든 것을 벗고, 벗어나려 한다.


사실 부처 이래 승가단의 방식이 그러하고

사막 종교(유태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들의 공통 비조라 할 아브라함 자신이

아브람이던 때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갖추어진' 곳(우르)으로부터 달아나듯 떠나

불안정성을 추구하고 살았던 사람이다.

어쩌면 그 불안정성이

처음에는 깃털처럼 작지만

이를 믿고 추구할 때

새와

새들이 나는 하늘을 만나게 해 주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다.


불안한 미래에

어른도 아이도

자신과 모두를

조금이라도 더

단단한 반석에

올려두려 한다.

그런데 맞는가?


해수면은 높아졌고

우리 발이, 우리 땅이

이미 바다에 잠긴다면

항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모험이지만 가장 나은 모험이다.

반대로 안정을 추구하는 건

무너지는 성에, 잠기는 섬에

자신을 가두는 일이다.


파도를 타자.

항해를 하자.

<모아나>의 모아나처럼.


불안은 어떤 이유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을 이유가 아니다.

불안은 도리어

우리의 방법이고

우리의 살아갈 방식이고

우리가 희망하고

기쁨을 누릴 파도다.


남의 파도 말고

우리의 파도를 타자.

어서, 올라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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