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를 상대하라
자기 계발서나 경영, 심리학, 학습방법 등 사람들이 흔히
필요하다고 여기고 부족하다고 여기는 분야의
서적, 강연 들을 접하면 맞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그 많은 걸 실행하고 고칠 생각을 하면 그만 주눅 들고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리기 십상(十常)이다.
사실 하나만 생각하면 그만이다.
눈앞의 상대를 생각하지 마라.
그 다의성(多意性, equvocity) 앞에서 우리가 느낄 건 애매한(equivocal) 것뿐이다.
신호를 보고도 상대에게 건너갈 수 없다.
이래서야 우리가 “…은 처음이라” 같은 말뿐 달리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건너가기 위해서는 유비(類比, anologie)가 요청된다.
그런데 이 또한 갈고 닦을 게 많다.
다의라는 단절과 거부,
유비라는 세련된 근사한 홍예 다리[an arch(ed) bridge] 말고,
이런 하이-테크 말고
로우-테크는 없을까?
적정 기술이 정말 없을까?
어떤 이에게는 너무 아무것도 아니고
어떤 이에게는 모호성을 극대화할 뿐이라 버림받는,
방법, 방식으로서의 바리데기가 있다.
일의성.
존재의 일의성(一義性, univocity of being, univocite)은
중세에 둔스 스코투스가 모교요 교수로 일했던 옥스포드에서 ‘스코투스와 스코투스적인 모든 것의 화형식’을 경험하게 했고
파리대학을 거쳐 [도망친] 끝에는 쾰른에서 잠들게 한 ‘위험한’ 사상이며,
많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또한
[이전 방식, 이를테면 성 토마스에 매혹되고 추종한 이들에게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 것으로 보였던 전부의 핵심이다.
20세기에는 질 들뢰즈가 이를 재발견해 할 수 있는 한 넓게 밀어붙였다.
이 거창하고 난해한 또는 정묘한 이야기를
실천 과제로 볼 때, 실천 방식, 삶의 방식으로 바라보면
도리어 무척 단순해진다.
나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건
아무런 방해 없이
어떤 제한도 없이
“하느님 오직 하느님”만 상대하면 된다.
내 앞에는 그 절대(絶對), 상대성을 끊어 버리는 절대의 존재만 있다.
나와 끊어지지 않는 유일한 상대,
구분할 수 없는 유일한 상대,
그러나 닿지 않은 듯한 유일한 상대,
사라진 나와 있었을 수도 있었을 나와
장차 있을 수 있는 모든 자의 총합인 절대인 ‘너’가
하느님이다.*
존재의 복잡다단함과 생활함을 생각할 때
우리가 거기서 유비를 보건 다의성을 보건 모두 일면 타당하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일맥상통하게 하는 것은
존재의 일의성이다.
이게 다 주욱 하나다,라는 것.
켄 윌버(Ken Wilber) 식으로 표현하자면
신이란, 사회적 신(sociable God)뿐이다.
그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로서 현현한다.
혹은 우리가 사회 안에서 인식한다.
나는 재수없고, 염치없고, 무도한 ‘너’를 상대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너에게, 너의 그런 행동과 품성 때문에 맞대응한다고 하는 것들은
실은 전부
이 세상에 하는 짓이며, 하느님에게 하는 짓이다.
아닐 도리가 없다.
갑에게 한 일이 을에게 한 일이 아닐 수는 있으나
갑에게 하든 을에게 하든 그것이 세상에 한 일이고, 하느님에게 한 일이 아닐 수는 없다.
곤란하다.
하지만 잘됐다.
다 해결됐다.
어떤 부분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체 사실은 명백하니까
나는 전체를 상대하면 그만이다.
나는 이 세상에 어떤 존재인가?
나는 신 앞에 어떤 자인가?
그 나를 드러내면 그만이다.
그러한 나로서 행동할 뿐
다른 건 고려할 게 없다.
‘바르다’는 건 이런 거다, ‘올바르기’는 제일 쉽다.
남탓할 거 없고
남이 내 삶에 개입한 것도 없다.
개입했다면 내가 수용한 거다, 더욱 자주 내가 초대한 거다.
나는 ‘저 위’를 상대한다.
저 위에서 보고 알아차릴 때까지 두드린다.
계속해서 그렇게만 행동한다.
내가 이 진창이 싫다면 진창에 어울리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내가 어둑하고 눅진한 게 싫으면 밝고 명랑하고 진실하고 진중하면 된다.
나는 오직 진실만 상대하고, 열린 하늘 아래 있다.
열린 하늘 아래 있는 내게
하늘로부터 숨은 행동은 없다.
그러하므로
나는 나다.
눈앞에 현혹되지 말고
눈을 떠도 감아도 변치 않는 거리를 유지하라. 거리를 잡아라.
저 너머.
저 위를 상대하라.
저 위와 어울려라.
그밖의 것은 다 헛짓, 흐트러진다.
*다윗의 찬가를 떠올려 보기: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에 악한 짓을 제가 하였기에…”(시편 51편 6절. 70인역 헬라어 시편 50편**)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죄를 얻었삽고
당신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최민순 역 시편 50편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