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 묵상
사부와 함께 |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 묵상
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
오,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
제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어 주소서.
주님, 당신의 거룩하고 참된 명(命)을 실천할 수 있도록
올바른 믿음과 확실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감각과 깨달음을 주소서. 아멘.
✣ 묵상 ✣
십자가 앞에서
나는 기도한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 없는 때에도
실제로 눈길 닿는 어디에도 그 형상이 없을 때에도
하늘과 땅을 긋고
땅 끝에서 땅 끝까지 긋고
생각과 마음이 허둥대거나 얼어붙는 곳, 텅 비고 메마른 데를 가로지르며
상처가 나고 데어도
그어 십자(十字)를 만든다.
십자를 긋는다는 건 교차(交叉)하고 부닥치는 일이다.
피하던 것들을 돌이켜 마주하는 일이다.
쓰디쓴 그것이 단맛이 될 때까지(→유언 3) 긋고, 긋고, 긋는다.
어쩌면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도무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때에도.
십자가(十字架)를 지는 것은 결심할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은총(恩寵)으로서만 가능하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알기 때문도, 믿음이 올바라서도, 희망이 확실해서도 아니다.
더더구나 사랑이 완전해서도 아니다.
어떤 감각도 깨달음도 없는 채로.
한 가지 틀림없는 사실에 기대어 기도한다.
내 마음은 어둡다.
비추어질 어둠을 지녔으므로
어둠을 드리우는 주름을 지녔으므로, 또한 아마도 깊으므로.
— 왜냐하면 나는 번민하고, 틀리고, 어긋나니까. 불완전하니까.
이 틀림없는 사실에 기대어
나를 발목 잡고 옥죄는 것이 분명한 이 어둠 때문에
— 그것은 죄일까, 악일까, 벌일까.
오, 제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어 주소서.
세상이 잘못됐을까?
저 사람이 그릇되었을까?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렇다고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사부는 맨처음 산 다미아노 성당을 고쳤다.
기울어 가는 당신 교회를 고치라 하신 하느님께서
고치라 하신 것이 한 성당이 아니고
어머니 교회가 맞다 하더라도
출발은 여기, 무너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를 어쩌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개를 들어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그이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나도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풀리지 않는 많은 것들, 내 힘으로 달리는 일들에
그러나 하지 않는 대신에 한다,
기도
한다.
다만 반드시, 십자가 앞에서.
休
*프란치스코의 글 출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엮음, 『아씨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글』, 프란치스코출판사 펴냄, 2014년, 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