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라
깊게 숨 쉬어
초록 숲속에 있다고 생각해.
운명을 거슬렀다고
그래선 안 됐다는 친구에게 말한다.
만에 하나 그가 움직이면
손 쓸 수 없게 멀기 때문에
나의 말은 육체여야 한다.
울고 싶지만
울고 싶지만 안 되고
역시 살아선 안 된다는 친구에게
손을 뻗는다.
내 글이 지향하지만
모든 글이 꿈꾸지만
준비되지 않고
확신할 수 없는 글을
믿고 올라타야 한다.
지금 탈 것은, 아니
처음부터 탈 것은
이거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이야기-한다.
살아갈 운명
태어나는 건 이중의 초대야
넌 살 거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때가 되면 저절로 마지막 숨을 뱉아
다만 그때부터는 너 아닌 다른 이들이
네 숨을 이어갈 거야
지금 너의 숨이 부족한 건
너 또한 다른 이들을
이어서
그들 것까지 숨 쉬어야 하는데
그걸 다 받지 못해서야
찾아 나서
페소아를 숨 쉬고
백석을 숨 쉬고
오웰을 숨 쉬고
카잔차키스를 숨 쉬고
만해를 숨 쉬고
소월을 숨 쉬고
이응노를 숨 쉬어
그러면 점점 숨이 안정되고
시원해질 거야
어떤 한 사람도
스스로는 완전하지도 온전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으로는
자신이 될 수 없어
타인을 살지 않고
온전히 살 수 없어
타인을 산다는 건
자기가 되지 마라는 게 아니라
작은 나 대신
큰 나를 살라는 거야
내 몸 아닌 것들을 먹어서
내 몸을 이루고
나를 살듯이
생명은 경계를 넘는 거야
무생물은 그저 가만 있지만
변하지 않지만
생명은 타자를 자기로 바꾸며
자기를 타자로 영위하면서
꼭 그렇게만 자신이고
살아 있고
살아가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생명은 자기 그림자만 보게 되고
마침내 그림자에 먹혀
그걸 우울이라고 하고
키에르케고어는 이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을 알았지
하지만 기꺼이 남을 들이쉬고
기꺼이 나를 내쉬면
삶은 기쁨이야
감각이 온 세상에 미치고
모든 것을 속속들이 경이롭게
그러나 어느 것도 단정하거나 규정할 수 없어 신비롭게
마주하니까.
살아
그게 네 운명이야
잘살아
세상을 다 마시고
너를 거친 세상을 세상을 다 내놓아
사랑하고 사랑받아
변해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면서
우리가 둘이 아니란 걸 느껴
말로 설명하거나
공식으로 풀어내란 게 아냐
생생하게 느끼라고
굳은 감각을 모두 깨워서
네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면
사는 게 즐거울 거야
그 전에는 괴롭지
괴로워야
살아 있다는 것과
그냥 이렇게 살아서만은 안 된다는 걸
아울러 느낄 수 있으니까
네 운명이 부르고 초대장을 보내고
찾아와서 노크해도
대답하지 않고
나오지 않으니까
문을 쾅쾅 부닥쳐 흔드는 거야
그걸 불안하다 느끼지만
아니
소방관이 널 구하러 온 거야
춤꾼이나 운동선수의 근육은
더할나위없이 단단하고
더할나위없이 부드러워
자신을 허락해
운명을 받아들여
세상이 너에게 흘러들어가게 해
오직
큰 슬픔과
큰 기쁨만이
작은 슬픔과
작은 기쁨을 지우고
흘려보내
썩지 않게 하니까
같이 살게 하니까.
생명을 살아.
생명을 소진하지 말고.
너는 너이지만 그냥 너이기만 한 건 아니야.
네가 실은 네가 상상하는 너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는 걸 배워 가.
그런 것도 안 배우면 사는 게 뭐 별일이겠어
어차피 지구도 태양도 먼지조차 남지 않고 사라질 텐데
그 긴 시간에 걸친 소멸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의미를 찾아
하지만 강요 없이.
팽팽하되 부드럽게
춤꾼의 몸을 만들어
흘러가게 해.
네가 선이라고 느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게 해
이어가.
내게 이어온 생명은
네가 잇고
네가 이은 생명을 끊기지 않게 해
너의 모든 숨은
다른 이들, 온 우주가 내쉰 거야
그걸 느껴
크게 숨 쉬어
서둘지 말고
천천히
깊게
평화롭게
미소를 떠올리며
차츰 저절로 떠오르게
나도
너도
생명을 잇자
이것만으로 바쁘고
이걸 빼면
달리 뭐 할일도 없잖아?
빛나라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