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청한 것
정말 놀라운 게, 설마 농담이겠지 했는데
진담이어서 놀랐던 게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생각을 마음대로 한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러니까 ‘극단적 선택’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는 거다.
그 정신이면 애써서 살라는 말이 하나마나한 거다.
생각은 제 마음대로 살 집을 고른다.
때로는 너그럽게 눈을 낮추고
때로는 영문 모를 선택도 하지만
대개는 까다롭고 까다롭고 까다롭다.
생각이 들어올 집을 만들어야 한다.
몸을 바꾸어야
몸이 바뀌도록 행동을 바꾸어야
행동을 바꾸려고 마음을 고쳐 먹어야
비로소
차츰 그러다가 마침내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인데
모든 생각이 반기고
들어가려 안달 내는 집도 있다.
생각이 들어가는 집은
육체와 책 둘이다.
좋은 육체와 좋은 글을 만들고도
나쁜 육체와 나쁜 정신은
거기서 아무것도 만나지 못한다.
정신은 집에 들어가는 것도 제 마음대로이고
집 밖에 나갈지, 창문을 열지,
두드리는데 응답할지도
문을 열고 대꾸해 줄지도 전부 제 뜻대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을 짓는다.
우리는 마음 먹고 다른 행동을 쌓아 다른 몸을 일으킨다.
거기까지다.
마치 복음의 비유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기다리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제대로 하고서, 제대로 기다리면
기쁠 수도 있다.
그때와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가 무얼 해야 하는지는 언제나 명백했고
거기에 가짜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차라리
가짜를 멈추고 버리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진짜들로만, 앙상하더라도 그렇게 갖추어야
맞갖은 정신이 들어온다.
여태 왜 몰랐지!
하나도 괴로울 게 없잖아!
생각이 바뀌면 다 바뀐다.
생각이 병들면 다 죽는다.
살 길과 죽을 길.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이 따로 있지 않지만
길은 이쪽과 저쪽, 방향이 다르게 나 있다.
*
아주 드물게 한 바퀴 돌고 이 길과 저 길을 이어 버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해골산에 올라가 달려 십자가 위에서 죽는다.
우리는 걷는다.
십자가는 내가 지는 게 아니라 지워지면 지는 것뿐이니까.
내가 다는 게 아니라 달리면 달리는 것뿐이니까.
온 세상에 대한, 온 세상을 상대하는 절대적 순종이 아니라면
십자가는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날마다의 종이인형 같은 십자가조차 지지 않는다면
십자가의 죽음도, 십자가의 승리도 없다.
그리고 일단,
들어 보자.
‘듣는 마음’부터 갖자.
솔로몬은 지혜를 구한 적이 없다.
그걸 알만큼 지혜로웠다면 어찌 새삼 지혜를 구했을꼬.
솔로몬은 단지
‘듣는 마음’을 청했다.
황금도 군사도 멋진 외모도 아니었다.
심지어 목숨을 구하지도 않았다.
그가 듣는 마음을 청하자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열왕기 상권 3장 9절)]
하느님이 준 것이 지혜다.
네가 청한 것이 지혜다, 하고 알려 주었다.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열왕기 상권 3장 12절)
쉐마, 이스라엘.
들어라, 이스라엘.
듣고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은 없댔으니, 그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는다.
너는 너 자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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